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한낮의 달을 쫓다

uragawa 2009. 12. 31. 18:06

이 순간부터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롭고 불확실한 존재가 된다.

아마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에게 자유는 꽤 괴롭다.



“좋아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헤어지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거든. 아니면 끝낼 수 없잖아.”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너무나도 지당한 의견이었다.

- 때에 임하여 짓는 노래 中




나는 평소에 늘 그런 여자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자신이 여자라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는 여자. 회사 탈의실에서 돌려 보는 통신판매 카탈로그에서는 어김없이 세상 대다수 여자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고르고, 레슨 선생님에게 얼마를 드려야 할지 넌지시 의논할 수 있는, 느낌이 좋고 손톱 손질을 잘하는 여자들을.



“지금은 점점 기억력이 나빠지는데. 좌우지간 워드프로세서가 보급된 이래로 글자 쓰는 능력이 팍 떨어진 건 틀림없어. 가끔 편지를 쓰려 해도 어찌나 글씨가 안 써지는지. 한자도 못 쓰는 글자가 자꾸 늘지 뭐야.” “기계가 단번에 변환시켜주는 걸 아니까 안 외우게 되죠. 사전 찾아볼 필요도 없고.”

“지금은 뇌한테 요구되는 기능이 검색 기능뿐이니 말이야. 어느 서랍을 열지, 그것만 알고 있으면 되게 돼 있잖아. 뇌는 필요 없다고 판단하는 건 점점 잊어버리니까. 계산 능력이랑 사전 능력을 전자계산기랑 워드프로세서에 아웃소싱 하게 되면 깡그리 잊어버릴걸.”



<원숭이 손>

어느 노부부가 세 가지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원숭이 손을 손에 넣었습니다.
원숭이 손을 들고 소원을 말하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부부는 원숭이 손을 들고 ‘돈을 달라’ 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러자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공장에서 사고가 일어나 부부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고 보상금이 들어왔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고 두 사람은 비탄에 빠졌습니다. 특히 부인의 슬픔은 상궤를 벗어났습니다. 그녀는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원숭이 손을 들고 ‘아들을 되살려 달라’ 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러자 밤중에 노크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애가 돌아온 거예요.”
부인이 얼굴을 빛내며 문을 열려는 것을 남편이 필사적으로 막았습니다. 노크 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흉포하고 무서운 뭔가가 집 안으로 들어오려 했습니다. 부인이 남편을 뿌리치고 문으로 달려가는 사이에 남편은 원숭이 손을 들고 ‘아들을 안에 들여놓지 말아 달라’고 소원을 빌었습니다. 부인이 문을 열자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부인이 흐느껴 우는 소리가 차가운 겨울밤의 도로에 빨려 들었습니다.
- 의미가 통하지 않는 노래 中




“‘내 짝꿍’ 을 연발하는 사람이 어쩐지 수상쩍게 느껴지는 건 저만 그런 걸까요”

“안그래. 남자들 중에도 비슷하게 많지. ‘내 친한 친구가’ ‘내 친한 친구는’. 아닌 게 아니라 그 말 들으면 울컥하게 돼. 이유가 뭘까?” “일종의 자랑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뒤집어 말하면 ‘지금 내눈앞에 있는 댁하곤 별로 안 친합니다’ 하는 것 같잖아요.” “그냥 ‘친구가’만으로 충분한데 말이야.” “‘짝꿍’이라는 말은 타인이 부여하는 말이라 싫어요. 대개 선생님이나 부모가 그러잖아요. ‘짝궁을 만들렴’이라든지, ‘너희는 둘도 없는 짝꿍이구나’라든지. 당사자들은 말 안 하잖아요. 되레 굴욕적이라.”
- 남겨진 이의 노래 中




이상하다. 세계는 수수께끼로 가득하다. 살인사건의 범인과 우주의 구조, 세금의 용도. 폭신폭신한 시폰케이크를 굽는 법 등 알고싶은 것이 수두룩하려니와, 모두들 드라마나 주간지에서 온갖 수수께끼를 풀려 한다. 그러나 사실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별로 많지 않다. 대부분의 것은 몰라도 얼마든지 살 수 있다.



“와타베 말로는 동화랑 민화는 거의 대부분이 ‘상실’이 테마래.”   “상실?”   “잃는 거.”

“아아.” 순간, 가슴 속이 싸늘해졌다.
“백설공주도 그렇지, 빨간 두건도 그렇지, 일단 죽어 목숨을 잃었다가 그 뒤에 재생돼서 부활하잖아. 잃고, 찾아, 되찾는다. 그게 인간이 만드는 이야기의 주된 테마래.”  “지금 그 이야기도 그러네요. 달님이 없어졌다가 재생되죠.”
“그럴지도 모르지.”   “산다는 게 뭔가를 잃는다는 거니까요.”   “어머, 비관적이네.”
“아니, 그보다 현실적으로 잃어버린 걸 조금씩 돈으로 치환시켜 가는 거겠죠. 시력이 감퇴되면 안경을 사고, 체력이 감퇴되면 돈 내고 차를 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시간이랑 노력까지 돈으로 사게 되고요. 그런 식으로 잃은 걸 벌충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게"



차가 다니지 않는 길이 이렇게 걷기 편하고 즐겁다는 것을 그간 잊고 살았다. 평소에는 당연한 존재가 되어 있지만, 차라는 물건은 시끄럽고 위험해 긴장을 강요한다. 늘 재촉하고, 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별안간 튀어나온다. 운전자는 늘 짜증이 나 있고 다른 차와 자전거와 보행자에게 성을 낸다. 불황이라면서 내가 사는 아파트 앞 도로는 휴일이 되면 자가용들로 몇 시간씩 꽉 막히곤 했다. 어느 차나 다들 잔뜩 골난 얼굴이었다. 그럼 나오지 않으면 될 것 아닌가 싶은데, 차가 있는데 휴일에 나가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인 모양이었다.

- 달을 읊는 노래 中




긴 세월을 묵은 가람은 어디나 표정이 풍부했다. 기둥과 서까래가 교차하며 이루는 커브 등 계산된 디자인이 어찌나 아름다운지,맨 처음 이 디자인을 생각해낸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졌다. 기능면에서 뛰어난 것은 시각적으로도 아름답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그 말을 입증했다.



병원은 살기에 차 있고 어수선했다. 병원이라는 곳은 밖에서 보면 비일상이건만, 일단 안에 들어서면 묘하게 생활 내 나는 부분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이 유사 일상 같은 것을 만들려 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런 환상을 서로 믿고 싶어 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둑어둑한 복도를 누가 종종걸음으로 지나가고, 현관에나 대합실에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람이 가득했다. 이 세상에는 아픈 사람이 무수히 많았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도 내 눈 에는 흐릿하고 멀게만 보였다. 바로 곁을 누가 걸어도 매우 멀리 떨어져 있는 듯 느껴졌다. 망원경을 거꾸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세계가 저 멀리서 조그맣게 줄어들고, 소음도 웅성거림도 투명한 막을 통해 웅얼웅얼 불분명하게 들렸다.



그때, 내가 생각해도 이상한 일이지만, 나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렸던 비디오테이프 생각을 하고 있있다. 개봉했을 때 보고 싶었는데 바빠서 놓치고 비디오테이프로 나온 다음에도 인기가 있어 얼마 동안 빌릴 수 없었던 영화였다. 드디어 빌려 볼수 있게 됐건만 이번에는 비디오가 고장 났다. 수리를 맡기거나 새 것을 살 틈도 없어 결국 보지 못한 채로 이 여행올 떠나기 전날이 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반납했다. 그 기분과 지금 기분이 어딘지 모르게 겹친 모양이었다. 결국 볼 수 없었던 영화. 무척 보고 싶은 영화였는데. 볼수있었을 영화였는데. 갑작스러운 죽음은 다에코와 함께 보냈을 시간, 다에코에게 했을 질문을 송두리째 빼앗아버렸다. 죽음은 어쩌면 그렇게 폭력적이고 무자비한가.

- 답하는 노래 中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대인에게 죽음은 종언이요, 패배요, 공포다. 삶과 죽음은 늘 대극에 위치하는 것으로서 드라마틱하게, 그러면서 장엄하게 그려진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지 모른다. 삶이나 죽음이나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닐지 모른다. 나라를 걷고 있노라면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이나 같은 곳에 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금도 죽은 사람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

- 작가 아직 확실치 않은 노래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