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왕과 서커스

취재 기본은 4W1H다. 언제, 어데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는 처음 단계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예단予断이 되기 때문이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무거운 안개처럼 주위에 자욱했지만, 그것은 분노나 비애와 같은 명확한 방향성은 없고 그저 각각의 속삭임이 한데 어우러진 소리 같았다. 신문사에서 나온 뒤로 프리랜서로 먹고살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불안한 일이다. 회사에서 일하면 비록 내키지 않는 일을 한 달에도, 이렇다 할 실적 없이 통상 업무만 하면서 보낸 달에도 통장에 월급이 들어왔다. 그 무렵이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는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발밑을 조금씩 좀먹어가는 오싹한 기분은 느끼지 않았다. 용기를 내기 ..

한밤의 도서관 2017.01.07

Littor 2016.12~2017.1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왜 그랬냐. 지금 그걸 묻는 건가? 닥터. 미치면 병원을 가야 해. 알지. 그건 난도 알아요. 그런데, 병원에서 미치면 어디로 가야 하지? 닥터. 나는 병원에서 더 나쁜 방식으로 미쳐 가고 있네. 내 꼴을 보게나. 그러니 제발 나를 보내 주게. 절대로 벽에 머리를 박는 그런 짓은 하지 않을테니, 인증―살아 있다고 말해야 해(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정용준 아니 언제부터 나한테 그리 관심이 많으셨다고 이분들이 이러시나.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니까. 어쨌거나 다시 한 번 부탁 좀 할게. 제발 말 좀 해 달라고요. 선생님들, 정말 제발 좀 알려 주세요. 나는 얼마든지 사과할 마음이 있다니까?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아니 씨발 백 번이라도 사과하라면 할 수 있어. 나 진짜 요즘에 잠..

한밤의 도서관 2017.01.04

야간시력

누구든 장점이 있다. 누구든 재능이 있다. 누구든 존중 받을 권리가 있다. 우리 인간들은 바로 이렇게 생각하고 싶어한다. 하지만 썩어빠진 개인이란 존재하고, 나도 그 중 하나라는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어떤 상황에선 정신이 나갈 정도까지 심술궂게 바뀔 수 있는 썩어빠진 개인. 넬리를 괴롭히면서 나는 절박감과 쾌감을 느낀다. 죄책감과 우월감의 행복한 혼합물. 그리고 내몸속을 뜨겁게 질주하는 아드레날린. 넬리 프리이스의 귀 뒤를 꼬집고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 멍을 내면, 나 자신의 꽉 막혔던 좌절, 나 자신의 공포와 슬픔이 상처에서 짜낸 고름처럼 내 몸에서 빠져나간다. 이 세상은 얼마나 거대한 황무지 인지.우리가 그렇게 늙을 때까지 살아야 한다는 건 얼마나 큰 불운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대부..

한밤의 도서관 2016.12.27

데드맨

대도시에서는 사람을 죽이고도 완벽하게 빠져나가기가 의외로 간단한 일이 아닐까? 가부라기는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쿄 도의 한 세대당 평균인구는 겨우 두 명. 이웃에 누가 사는지 무관심. 쇼핑은 온라인 쇼핑을 이용. 친구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인터넷 세상 속의 사람들. 인간관계는 점점 옅어지고 짙어져가는 것은 사이버 세상뿐이다. 아파트 옆집에 사는 사람이 죽더라도 아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리라. 이런 식이라면 만원 전철 안에서 살인이 일어난다고 해도 다들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느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가부라기는 예전에 정신외과 수술이 일으킨 여러 비극을 보며 그 잔혹함에 현기증이 났다. 기억을, 사고력을, 감정을 잃어가는 공포. 자기 자신이 망가졌다는 절망. 인간일 수 있는 권리를 빼앗..

한밤의 도서관 2016.12.20

어른 없는 사회

절망적인 상태에 놓였을 때는, 먼저 내 발아래 유리조각을 주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것은 고베 대지진이 일어나고 무너진 대학 건물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쭈그리고 앉아 첫 유리조각을 주우면서 제 스스로 정한 규칙입니다. 자신의 소비 행위에 대해 다른 사람들로부터 비판적인 말을 듣는 것은 현대인에게 가장 참기 힘든 고통 중 하나입니다. 현대인은 자신의 소비 행위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자신의 개성에 관한 평가로 받아들이도록 교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는 당신이 어떤 상품을 구매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는 소비자 철학을 바탕으로 현대인의 정체성이 구축되어 있습니다. 어떤 집에 살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차를 타고, 어떤 가구에 둘러싸여 어떤 와인을 마시고, 어..

한밤의 도서관 2016.12.13

무너진 세상에서

조의 가장 깊은 비밀 중 하나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혼자가 두렵지는 않았다. 사실 좋아하기도 했으나, 그가 만들어낸 고독이란 늘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으로도 깨질 수 있는 종류였다. 그는 고독을 일과 자선과 양육으로 에워싸고 또 통제했다. 어렸을 때는 고독을 통제하지 못했다. 고독은 아이러니와 함께 그를 속였다. 그리하여 외로운 아이로 자라면서도 옆방에 크게 믿을만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엄마 생각하는 구나.” “어떻게 알아요?” “얼굴에 적혀 있어.” “얼굴에요?” “그래, 마음의 얼굴.” “제길, 갱이라서 지랄염병하게 좋습니다.” 조가 가볍게 키득거렸다. “왜 웃어요?” “아무것도 아니다.” “아뇨, 말해 주세요.” 조가 리코를 보았다. “나도 지랄염병하게 좋아하거..

한밤의 도서관 2016.12.08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목소리란 참 이상하다. 목적도 마음도 그대로 드러난다. 유키코의 온갖 것이 목소리에 깃들어 있는 것 같고 그 모든 것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목소리는 사람을 잘 설득한다. 귀에 쉽게 들어오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여전히 설명으로는 다 할 수 없는 부분이 조금 남는다. 그 조금 남아 있는 것이 사람을 매료시킨다. 말의 의미 그 자체보다도 소리로서의 목소리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게 아닌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지, 유키코의 목소리가 들리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유키코의 목소리를 모아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도 남들한테 고집이 세다는 소리를 들어.” 마리코가 방긋 웃으면서 양 무릎을 끌어안았다. 정강이가 곧게 뻗어 있다..

한밤의 도서관 2016.11.25

13.67

뤄 독찰의 이런 생각은 관전둬에게서 물려받았다. 관전둬는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범인을 지목하는 것이 뭐가 어렵겠나? 어려운 것은 범인이 아무 말 못하고 죄를 인정하도록 만드는 거라네.” -1장_ 흑과 백 사이의 진실 中 “조급해하지 마. 이제 막 작은 분대 지휘관이 된 것 뿐이잖나. 천천히 배우고 적응하면 돼. 부하들에게 자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여줘선 안돼. 윗사람조차 믿음이 없으면 부하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거든.” 관전둬는 제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게다가 대어를 낚으려면 인내심이 있어야 해. 지금은 미끼를 물 기미가 보이지 않겠지만 묵묵히 수면의 변화를 주시하며 기다리는 거야.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기회를 잡아채기 위해서.” -2장_ 죄수의 도의 中 어쩌면 세상일이란 전부 정해진 운명에 의..

한밤의 도서관 2016.11.16

Littor 2016. 10.11

작은 싸움이라도 제대로 치러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상 모든 전쟁은 힘과 냉정함 그 두 가지에 의해 좌우됨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지워 간다. 내 안에 있는 것들도 내 밖에 있는 것들도, 무엇보다 나 자신마저도 다 사라지게 만든다. 시간은 어머니의 죽음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한 일이었다. 내가 지금 나의 명왕성에 홀로 서서 ‘영원히’라는 외로운 단어에 기대어 그들을 사랑하고 있듯이 이것은 힘찬 말이 아니다. 분명 서글픈 말이지만, 그리고 가슴 저미는 말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유를 불문하고 어쨌든 견뎌야 한다. 산속의 그 어떤 짐승들도 스스로에게 왜 사는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는다. 존재는 의미에 선행하는 것. 의미를 자꾸 추적하다 보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한밤의 도서관 2016.11.01

유리 갈대

돈과 여유를 줄 테니 마음대로 살아보라는 말을 처음 들었고, 이만큼 구체적으로 조건을 제시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 흔들릴 일도 없겠다고 생각했다. 사랑이니 뭐니 운운하지 않는 만큼 결혼생활은 담담했다. 테이블 너머에서 웃는 입술이 좌우 똑같이 올라갔다. 아무리 감추어도 입가에는 마음이 드러난다. 눈꼬리를 향해 정직하게 올라간 입꼬리는 사와키의 이목구비를 한층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는 상태가 계속되는 것보다 한번 무덤에 묻는 편이 서로를 위한거야. 당신은 앞으로도 살아갈 테고.” 한 권으로 정리하는 일에 대해 기이치로는 ‘묻는다’라느 표현을 쓰고, 다시 고칠 수 없는 곳까지 가지 않으면 새로운 것도 태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바다, 좋아했던가.” “좋다, 싫다 생각한..

한밤의 도서관 2016.10.21

미스테리아 8호

잠시 정적이 감도는 가운데 나는 나를 덮쳐오는 다른 형태의 죽음, 이질감이라는 이름의 죽음을 떨쳐버리려고 애썼다. 평소 나와 일상 사이에서 닻줄 역할을 하는 인과 관계의 끈들이 모두 끊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서서히 모두 나에게서 멀어져갔고, 나는 단절된 채 홀로 남았다. 그곳에는 우리 둘 말고 아무도 없었다. 에인슬리의 소매를 붙들고 있던 손이 외투 가장자리로 미끄러져 내려갔고, 나는 무릎을 꿇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부끄럽지 않았다. 자존심이나 위엄 같은 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위로가 될 말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바닥에 엎드러 길 수도 있었다. -사라진 앨리스: 코넬 울리치 스포츠 얘기 나와서 재미가 1도 없었음 ㅠ 요네자와 호노부가 나왔는데, 그러고보니 이 작가 작품은 한 권도 안 읽었네? ..

한밤의 도서관 2016.10.05

할로, 케빈

그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이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것이 크던 작던..자신만의 방법으로 그것을 이겨낸 사람도 있고, 나처럼 방황하는 사람도 있겠지. 어쩌면 내가 하는 고민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늘 그랬듯 답을 찾기 못하고, 무덤덤해질지도 모른다. 요즘 먹색 일러스트레이션에 빠져서, 그림도 사고 책도 산다. 이 책은 온통 다 먹색이다. 삽입된 작품 두 개 정도가 컬러. 일러스트가 둥글둥글~ 연필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다. 책도 1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더라고. 알라딘에 검색하니까 당연히 안 나옴. 그래서 어플에 등록하는데 애 좀 먹었음. 바코드 검색도 안되고, 키워드 검색도 안되니까... + 행복이란 뭘까?를 고민하는 젊은 청년의 이..

한밤의 도서관 201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