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은 인간의 정신적 기능을 윤리,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다른 기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난 파워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이었다. 그것은 어두운 바다와 다를 바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잠들어 있는 마음의 에너지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 강한 감정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이 그 힘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내적으로만 확산시킬 경우 불과 몇 초 만에도 위벽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한다.
<빌어먹을 과장놈! 관리직에 있으면 부하가 의욕을 갖도록 만드는 게 제 일이거늘. 의욕을 잃게 만들어서 어쩌자는 거야. 치근덕거리며 약올리는 소리만 지껄여대고, 내가 그만둘 때는 반드시 한 방 먹여주겠어. 저 삐뚤빼뚤하게 나 있는 흉측한 이를 부러뜨려서 피투성이가 되게 해주겠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하게 만들 거야!>
유카리는 지금의 히로코와 비슷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몇 번인가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이른바 모에쓰키 증후군(충실하게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증상으로 우울, 권태,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이었다. 한신 대지진 자원봉사자 가운데도 진지하게 피해자들의 문제를 고민하고, 어떻게든 열심히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일수록 이런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