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삼월은 붉은 구렁을

나는 어렸을 때부터 회전목마를 싫어했다. 어린마음에도 가짜 말에 올라타서 한곳을 빙빙 돌기만 하는 행위가 몹시 굴욕적으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것일까? 회전목마에 올라앉아, 원 바깥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을 볼 때 느끼는 고독. 그 고독은 무엇이었을까? 가족은 자애 어린 눈으로 멀리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너는 혼자란다, 하고. 너를 사랑하기는 하지만 너는 혼자란다, 하고. 홀로 회전목마를 타는 아이들은 가슴이 쓰라릴 정도로 고독한데도 어째서 모두들 웃고 있는 것일까? 아이들은 가족을 향해 웃어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있다. 자신이 고독을 눈치채기 시작했고, 그것이 이제부터 살아갈 긴 인생의 반려라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회전목마 中 온다..

한밤의 도서관 2008.01.03

일요일들

십년동안 산 집을 뒤로 할 때는 조금이나마 감상적인 기분이 되지 않을까 예상했지만 "그럼, 갈까요?"하는 오오니시의 말에 "네,가죠" 하고 대답하는 순간, 그런 기분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듯 했다. 버스길로 나와 늘 장을 보던 가게를 지났다. 입구에 '달걀 특매'라고 쓴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고, 여기서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달걀을 사먹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주일에 한 번 열개들이 팩을 샀다고 쳐도, 일 년이면 약 오백개,십 년을 살았으니 오천 개가 된다. 저 집이 오천개의 달걀 껍데기로 파묻혀가는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괭이갈매기] 다 읽고, 퇴근하면서 바로 읽기 시작했는데 30분 만에 100여 페이지 돌파. 이야기는 여러가지로 나뉘어져 있고, 이야기마다 남자아이 둘이 꼭 나오게 된다..

한밤의 도서관 2008.01.03

그때는 그에게 안부전해줘

이치카와 다쿠지 아저씨가 쓴 소설 읽는 중[지금 만나러 갑니다]는 후반 호러 -_-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 ]이것도 쑥쑥 읽고 있는데 뒤에 호러 아니야????? 하고 있다 하루 만에 다 읽음. +이 분의 소설은 읽기가 쉽다.이해도 쉽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에서 만났던 반가운 소리를 [그때는 그에게 안부 전해줘]에서 또 만날 수 있다"히유익-?"주인공 남자가 물속에 있는 여러가지?들을 정말로 좋아하는데,(아 난 상상만 해도 싫다 물-) 사실대로 말할게...라는 부분을 읽고 뭐가 사실대로 말할게야!! (버럭 X 백번)혼자 읽으면서 말하지마!!!!!!!!!!!!!!!!!!!!!!!!!라고 말한...이거 장르가 뭐야, 조금 (많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잠을 자지 않으려는 여자쓰레기 그림을 그리는 친구아쿠..

한밤의 도서관 2008.01.03

괭이갈매기

도서관에 꽂혀있는 깨끗한 책.1, 2권이라 부담이 좀 있었지만 바로 대출. [괭이갈매기]라는 제목은 이토 미사키(고쿠센,타이거&드래곤, 전차남 출연)가 영화 찍었다는 기사에서 본 적 있었던...영화의 원작이 이 소설인지는 몰랐다. 영화는 2004년에 제작.이 소설은 2003년에 나온거고, 국내에 2005년에 초판이 나왔네. 술술 읽히고 있다.내용이 좀 찌찔?하군 하고 있으나 글쎄, 다시 읽으면 또 다를테지 +난 항상 두번째 읽을 때 제대로 읽는 편이다.사실 읽기 전에 영화 괭이갈매기는 줄거리가 어떤가하고 봤다. -_-영화와 소설 내용이 같은 내용이 아닌데? 둘 다 내가 좋아하는 류의 이야기는 아니였다는거다. -2006년 6월 28일

한밤의 도서관 2008.01.03

중력삐에로

하루는 눈썹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말했다. “저기있는 책은 내가사온거야. 추리소설 사와라, 지도 사와라 게다가 역사 참고서까지 사오라는거야.” “저런걸 어디다 써" “소설에 거짓은 없는지, 체크하는거지.” 아버지는 웃었다. 암때문은 아니겠지만, 이가 가늘어진 것 같아보였다. “소설을 읽는 건 거짓말을 즐기기위해서잖아.” 나는 반론을 폈다. “정말로 심각한 것은 밝게 전해야 하는거야.” 하루는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무거운 짐을 졌지만, 탭댄스를 추듯이.” 시처럼 들렸다. “삐에로가 공중그네를 타고 날아오를 때는 중력을 잊어버리는거야.” 이어지는 하루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즐겁게 살면 지구의 중력 같은건 없어지고 말아.”“그럼 당신과 나는 곧 하늘로 떠오르겠네.” 어머니와 아버지가 그런 말..

한밤의 도서관 2008.01.03

굽이치는 강가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영화 속 러브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쓸데없고 지루하고 시시한 장면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또야? 또 저런 짓을 하는 거야? 왜 어른들 영화에는 어김없이 이 장면이 들어가는거지? 게다가 어른들은 하나같이 그런 장면을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소설을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조금씩 어른들이 읽는 책에 손대기 시작하면서 거기서도 그런 장면을 맞닥뜨렸다. 이런, 또 그런 장면이네. 이게 줄거리랑 무슨 상관이람? 어째서 항상 이런 장면이 필요하지? 지겨워. 꼭 이런 장면을 끼워넣어야 하나? 이런게 독자 서비스가 되나?어른들은 정말 이런 짓만 하는 걸까?하지만 이날 비로소 나는 러브신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날 본 영화의 제목은 금방 잊어버렸지만 처음으로 내가..

한밤의 도서관 2006.12.26

거짓말의 거짓말

츠츠이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면서 “옛날 옛적 한 옛날에 착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라고 마음 속으로 읊조려봤다.확실히 히토미가 말한 대로 그 단어 하나하나가 어딘가 슬프게 느껴지는 듯했다.실제로 “옛날 옛적”이 슬픈지, “한 옛날에”가 애절한지, “착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것인지, 아니면 “사이좋게 살았다”는 말이 말하는 사람을 공허하게 만드는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말이 추상적이어서 마치 자신이 나쁜 거짓말을 지어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와 그녀의 거짓말 中

한밤의 도서관 200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