한밤의 도서관 803

스티브잡스 iMind

단순하게 만드는 작업은 쉬워 보이지만 쉽지 않다. 그는 아이팟을 기획할 때 잡스에게서 혼란스러운 요소를 모두 제거하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래서 디자인팀은 포함시킬 요소만큼 제거할 요소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지나칠 정도로 단순성을 추구했더니 아주 다른 제품이 나왔습니다. 그 차이는 최대한 단순하게 제품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결과 였습니다.” “잡스의 뛰어난 재능은 그가 발표 때마다 준비하는 슬라이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다소 과장되게 들릴지 몰라도 스티브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선의 미학이 느껴진다. 그의 슬라이드에는 절제, 단순함, 강력하면서도 미묘한 여백이 돋보인다. 이와 대조적으로 빌 게이츠의 슬라이드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우선 그는 한 슬라이드에 너무 많은 내용을 담으려 한..

한밤의 도서관 2011.05.31

침묵의 교실

아내는 남편인 내 벌이가 시원찮다 보니 5년 전부터 마트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아들이 사립대학에 들어가서 유난히 지출이 많다. 이런 상황에 대해 아내가 불평을 하지 않아서 오히려 더 괴롭다. 투덜투덜 바가지를 긁는 아내가 훨씬 편할지도 모른다. “오늘은 당신이 좋아하는 비프스튜야.” 아내의 말에 "어어"하고 적당히 대답했다. 나는 딱히 스튜를 좋아하지 않는데 아내는 내가 좋아한다고 제멋대로 오해하고 있다. 스튜를 좋아하는 사람은 오히려 아내가 아니던가.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읽지도 못하고 반납한 책. 다시 빌리려고 보니 대출되어 있어서 더 보고 싶었던 책. 오리하라 이치 작가의 책은 처음이다. 언제나 그렇듯 잡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시간 때우기 용으로 두꺼운 책을 고른 것 뿐이었는데..

한밤의 도서관 2011.05.23

고래

점심 산책 길에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편식은 그만~ 콩님께서 국내 소설도 읽어보라며 추천해 주신 작품이다.천명관 - 고래.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 많아서 펜타 라이브러리에서 신청했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든다길래, 어디서 어떻게? 궁금해 하며 읽었으나, 기대치에 거의, 전혀, 가깝게도 오지 않아서, 마지막까지 실망하며 읽었다. 프롤로그랑 에필로그만 없었으면 초큼 더 재미있을 뻔.아쉽다. 다음에는 [고령화 가족]을 읽어볼 예정이다.

한밤의 도서관 2011.05.19

달콤한 작은 거짓말

“밤이 되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잖아. 참 묘한 일인 것같아.” 여전히 밖을 보며 루리코가 말했다. “맨션 창의 불빛들을 보고 있으면 말이지, 저 한 집 한 집마다 제각기 사람들이 찾아 들어가다니 신기하다 싶어.” 사토시도 키가 그리 큰 편은 아니지만 루리코는 좀 더 왜소해서, 정수리가 사토시 턱 부근에 온다. 그렇게 서로 포개듯이 서서, 하얀 보름달이 떠 있는 하늘을 보았다. 여기서 조용히 자신을 기다린 아내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낮에는 밖에 나가서 일을 하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간혹 바람을 피우더라도 밤이 되면 각자 집으로 돌아오잖아. 참 신기한 것 같아.” 사토시는 얼어붙고 말았다. - 밤 中 루리코는 잘 모르겠다. 펑펑 울고 나면 후련해질까. 하루오가 만드는 공기, 하루오가 선택하는 언어, ..

한밤의 도서관 2011.04.28

차가운 밤에

가령 내가 쿄지를 열렬하게. 정말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있다면 문제는 없다. 지금이라도 쿄지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할 수도 있다. 쿄지는 좋은 사람인데, 왜 좀 더 애틋하게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지금 당장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왜 둘이 있으면 고독이 짙어지는 것일까. 이를테면 내가 좀 더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다감한 딸이 되면 되는 일이다. 집까지는 전철을 타고 30분. 전화를 걸어 요행히 남동생이 받으면, 차를 몰고 데리러 와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낯익은 식탁에서 넷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어째서일까. 왜 그런 일이 이토록 싫을까. 진절머리가 난다. 치가 떨린다. 죽어도 싫다. 혼자 있는 ..

한밤의 도서관 2011.04.27

제물의 야회

사람은 사람의 몸을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상상한다. 그런 습관이 한순간 오코우치에게 천장을 보고 누운 여자의 양손이 다 바닥 속으로 빠져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 살인 中 사회에는 이물(異物)을 배제하는 습성이 있다.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와 똑같이 생활하고 비슷한 가치관을 몸에 두르고 자신을 많은 사람들 속에 매몰시켜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무서운 물음인데도 왠지 그 꿈을 꿀 때마다 달콤하고 매력적인 향기가 따라온다. 죽음이란 그렇게 아무도 없는 바다에 혼자 가라앉아가는 듯한 것일까.- 접촉 中 그는 흘끗 시계를 보았다. 5시 34분. 정확히 척척 일을 끝내고 싶다. 일이란 그런 것이다. - 결단 中 “오코우치 씨는 주필리아(zo..

한밤의 도서관 2011.04.18

SOS 원숭이

“왜그래?”헨미누나가 묻는다 “실은 패밀리 레스토랑 질색이거든요” 헨미 누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다양한 인간이 모여든다 그런 데다 의외로 테이블과 테이블이 가까워 옆에서나 혹은 등 뒤로 다른 사람의 대화가 들리는 경우가 많다 요란스러운 배경음악을 틀어놓은 것도 아니기에 목소리도 알아듣기 쉽다 그게 싫었다 무섭다고 표현해도 좋다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나 상담하는 이야기, 한탄과 서글픈 화제가 들리면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야만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매스컴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원인을 찾아내려 한다 흉악 범죄가 일어나면 그 범인의 생활상, 인간관계, 취미 사건 전의기행을 철저히 파헤친다 상식을 초월한 집요함으로 조사를 한다 잘 생각..

한밤의 도서관 2011.04.13

갈릴레오의 고뇌

가오루는 가늠해 본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눈이 처졌다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다. - 떨 어 지 다 中 “이 친구는 옛날부터 이런 말을 자주 했어. 빨리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과 늦게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 어느 쪽이 더 많을 것 같으냐고. 그렇지만 유가와, 이젠 그런 말을 할 여유도 없어. 당장 결혼한다 해도 충분히 만혼이니까.” “그건 나도 알지만 상대가 없는 걸 어떻해. 그리고 최근에는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많은가라는 명제로 바뀌어 가는 중이야.” - 잠 그 다 中 피해자의 유족을 만난다는 것은 늘 마음이 무거운 일이다. 게다가 피해자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사실을 유족들이 눈곱만큼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단순한 사고라면 체념하고..

한밤의 도서관 2011.04.11

다잉 아이

“차에 깔려 죽은 기시나카 미네에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생각하면 뭐하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나?” “피해자는 가해자를 끊임없이 원망하잖아요.” 죽은 후에도,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돈을 주는 거잖아, 피해자의 유족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치렀어, 가해자를 대신한 자네에게도 이렇게 돈을 주고 있고,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피해자라고.”“하지만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닐지도 모르죠.” “그럼 뭐지, 성의인가?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보여 주지. 머리를 숙이라면 몇백 번이든 숙이겠어. 하지만 그런다고 피해자나 유족이 행복해지나? 결국 원하는 것은 돈이라고, 돈. 그러니까 성가신 절차는 생락하고 실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되는거야. 안 그런가?” 회사 라이브러리에서 처음으로 빌..

한밤의 도서관 2011.04.05

인간실격

결국 무엇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웃사람의 고통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또는 어느 정도의 것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고통, 다만 밥만 먹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고통, 그러나 그야말로 가장 심한 고통이어서 나의 열 개의 재앙 덩어리 따위는 어림도 없을 만큼 처참한 아비규환의 지옥인지도 모르는 그런 것을 알 수 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잘도 참아내어서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서, 정당을 논하고 절망도 하지 않고 꺾이지 않고 생활의 투쟁을 계속해 나가자니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에고이스트가 되어 버려서 더구나 그것을 당연한 일로 확신하고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는가?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것이 모두 그런 것이고, 또 그것으로..

한밤의 도서관 2011.04.01

그래스호퍼

“정치가의 비서가 자살을 한다고,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관심이 분산되니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비서가 ‘모두 제 책임입니다’라는 어린애도 하지 않을 거짓말을 남기고 목을 매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정치가에게 쏟아지던 비난 수위가 낮아진다. 어리석고 추하고 성가시다. 어리석고 추한 것은 참을 만해도 성가신 것은 거슬린다. ‘당황 할 것 없어, 잠깐 육체가 조화를 잃었을 뿐.’ 바지락을 해감시키는 시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이 세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바지락의 호흡을 바라볼 때 만큼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도 없다. 세미는 이따금씩 생각한다. 인간도 이런 식으로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기포나 연기로 알아볼 수 있으면 좀 더 살아 ..

한밤의 도서관 2011.0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