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이토록 뜨거운 순간

uragawa 2008. 5. 3. 06:33

“다른 생물의 생명이 자기 생명보다 더 뚜렷하게 느껴진 적이 있니?”

여전히 파리를 쳐다보면서 사라가 물었다.

“무슨 말이야?”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없을 때가 가끔 있어.”

의기소침한 어조로 사라가 말했다.




어렸을 적에 엄마는 내 최고의 협력자였다.

한번은 미술 시간에 내가 어떤 아이에게 다가가서 그 아이의 그림이 재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나를 자습실에 앉혀놓고 왜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지 한 장 분량의 반성문을 쓰도록 했다.

나는 엄마와 데이트를 하던 수많은 남자들이 나에 대해 종종 그런 표현을 썼기 때문에 ‘재수 없다’ 가 나쁜 말인지 몰랐다고 했다.

선생님은 그 글을 읽고 나서 날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방과 후 집에 돌아가자 엄마가 나를 다그쳤다.

“넌 구제불능이야. 내가 언제 ‘수많은’ 남자랑 데이트를 했고 네게 ‘재수없다’란 말을 가르쳤니?”

난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왜 그런 말을 한거야?” 엄마가 물었다.

“혼나게 생겼으니까.”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니까 위기를 모면하려고 불쌍한 엄마를 이용했던 거로군.”

“어, 그래.”

우리는 함께 웃어젖혔다.

“선생님께 뭐라 그랬어?” 내가 물었다.

“뭐라긴, 그냥 신경 꺼 달라 그랬지.”




“하지만 난 항상 인생은 칠 년 단위로 변한다고 생각했어요. 열네 살 때 사춘기가 오고, 스물한 살 때 성인이 되고, 스물여덟에는 진짜 어른이 되는거죠. 서른 다섯이면 중년이잖아요. 내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는 항상 칠 년 마다 일어난 것 같아요.” 엄마는 오랫동안 말을 멈췄다.

“당장은 적당한 예가 떠오르지 않지만 그렇다고 확신해요.” 엄마가 소리 내어 웃었다.

“난 인생이 십일 년 단위로 달라진다고 생각해.” 해리스의 모친이 말했다.

“저기, 예수님도 서른셋에 돌아가셨거든.”




“이를테면 이런 거지.” 데커가 말했다.

“오밤중에 깼는데, 우유가 마시고 싶어 죽겠는거야. 그래서 침대에서 굴러 떨어져 내려와 캄캄한 어둠 속에 발가락을 내딛고는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지른 다음 절뚝거리며 냉장고로 갔단 말이지.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불빛이 너무 휘황찬란한 거야. ‘이제 살았다!’라고 한마디 하고 우유가 담긴 종이팩을 열고 숨을 가다듬은 다음 입술을 들이댄다 이 말씀이야. 근데, 우웩, 썩은 우유였어. 물론, 벙찌는 거지. 다시 우유팩을 닫고 냉장고에 도로 집어넣어. 또 다시 암흑이지. 하지만 낡고 외로운 침대로 돌아갈 때 이렇게 혼잣말을 하는 거야. 잠깐, 어쩌면 그 우유는 그렇게 심하게 상한 건 아닐지도 몰라. 난 아직도 목이 타는걸? 그래서 다시 냉장고로 돌아가. 냉장고 불빛이 다시금 맘을 설레게 하지. 다시 조심스레 쩝쩝 맛을 보지만 역시 상한 맛인 거야. 이게 바로, 적어도 내가 겪었던 거의 모든 남녀관계에 들어맞는 은유라고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