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참기 힘들었던 것은 배고픔도, 밤이 되면 찾아오는 추위도, 목욕을 할 수 없는 불편함도 아니었다.
“그럼 뭐였어요?”
아이가 물었다.
“다리였어.”
“다리리고요?”
“눈앞을 지나가는 숱한 사람들의 무관심한 다리, 행선지가 분명한 사람들의 다리... 또박또박 견고하게 걸어가는 구둣발 소리가 마치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나는 살기위해서 발버둥치고 있는데, 그 발소리는 마치 “너는 실패자다. 네가 하는 일은 모두 무의미하다’고 끊임없이 외치는 것만 같았지.”
“왜 그렇게 나를 괴롭히느냐는 얼굴이군. 내게 딱히 그런 취미는 없어. 다만 네가 좀 더 무서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뿐이야. 너는 우리의 도시락이니까. 도시락은 도시락답게 더 더 더 공포를 느껴야 마땅하거든. 그래, 무서우냐? 그렇지, 좋아. 좀 더 공포를 느껴봐. 그러면 아드레날린이 한꺼번에 혈중에 방출되어서 지금보다 훨씬 맛이 좋아지지. 알아? 사냥해서 얻은 먹이가 가축보다 훨씬 맛있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라는 걸. 우리 선조들은 줄곧 그런 방식으로 진정한 맛을 음미해왔던 거야......”
나는 이대로 죽는 걸까. 이런 곳에서, 무엇 하나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슬픔이 밀려들었다.
...어쩔 수 없다.
포기하면서 생각한다.
모두 이유도 모르고 죽어간다고.
세상살이라는 게... 어차피......
사람은 살아가면서 항상 이야기를 바란다. 영화, 소설, 만화, 게임 등 형식은 달라져도 이야기 자체가 소멸되는 일은 없다. 그 가운데서도 죽음을 그린 이야기는 변함없이 꾸준한 인기를 누린다. 등장인물이 작품 속에서 실제로 죽는 영화가 있다면 그보다 더 스릴 넘치는 오락도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