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인체모형의 밤 그리고 그레이브 디거

요새 하루에 꼭 한 권은 읽고 있는데, 최근 읽은 책 두 권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읽을 때마다 (아 화장실로 달려가고싶어! 의 마음이었다.) 조마조마 설레게 한 두 권! 도서관 신간코너에 꽂혀 있던 책으로, 처음 보는 작가였는데 표지가 마음에 들어 꺼내보았다. 타이포를 재미있게 정렬했다. 나카지마라모의 ‘인체모형의 밤’ 작가소개가 골 때려서 아 이 사람 촘 멋진데?? 라고 생각하며 냉큼 책을 빌렸다. 인간의 고독과 광기 속에서 빛을 찾으려던 작가 ‘나카지마 라모’ 소설가, 수필가, 연극 각본가, 연극배우, 록 가수, 광고 카피라이터, 광고 기획자… 넘치는 재능과 열정을 가지고 거침없이 세상에 도전했던 작가 나카지마 라모는 IQ 185의 천재로 명문 중고교를 나왔지만 자유롭고 엉뚱한 그의 영혼은 엘리트의 ..

한밤의 도서관 2009.06.18

슈크림러브

느닷없이 메일을 보내서 미안합니다. 마담 언니에게 주소를 물어봤어요. 가신 후에 의 작가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어요. 그때는 얘기 못 했지만, 선생님의 작품(작품이라고 할게요) 너무 좋아요… . 누구지? 결혼식에서 본 여자인가. 명함을 건넨 기억이 없는데. 두 번을 읽고서 그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라는 것을 알았다. 아주 괜찮은 여자와 지각한 그렇고 그런 여자. 어느 쪽이지. 꽤 괜찮은 여자는 상당히 마음에 들었는데, 얼굴이 생각나지 않았다. 나는 사람은 하루에 세 시간 일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하는 일도 별로 없으면서 시간만 보내는 인간은 집에 돌아가는 편이 낫다. 몇 시간이고 집중력이 지속되는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휴대전화나 메일, 그 편리함을 실감할 때마다 생각한다. 편리함 덕분에 생겨난 시간..

한밤의 도서관 2009.03.27

13계단

재판 제도가 지닌 문제였다. 사형에 해당하는 사건을 범 한 경우, 한 명이라도 많은 사람을 죽인 쪽이 심의 과정이 지체되면서 오래 살 수 있다. 운동장에서 그 행사를 지켜보던 난고는 문득 깨달았다. 이곳에는 300명 남짓의 살인범이 수용되어 있다는 것을. 이는 즉 그틀에 의해 이 세상에서 사라진 희생자가 300명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눈앞의 광경이 완전히 뒤바뀌었다. 특별 배급된 단팥빵에 어쩔 줄 몰라하며 맛있게 먹어 치우는 살인범들. 어째서 그들을 기쁘게 해 주어야 하는가. 이래서는 희생자들이 위안을 못 받지 않는가, 하며 난고는 일종의 충격과 함께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아아 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었구나.처음에는 화자가 누구인지 집중이 잘 안되는 듯 했으나,뒤로 갈수록 아주 재..

한밤의 도서관 2009.03.26

텐텐

“가난해서 죄를 짓고, 몸을 팔아 먹고사는 경우는 지금도 있긴하지만, 버젓이 일류 대학 다니면서 성인 비디오 배우가 되거나,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이 살면서도 사람을 칼로 찌르기도 하는 시대예요. 고정관념을 버리지 않으면 세상을 올바로 보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글쎄, 영화 [텐텐]이 너무도 재미있어서원작 소설도 읽어보고 싶었다. 영화가 소설을 못 살린 경우를 많이 봐왔으나, [텐텐]은 영화가 소설보다 훨씬 더 나았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류이기도 했고, 내용이 중반부터 후반까지 많이 달랐다. 갑자기 질질질.... 끌더니 끝! 이라니..

한밤의 도서관 2009.03.23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먹을거리란 이렇게 무거운 거로구나. 그걸 처음 깨달은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처음으로 혼자 살기 시작했을 때였다. 돈도 없었기 때문에 식비를 줄이려고 되도록 밥은 해서 먹었다. 나는 우리 또래치고는 드물게 어려서부터 패스트 푸드를 좋아하지 않았다. 감자와 양파, 양배추와 사과, 샐러드 오일과 참치통조림. 먹을거리는 살아 숨 쉰다. 살아 있기 때문에 이렇게 무거운 것이다. 여자는 과거를 가차 없이 끊을 수 있는 생물이다. 남자가 역사소설에서 인생의 지혜를 얻으려고 하거나 과거의 여자들을 자신의 훈장처럼 떠벌리는 동안에도 여자는 현재와 미래만을 생각한다. 물론 과거에 연연하는 여자가 없는 것은 아니다. 내 안에도 그런 여자의 일면이 있을을 부정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나의 경우, 평소에는 그런 여자를 ..

한밤의 도서관 2009.02.23

불공정 한 것은 누구인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산세이도 서점 1층에 있는 신간코너로 바람을 쐬러갔다. 옆으로 나란히 놓인 신간들을 내려다본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재테크 서적. 가벼운 실용서. 질 나쁜 대필작가가 휘갈겨 쓴 유명 연예인들의 책. 텔레비전 드라마의 노벨라이즈. 주인공에게 묘한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미스터리 하드보일드. 지나치게 센티멘털한 연애소설 '인기 있는 아저씨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센스다' 라는 띠지를 두른 연애지침서. 그리고 엄청난 수의 자기계발서. 상사의 마음가짐. 부하의 마음가짐. 노후의 마음가짐. 삶에 대한 마음가짐. 마음이 부자인 삶을 위한 마음가짐. 세자키는 한 권도 사지 않고 그곳을 나간다. - 제1장 불공정한 시작 中 호감도란, 올리기는 어렵지만 떨어질 때는 한순간이다. 아아, 왜 ..

한밤의 도서관 2009.01.05

모방범

병실이란 한 인간이 자신에 대해서나 타인에 대해서나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곳이고, 그런 자신의 모습이 가감없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지금까지 손에 쥐고 있다고 생각했던 애정과, 쌓아 왔다고 확신했던 인간관계가 그저 거짓과 무관심과 착각과 기대에 의해 만들어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목격하고 절망에 빠지는 일이 종종 있다. 피스는 자신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저 자존심만 비대한 병적인 인간일 뿐이다. “창작활동에는 동기 같은건 필요없네. 작가나 화가에게 왜 그런 것을 만드느냐고 물으면, 그 사람들은 아마도 모두 똑같은 대답을 할거야” ‘그냥 하고 싶어서’ “살인이 잔혹한 것은, 살인이 피해자를 죽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가족의 생활과 마음까..

한밤의 도서관 2008.11.14

오늘의 사건사고

“그러고 보니 나, 오늘 아침, 전철 타는 꿈 꿨어.” 전철문이 열렸다 닫히는 모습을 말 없이 보고 있던 케이토가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어떤 꿈?” “웬일인지 전철을 타고 이와테에 갔어. 거긴 한번도 가본 적 없지만, 그냥 이와테 같았어. 왜 있잖아, 그거. 특급열차처럼 마주 보고 앉게 돼 있는 전철, 그런데 왜 그런지 좌석이 죄 파이프 의자였어, 그리고 가이드로 보이는 여자가 한 량에 하나 사람씩 타고 있었는데, 바깥 경치라든지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 거야,자, 여러분, 오른편을 보세요, 하는 식으로. 그런데 밖을 보니, 이 전철이 수륙양용이었는지 강물 위를 달리고 있는거야, 차창 바로 밑에까지 탁한 물이 흐르는데 열대의 강처럼 보였어. 강 기슭에는 맹그로브가 울창하고.” 어라 요녀석 소설 나왔네?..

한밤의 도서관 2008.11.04

예술가로 살아남기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뭔가를 배울 때, 그것은 영향이라고 한다, 자신이 다른 사람들 것을 베낄 때, 그것은 오마주라고 한다. 하지만 남이 그렇게 하면 그것은 표절이라고 한다. 우리의 관점이 얼마나 유연한지 재미있을 따름이다. 이거 책이 무지 조그맣고 얇아서 출 퇴근 용 시간 때우기로 좋겠다 싶어 빌려 본 책인데, 글쎄,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만 기억나는구나. 그리고 영향과 오마주, 표절에 대한 정의가 너무 공감되어서 몇 번이고 읽어봤다. 내가하면 오마주고 남이하면 표절이지.

한밤의 도서관 2008.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