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가위남

uragawa 2009. 9. 8. 22:43

“자살 미수자를 혐오하는 이유는 두 가지야. 하나는 자살 미수에 의해 타인을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이지. 헤어지느니 차라리 죽어 버리겠어, 하고 외치며 면도날로 손목을 그어 보이는 녀석이 전형적인 예겠지. 나는 자살이라는, 일반인은 못할 행동을 시도했다. 따라서 남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논리를 강요하려고 해.” 


의사는 의자 위에서 몸을 젖히며 효과를 노리는지 잠시 침묵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는 자살이라는, 일반인은 못할 행동을 시도한데다가, 무슨 조화에서인지 고통과 죽음에서 무사히 생환했다. 뭔가가 나에게 살라고 고하고 있다. 따라서 나는 특별한 존재다, 라는 거지. 그래서 표정만 어둡게 가장하고, 자랑하고 싶은 기분을 은근슬쩍 드러내며 신나게 자살 미수 체험을 이야기하곤 해. 머리가 나쁘다고밖에 말할 길이 없지. 그런건 하늘의 의사도 아니거니와 그 또는 그녀의 의사와도 무관해. 단순한 통계적인 우연에 지나지 않아. 우연히 살아남았기 때문에 우연을 필연으로 착각하는 거야. 곰을 만났을 때의 대처법 같은거지.”



“아무리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해도, 꼭 죽는다는 법은 없지.”

의사가 냉랭하게 말했다. 

“‘죽려’지지 않으면 죽을 수 없는 거야.”

나는 의사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죽음과 잠은 형제라는 말을 처음 한 것은 호메로스라고 하는데, 확실히 이 두 가지는 가까운 관계에 있어. 그러나 ‘죽음’과 ‘잠’, ‘죽다’와 ‘자다’, ‘죽었다’와 ‘잔다’ 라는 대응은 있어도. ‘졸리다’에 상당하는 형용사는 죽음 쪽에는 없어. 영어로 말하자면 명사 ‘DEATH’와 ‘SLEEP’, 동사 ‘DIE’ 와 ‘SLEEP’, 형용사 ‘DEAD’ 와 ‘ASLEEP’은 대응해도, ‘SLEEPY’ 에 상당하는 형용사는 존재하지 않아. 다시 말해, 아무리 졸리고 잠이 오더라도 꼭 잠이 들거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아무리 죽을 것 같고 죽고 싶어도 꼭 죽을 수 있을 거라고 할 수는 없어. 잠들 때는 졸려지는 것처럼, 죽을 때는 ‘죽려’져야만 한다 이거야. 영어라면 ‘DEATHY’ 정도가 될까.”

사실일까. ‘죽리다’ 란 대체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 건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건 그래. ‘죽려’ 지면 정말로 죽고 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