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uragawa 2017. 3. 1. 08:55

페이스북은 100퍼센트 자기 자랑입니다. 자신이 만든 요리, 놀러 갔던 곳, 화목한 가족 모습 등을 올리면서 기대하는 것은 “와아, 멋지네요.” “수고했어요” 같은 칭찬입니다. 가끔은 자학적인 에피소드도 올리지만 그것도 ‘이런 것까지 올릴 수 있는 여유있는 나’에 대한 자랑입니다.
아이에 대한 얘기는 뭐를 올려도 성공합니다. “귀여워!” “많이 컸네.” “정말 고생 많았어.” 같은 칭찬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이래서 아이 애기는 빼놓기 어렵죠.



그런데 항상 SNS를 접해야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큰일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잘 아는 후배가 갓난아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미혼인 후배 친구 A씨가 “축하해”라는 댓글을 다니까 이 후배가 “너도 다른사람만 축하하지 말고 어서 네 아이 낳아야지. 정말 귀여워” 하고 달았더군요. 저는 그 글을 보고 ‘행복한 사람은 왜 이렇게 잔인할까’하며 씁쓸해 했습니다.



“아이를 낳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이 정말 많습니다.”
이 말을 반대로 뒤집으면 “아이 없는 사람들이 모르는 것을 우리는 많이 알고 있다”입니다. 그리고 ‘아이를 낳고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무한한 사랑이거나 자신을 길러준 부모님에 대한 감사처럼 좋은 것들뿐입니다. 요컨대 “이런 멋진 것을 모른 채 아이가 없는 여러분은 나이만 처먹고 계시는 거예요”라는 말로 곡해할 수도 있다는 거지요.



저는 어린이는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부모나 선생님, 주위 어른들에 의해 어른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만 해도 제가 알아서 어른이 되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습니다. 어릴 때는 의식주 모두를 부모님에게서 받았습니다. 학교에 가면 부모님이 상상하는 어른의이미지에 가깝도록 만들어줄 기본적인 교육 방침이 정해져 있었고요. 용돈도 부모님이 주는 대로 받았습니다. 우리 집은 꽤 자유로운 분위기였지만 실은 부모님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의 자유가 아니었을까요.



같은 독신이라도 남성은 전도 대상에서 빠집니다. 독신 남성에게는 “결혼 안 해?”라고는 물어도 결혼을 뛰어넘어 아이 가지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남성은 “아이 낳는 기계”가 아니니 결혼해 기계를 입수하는 것부터 먼저 하라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여자 쪽은 확실히 아이 낳는 기계가 됩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처럼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아이만 낳으면”이라는 전도가 가능해집니다.
그런데 원료가 없으면 제품을 제작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두 깨닫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기계가 혼자 “만들어봅시다!” 한다고 일이 되는게 아니잖습니까. 그러나 독신 여성도 사십 줄에 들어서면 “낳으면 좋은데”라는 얘기를 듣지 못하게 됩니다.



50대 지인 남성은 결혼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이는 없었습니다. 부부는 사이가 꽤 좋았습니다. 반려동물인 골든 리트리버를 키우고, 함께 여행을 가거나 골프를 치면서 충실한 시간을 보냈죠.
그러던 어느 날,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지인은 30대 여성과 바람을 피웠는데, 그 여성이 임신을 했습니다. 서른다섯 살인 그 여성은 앞으로 또 임신할 기회가 없을지 모른다면서 낳기로 결심합니다. 지인은 내게 “나도 사실은 아이를 갖고 싶었어. 아내에게는 미안하지만 애인과 재혼해서 아버지가 되려고” 하더군요. 그리고 정말 그 여성과 결혼해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아이를 안고 있으면 “어머, 할아버지와 같이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듣는데도 절로 웃음이 난다고 합니다.



왕성하게 일하는 여성에게 “결혼 안 해?”라고 물었을 때 “일과 결혼했어”라며 호탕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것은 정해진 대사 같았죠.
최근에는 상황이 변했습니다. 사람들의 의식과 사회제도가 변해 활발하게 일을 하면서도 결혼과 출산까지 해내지 못하면 ‘유능한 여성’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일만 하는 여성은 일밖에 못하는 여성으로 치부하죠.



여: 나, 임신한 것 같아.
남: 뭐? 설마 낳으려는 건 아니지?!
여: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나, 낳을 거야! 어떻게 아이를 없애?! 당신, 전에 나랑 늘 있고 싶다고 했잖아? 아이가 생겼으니까 결혼해야지!

다른 교제 상대(사장 딸)가 있던 남자는 궁지에 몰려 급기야 여자의 목을 조르고……. 이런 스토리는 흔합니다. 이처럼 여성의 경우 결혼과 출산 얘기를 잘못 꺼냈다가는 관계가 끊길 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워집니다. 결혼, 아이의 문제를 꺼내자마자 발을 빼는 남자의 목에 어떻게 줄을 걸까. 젊은 여성용 잡지에는 치근대느 여자처럼 보이지 않는 옷차림과 화장법, 말과 행동법 등을 알려주는 기사가 거의 매달 실립니다.



인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산길을 걷는 것이라고 합니다.
가족의 짐까지 짊어지니까 무거워지는 것인데, 아이가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질 수 있는 만큼만 지고 가겠죠. 설령 그 짐이 무겁지 않더라도 “이 짐, 누가 좀 안가져가냐?” 혹은 “이 고개를 넘으면 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을거야.”라는 기대는 할 수 없는 법입니다. 목적지까지 자기 발로 걸어가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