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799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먹을거리란 이렇게 무거운 거로구나. 그걸 처음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였다. 돈도 없었기 때문에 식비를 줄이려고 되도록 밥은 해서 먹었다. 나는 우리 또래치고는 드물게 어려서부터 패스트 푸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감자와 양파, 양배추와 사과, 샐러드 오일과 참치통조림. 먹을거리는 살아 숨 쉰다. 살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것이다. 여자는 과거를 가차 없이 끊을 수 있는 생물이다. 남자가 역사소설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거나 과거의 여자들을 자신의 훈장처럼 떠벌리는 동안에도 여자는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 연연하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도 그런 여자의 일면이 있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 평소에는 그런 여자를 ..

한밤의 도서관 2009.02.23

불공정 한 것은 누구인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세이도 서점 1층에 있는 신간코너로 바람을 쐬러갔다. 옆으로 나란히 놓인 신간들을 내려다본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재테크 서적. 가벼운 실용서. 질 나쁜 대필작가가 휘갈겨 쓴 유명 연예인들의 책. 텔레비전 드라마의 노벨라이즈. 주인공에게 묘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지나치게 센티멘털한 연애소설 '인기 있는 아저씨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센스다' 라는 띠지를 두른 연애지침서. 그리고 엄청난 수의 자기계발서. 상사의 마음가짐. 부하의 마음가짐. 노후의 마음가짐. 삶에 대한 마음가짐. 마음이 부자인 삶을 위한 마음가짐. 세자키는 한 권도 사지 않고 그곳을 나간다. - 제1장 불공정한 시작 中 호감도란, 올리기는 어렵지만 떨어질 때는 한순간이다. 아아, 왜 ..

한밤의 도서관 2009.01.05

모방범

병실이란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곳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애정과, 쌓아 왔다고 확신했던 인간관계가 그저 거짓과 무관심과 착각과 기대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절망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피스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저 자존심만 비대한 병적인 인간일 뿐이다. “창작활동에는 동기 같은건 필요없네. 작가나 화가에게 왜 그런 것을 만드느냐고 물으면, 그 사람들은 아마도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할거야” ‘그냥 하고 싶어서’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

한밤의 도서관 2008.11.14

오늘의 사건사고

“그러고 보니 나, 오늘 아침, 전철 타는 꿈 꿨어.” 전철문이 열렸다 닫히는 모습을 말 없이 보고 있던 케이토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어떤 꿈?” “웬일인지 전철을 타고 이와테에 갔어. 거긴 한번도 가본 적 없지만, 그냥 이와테 같았어. 왜 있잖아, 그거. 특급열차처럼 마주 보고 앉게 돼 있는 전철, 그런데 왜 그런지 좌석이 죄 파이프 의자였어, 그리고 가이드로 보이는 여자가 한 량에 하나 사람씩 타고 있었는데, 바깥 경치라든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 거야,자, 여러분, 오른편을 보세요, 하는 식으로. 그런데 밖을 보니, 이 전철이 수륙양용이었는지 강물 위를 달리고 있는거야, 차창 바로 밑에까지 탁한 물이 흐르는데 열대의 강처럼 보였어. 강 기슭에는 맹그로브가 울창하고.” 어라 요녀석 소설 나왔네?..

한밤의 도서관 2008.11.04

예술가로 살아남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배울 때, 그것은 영향이라고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 것을 베낄 때, 그것은 오마주라고 한다. 하지만 남이 그렇게 하면 그것은 표절이라고 한다. 우리의 관점이 얼마나 유연한지 재미있을 따름이다. 이거 책이 무지 조그맣고 얇아서 출 퇴근 용 시간 때우기로 좋겠다 싶어 빌려 본 책인데, 글쎄,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만 기억나는구나. 그리고 영향과 오마주, 표절에 대한 정의가 너무 공감되어서 몇 번이고 읽어봤다. 내가하면 오마주고 남이하면 표절이지.

한밤의 도서관 2008.10.29

초콜릿 코스모스

전철안이나 군중 가운데서 그런 기이함을 느낄 때가 있다. 명백히 '위험한'사람, 주위와는 다른세계에 사는 사람과 마주쳤을 때다. 이상하게도, 그냥 서있거나 혼잣말을 중얼거릴 뿐인데 멀리서도 알아차리게 된다. 다들 멀찍이 떨어져 서고, '시선을 마주치면 안 된다'는 소리없는 공감이 주위를 휩싼다.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에서 본 영화 중에도 재미있는 작품은 여러편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아스카의 인상에 남은 것은 그것이'가짜'라는 점이었다. 한 영화에서 권총을 맞고 죽어 사람들이 슬퍼하고 애도했던 사람이 다른 날 본 영화에서느 멀쩡하게 살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그녀는 그 사실에 놀랐다. 그 고통스러운 표정, 닭똥 같은 눈물은 아무래도 '가짜'였던 듯 하다. 모른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

한밤의 도서관 2008.10.29

슈가 앤 스파이스

세상에는 왜 이렇게 비닐이나 플라스틱이 넘치는 걸까? 정말로 필요할까? 필요하고말고! 하고 비닐 우비를 입은 어릴적의 내가 얼굴을 내밀며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자, 반드시 그렇지도 않아, 하고 오래전에 우비가 필요 없어진 내가 머뭇거리며 작은 소리로 말한다. 어른이 되자 필요가 없어진 그런 것들이 늘어 간다. - 저녁식사 中 정말로 읽어보고 싶었던 작품. 야기라 유야가 연기했던 시로는 어떤 인물이였나, (영화가 정말로 많이 실망스러웠지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반가웠다. 여러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마지막 단편은 재미가 없어 읽지 않았고, 영화와 비교하자면 정말로 담백했다. 시로와 노리코(사와지리 에리카가 연기했던)의 연애?장면 따위가 정.말. 비중이 작아서 더 좋았다. 젊은시절 추억을 가..

한밤의 도서관 2008.09.28

그대가 돌아가는 곳 - 세퍼레이션

‘결국.......’하고 나는 생각했다. 사람은 모두 혼자서 이 세상을 살아간다. 아니,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닫아 건 세계속에서만 살아간다고 말해야 할까. 이 지구에는 60억의 작은 세계들이 겹쳐져 있고, 그것들은 결코 통합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본질적으로 인간은 고독한 생물인 것이다. 나는 어제 먹다 남은 피자를 오븐에 데워서 저녁 대용으로 먹었다. 씹는 맛을 느낄 수 없는 브로콜리는 왠지 나를 몹시 서글픈 기분에 빠지게 만들었다. 아니면 단순히 혼자 먹는 저녁 식사에 고독감을 느낀 것뿐인지도 모른다. 이런 밤이 5,000번 6,000번이나 계속되는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면 인생의 길이는 보는 각도에 따라 꽤 많은 차이가 나는 것이라는 기분이 들었다. 도서관에서 읽을 만한 책을 뒤져보던 중 못..

한밤의 도서관 2008.09.23

이름 없는 독

우리는 시계와 캘린더의 포로다. 그게 고통의 원흉이 될 때도 있지만, 약이 되는 경우도 있다. 이렇다 할 이유나 근거도 없이 시간이 흐르고 날이 지나가기만 해도 걱정거리가 점점 가벼워 지는 일이있다. "진실, 그런게 있다고 해도 괴롭고 없다고 해도 괴롭고, 아무리 굴려도 좋은 숫자가 나오지 않는 주사위죠." "불행이란 대개의 경우 그런 거죠. 이쪽을 바로 세우려 들면 저쪽이 기울어지는 식으로 서로 엇갈려 있죠. 마치 헝클어져 풀리지 않는 실처럼." 미야베 미유키는 [모방범]이라는 소설 때문에 알게 된 사람인데, 사실 난 이름만 알고 있어서, 남자겠거니.... (어째서인지는 모르지만)여자였다. 또 청산가리..청산가리를 빼면 추리물은 전개될 수 없는건가?? 싶은게, 처음에 그다지 잘 읽을 수가 없었다.내용도..

한밤의 도서관 2008.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