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13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페이스북은 100퍼센트 자기 자랑입니다. 자신이 만든 요리, 놀러 갔던 곳, 화목한 가족 모습 등을 올리면서 기대하는 것은 “와아, 멋지네요.” “수고했어요” 같은 칭찬입니다. 가끔은 자학적인 에피소드도 올리지만 그것도 ‘이런 것까지 올릴 수 있는 여유있는 나’에 대한 자랑입니다. 아이에 대한 얘기는 뭐를 올려도 성공합니다. “귀여워!” “많이 컸네.” “정말 고생 많았어.” 같은 칭찬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이래서 아이 애기는 빼놓기 어렵죠. 그런데 항상 SNS를 접해야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큰일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잘 아는 후배가 갓난아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미혼인 후배 친구 A씨가 “축하해”라는 댓글을 다니까 이 후배가 “너도 다른사람만 축하하지 말고 어서 네 아이 낳아야지. 정말 귀여..

한밤의 도서관 2017.03.01

퇴사학교

갈수록 일자리의 정원은 줄어들고 정년은 짧아지며 미래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사라지는데도, 우리는 마치 평생직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퇴사’라는 단어가 영원히 나와는 상관없을 것처럼 쉬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조직’마저도 이제는 스스로의 앞날을 책임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롤로그 퇴사학교 입학 테스트 1. 매일 아침 출근길이 무겁다 2. 이 일을 계속 해야할지 고민이다 3.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 4. 나중에 회사 없이 뭘로 먹고 살지 걱정이다 5. 회사 밖의 다양한 만남과 자극이 필요하다 6. 회사를 벗어나는 도전은 내게 너무 큰 두려움이다 7. 무작정 퇴사를 할 수도 이대로 회사를 다닐 수도 없어 답답하다 8. 언젠가는 ..

한밤의 도서관 2017.02.22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그는 자신의 젊음을 능력과 바꾸었고, 절망으로 성공을 빚어냈다. 그러나 삶은 젊음과 함께 그의 사랑이 지녔던 신선함까지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분별 있는 일’ 中 그들은 호텔 베란다에서 저녁을 먹었다. 하늘은 어두웠고, 그들을 감시하는 낯선 신의 존재가 가득 느껴졌다. 호텔 모퉁이에서 밤은 지나치게 낯선 소리들로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네갈의 북소리, 원주민의 피리 소리, 이기적이고 여성스러운 낙타 울음소리, 낡은 타이어 신발을 신고 달려가는 아랍인들의 발소리 그리고 배화교도의 울부짖는 기도 소리까지. 중독성은 언제나 어두운 곳보다 밝은 곳에서 드러나지. -해외여행 中 악을 부추기고 낭비를 조장하는 취향이 꼭 어린애들 장난 같았다. 갑자기 그는 ‘방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기분이..

한밤의 도서관 2017.02.20

양과 강철의 숲

피아노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물어보면 안 된다. 물어보는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면 다시 한 번 이쪽에서 무언가를 되돌려줘야만 할 것 같았다. 질문은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으나 형태를 이루지 못했다. 아마 되돌려줄 무언가가 내게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도 ‘올바름’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새로운 단어였다. 피아노와 만나기 전까지는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 몰랐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희미하게 밝아지는 나뭇가지나 그 후에 일제히 움트는 어린잎이 아름답다는 사실, 동시에 그것들이 당연히 거기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당연하면서도 기적 같았다. 분명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세상 모든 곳에 ..

한밤의 도서관 2017.02.16

매거진 B Vol.53 : 무인양품 (MUJI)

뛰어난 브랜드 콘셉트와 잘 정돈된 프레젠테이션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사람을 모으고,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은 훨씬 더 어렵고 중요한 문제입니다. 콘셉트를 이해하고 실행할 사람이 없다면, 조직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이니까요. ‘브랜드’는 만드는 게 아니라, 애정과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EDITOR'S LETTER 中 1980년 브랜드 론칭 당시 선정 조건 1 일상 생활 안에서 꼭 필요한 물건일 것 2 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사용하기 쉬운 것을 중심으로 3 식품은 맛은 물론 안심할 수 있는 소재를 4 입을 것은 무엇보다 입었을 때의 착용감을 중시할 것 5 생산 과정을 꼼꼼하게 점검하고 불필요한 비용이 들지 않도록 패키지를 최소화할 것 PARTN..

한밤의 도서관 2017.02.12

얼굴 없는 남자

“난 이번 일만 하고 그만둘 거야.” “이거 왜 이래.” 파커가 말했다. 매번 작전을 수행할 때마다 알마 또는 말, 이름이야 뭐가 됐든 간에 그런인간이 꼭 하나씩은 있었다. 그리고 작전 때마다 핸디 같은 인간도 꼭 하나씩 있었다. 언제는 다 때려치울 준비가 된 그런 인간들. 그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단언하며 작전이 끝나면 자기 몫을 챙겨 앙계장 같은 걸 사들여서 정착하겠다고 말한다. 그렇다. 작전 때마다 핸디 같은 인간이 하나씩 꼭 있고, 그런 인간들은 한두 해쯤 지나면 자기도 끼워달라며 어김없이 다시 나타난다. -PART 01 네브라스카에는 불법 성형외과 의사가 있다 7_초짜에 신참인 여자의 문제 어둠. 칠흑 같은 어둠과 스스로 만들어내는 소음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고요. 2주 동안 하루..

한밤의 도서관 2017.02.08

암살자닷컴

겐타가 웃었다. 남편과 나도 따라 웃었다. 가족이 다 함께 웃기는 오래간만이었다. 실내를 둘러보니 주위에는 가족 동반 손님뿐이었다. 어느 테이블이나 웃음 꽃이 피었다. 누구 생일이거나 결혼기념일 같은 특별한 날인가? 아니, 그런 이유가 없더라도 다들 이만한 외식은 하면서 산다. 예전에는 우리 가족도 그랬다. 특별히 호강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가족이 함께 평범하게 살고 싶을 뿐이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건 능력이 없는 걸 욕심이 없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야. 네 남편도 ‘내가 이 가정을 책임져야겠다’는 각오가 없이 도대체 어쩌겠다는 건지 모르겠구나.” “그 사람이 게으른 건 아니야. 누구에게나 운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기 마련이지.” “운이라고? 그것도 찌질한 남자들이 걸핏하면 써먹는 변명..

한밤의 도서관 2017.02.01

미스테리아 10호

“죽고 싶지는 않은데, 죽지 않으려는 노력은 전혀 안 해요? 평생 이런 식이었어요?” 죽어가는 남자가 말했다. “목숨이 사십 년 남았다면 만용을 부리기 쉽지. 사 분 남았을 때는 쉽지 않아…….” -죽음에 관해 말해봐: 코넬 울리치 살인 이야기는 때로 난롯가 옆 아가씨들에게 재미난 읽을거리가 되어주곤 합니다. 하지만 살인 자체는 좋은 일이 아니죠. 특히 살인자가 필사적으로 자신의 흔적을 감추려고 할 때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린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없고 마음을 들여다볼 수도 없기 때문에, 가장 짜릿한 사실이 누설되지 않는 법이지요. “살인이란 참혹한 거야.” 이게 전부였습니다. “게다가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더 끔찍해질 뿐이지.” 뭔가 들려줄 기미가 없었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한밤의 도서관 2017.01.23

편의점 인간

‘손님’이 이렇게 소리를 내는 생물인 줄은 미처 몰랐다. 울려 퍼지는 발소리에 목소리, 과자 봉지를 바구니에 던져 넣는 소리, 차가운 음료가 들어 있는 냉장고 문 여는 소리, 나는 손님들이 내는 소리에 압도당하면서도 지지 않으려고 “어서오십시오!”를 되풀이해서 외쳤다. 아침에는 이렇게 편의점 빵을 먹고, 점심은 휴식 시간에 편의점 주먹밥과 패스트푸드로 때우고, 밤에도 피곤하면 그냥 가게 음식을 사서 집으로 돌아올 떄가 많다. 2리터들이 패트병에 든 물은 일하는 동안 절반쯤 마시고, 그대로 에코백에 넣어 집으로 가져와서 밤까지 마시며 보낸다. 내 몸 대부분이 이 편의점 식료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이 잡화 선반이나 커피머신과 마찬가지로 이 가게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두 사람이 풍부한 감정으..

한밤의 도서관 2017.01.19

S.T.E.P

추악한 인간 본성이 적나라하게 사람들 앞에 폭로되는 장면을 무척 보고 싶다. EP.1 SA.BO.TA.GE. 찬호께이 中 그는 선박사고를 당하고 나무판자를 붙든 채 표류하는 조난자와 비슷하다. 손을 놓지 않을 의지력은 있지만 단지 기다리기만 할 뿐이다. 섬을 발견해도 손을 놓고 헤엄쳐서 섬까지 갈 용기도 없고 그저 나무판자를 껴안고 계속 흘러가기만 한다. 그러다가 삶의 의지도 포기하고 마는 그런 조난자다. “혼자 생활하는 거…외롭지 않아요?” 질문을 하고 나서야 사실은 나 자신에게 묻고 싶었던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혀. 바깥에서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다 들려서 시끌벅적한걸요.” EP.2 T&E 미스터 펫 中 그는 시내에 도착한 뒤 주변 환경이 자신이 감옥에 가기 전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

한밤의 도서관 2017.01.18

왕과 서커스

취재 기본은 4W1H다. 언제, 어데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는 처음 단계에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예단予断이 되기 때문이다. 술렁거리는 소리가 무거운 안개처럼 주위에 자욱했지만, 그것은 분노나 비애와 같은 명확한 방향성은 없고 그저 각각의 속삭임이 한데 어우러진 소리 같았다. 신문사에서 나온 뒤로 프리랜서로 먹고살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정 수입이 없다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불안한 일이다. 회사에서 일하면 비록 내키지 않는 일을 한 달에도, 이렇다 할 실적 없이 통상 업무만 하면서 보낸 달에도 통장에 월급이 들어왔다. 그 무렵이 좋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때는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발밑을 조금씩 좀먹어가는 오싹한 기분은 느끼지 않았다. 용기를 내기 ..

한밤의 도서관 2017.01.07

Littor 2016.12~2017.1

손가락이 꿈틀거린다. 왜 그랬냐. 지금 그걸 묻는 건가? 닥터. 미치면 병원을 가야 해. 알지. 그건 난도 알아요. 그런데, 병원에서 미치면 어디로 가야 하지? 닥터. 나는 병원에서 더 나쁜 방식으로 미쳐 가고 있네. 내 꼴을 보게나. 그러니 제발 나를 보내 주게. 절대로 벽에 머리를 박는 그런 짓은 하지 않을테니, 인증―살아 있다고 말해야 해(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정용준 아니 언제부터 나한테 그리 관심이 많으셨다고 이분들이 이러시나. 요즘엔 이런 생각이 든다니까. 어쨌거나 다시 한 번 부탁 좀 할게. 제발 말 좀 해 달라고요. 선생님들, 정말 제발 좀 알려 주세요. 나는 얼마든지 사과할 마음이 있다니까? 네 번이고 다섯 번이고, 아니 씨발 백 번이라도 사과하라면 할 수 있어. 나 진짜 요즘에 잠..

한밤의 도서관 2017.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