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미스테리아 5호

한니발은 한마디로 ‘먹는 존재’다.걸출한 미식가로서 그는 모든 것을 먹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을 먹는다. 그리고 크게 가리지는 않지만, 대체로 무례하고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을 먹는다. 현대의 독자나 관객이 은밀하게 환호하는 이유는 그가 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먹어버리는 판관이자 에티켓 교사이자 육식동물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다운 식탁 예절 ― ‘윤리적’도살자, 한니발 렉터 알라딘에서 책 구매하려고 이것저것 보다 표지 디자인이 눈에 띄어서 구매해 봄.솔직히 어떤 책인지 모르고 구매했는데,매거진이더라고 ㅋㅋㅋㅋ 표지도 재질이 좀 간지남.소중하게 다뤄드려야 해..... 재미있는 컨텐츠들이 많았는데,내가 미스테리 소설을 좋아하지만 깊이가 깊지는 않아 그런지..

한밤의 도서관 2016.04.06

장수의 악몽, 노후 파산

점심 식사를 마친 다시로 씨는 옆에 있는 바둑실로 갔다. 그러나 상대가 없어 바둑을 둘 수가 없었다. 고령자 몇 명이 바둑을 즐기고 있었지만 다시로 씨는 그 사이에 끼려고 하지 않고 바둑실 안쪽에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소설과 기행문 등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장례식에 가면 조의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돈이 없으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없습니다.”친구들과의 식사 모임에도 참가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슬프고, 비참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친구라는 ‘유대’가 단절된 것이다. “이제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면 죽고 싶어질 때도 있지요. 왕진을 하러 오신 의사 선생님한테 이렇게 걷지 못하는 몸이 되다니 ..

한밤의 도서관 2016.04.04

말벌

붕붕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예전에 깐족거리며 나를 야단치던 과장을 연상시켰다. 안자이. 당신, 일할 마음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엉? 대체 무슨 생각이야?내가 웬만해선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제 도저히 못 참겠어. 영업일지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금까지는 자네를 생각해서 위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은 안돼.우리 회사가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있는 줄 알아? 살고 싶으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아니, 잠깐만. 그것이야 말로 안자이 도모야 작품의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인생이란 싸움의 연속이다. 싸움을 포기한 자는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안자이, 당신은 회사의 집이자 밥벌레야.일할 마음이 있긴 한 거야? 동료들..

한밤의 도서관 2016.03.31

인어공주- 탐정 그림의 수기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마치 어제까지와는 다른 세상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세상에 균열이 생겨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분명 그렇다.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에 그 정도의 영향력쯤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까지 해서 맞서야 하는 현실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한스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현실을 도피해왔다.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환상을 찾았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적혀 있어. 이 세상의 진실도 그러하단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에 우리네 인생은 너무나 짧아 세상의 규칙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더욱 엄격히 속박당하게 돼...

한밤의 도서관 2016.03.20

골든애플

“삼 년 더 늦게 태어났다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와카미 고이치와 같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비슷해서인지 속내가 나오는 것이다.-에로토마니아 中 분명 올해 겨울도 이런 식으로 어느샌가 지나갈 테고, 봄과 여름이 지나 다시 가을이 찾아오겠지. 뭔가 이 비슷한 게 있었는데. 아, 맞아. 얼마 전에 들렀던 전자제품 매장, 거기서 봤던 드럼세탁기. 나는 돌아가는 드럼세탁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돌던 세탁기 속의 잠옷, 속옷, 수건이 하나하나 다 보였는데, 탈수 모드에 들어가자 빨간 잠옷도, 베이지색 속옷도, 파란 수건도 모두 한데 뒤엉켜 뭐가 뭔지 알아 볼 수 없었다. 아, 지금 내 이생은 탈수모드나 마찬가지였다..

한밤의 도서관 2016.03.16

삼면기사, 피로 얼룩진

이 사람은 언제까지 신혼 기분으로 있을 셈인가. 결혼한지 7년이나 지났는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게 아닐까 내내 걱정하며 가슴을 졸인다. 막 연애를 시작한 아가씨도 아니고 좀 더 당당해도 될 텐데. 진짜 바람을 피운다 한들 모르는 척 있으면 대충 접고 돌아올 것이고 그만두지 않으면 전처럼 또 친정으로 가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럼 헐레벌떡 데리러 오는 게 형부라는 사람이니까. 중매로 결혼한 언니가 이제 와서 새삼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내라는 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게 아니라 마사후미라는 남자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게 두려운 걸까.-사랑의 보금자리 바로 그때 문득 나는 지금껏 내 사랑이 왜 성사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키 큰 사람이 좋다든가, 잘생긴 얼굴이 좋다든가, 늘 외모에만 반..

한밤의 도서관 2016.03.10

살인해 드립니다

켈러는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잭 일럼 같은 악역 배우라는 사실이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 말해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002 말을 탄 사나이 켈러 中 개를 보고 싶었다.켈러는 몇 년 동안 혼자였다. 혼자만의 길을 찾고, 생각을 남에게 털어놓지도 않았다. 혼자인 데 익숙했다. 어린 시절부터 본성이 고독하고 비밀스러웠는데 그가 선택한 직업에서는 이런 특징이 전문가의 요건이 되었다.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 이미 직업경력이 생겨 있더군. 그게 사람들을 없애는 일이었던 거야.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소질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관심이나 소질은 필요가 없더라고. 할 수만 있으면 돼. 처음에는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두번째에도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어...

한밤의 도서관 2016.03.08

하드 럭

일용직 파견만 하고 있으면 개미지옥이야. 그 녀석들 한없이 착취하잖아. ……정말 사람들의 품에서 착취할 수 있을 만큼 착취해간다니까. 지금 세상은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로 나눠져 있어. 입장이 약한 사람은 늘 착취될 뿐이야. 산책로의 수풀로 시선을 보내자 종이박스를 안고 자는 사람이 있다. 자신처럼 무거워 보이는 짐을 안고 헤매는 노숙자 같은 사람과 지나쳤다. 내내 고독했다. 어떻게 하면 이 늪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는 나날이었다. 어쩌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보상을 해주는 세상이 아니다. 악인이라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지도 않는다. 이런 놈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

한밤의 도서관 2016.02.24

핏빛 자오선

소나무 숲을 벗어나 저 앞에 끝 간 데 없이 이어진 저지대 너머, 지는 해를 바라보며 가다 보니 어둠이 뇌성처럼 떨어지고, 선득한 바람에 잡초가 빠드득 이를 간다. 밤하늘에 별이 어찌나 총총한지 검은 공간이 동이 나다시피 했다. 별은 밤새 쓰라린 호를 그리며 추락하지만 그 수는 도통 줄어들지 않는다. 사람은 자기 정신은 알 가능성이 상당하지. 왜냐하면 살려면 알아야 하거든. 자기 마음도 알 수야 있지만 알기를 원치 않지. 정말 그래. 마음은 들여다보지 않는게 최선이야. 하느님의 눈은 젖어 있네. 노인이 느릿느릿 말을 잇는다. 하느님의 분노는 잠들어 있지. 인간들 앞에서 100만 년이나 잠들어 있지만, 그것을 깨울 힘을 가진 존재는 오직 인간뿐이네. 지옥이 다 차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 내 말 잘 듣게. ..

한밤의 도서관 2016.02.21

호수의 여인

“난 믿는 얘기만 기억하거든.”그는 몸을 기울여 담배를 비벼 껐다. 그는 편한 자세로 일어서 전혀 서두르지 않고 가운의 허리띠를 꽉 조인 뒤 소파의 끝으로 옮겨 앉았다. “맞아. 내가 재차 묻는 다른 이유는 자네가 지나치게 관찰을 한 게 아닌가 확인하기 위해서일세. 너무 세세한 점까지 보는 사람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사람만큼이나 증인으로서 신뢰할 수가 없거든. 언제나 그 중 절반 가까이는 지어내니까 말야. 주변 정황을 고려해서 정확하기 확인하는 거지. 아주 고맙네.” 침묵 속에서 시간이 흘러갔다. 벽난로 위에 놓인 전자시계가 메마르게 웅웅거리는 소리 속에서, 저 멀리 애스터 드라이브를 지나가는 자동차의 경적 소리 속에서, 협곡 너머 산기슭 위 비행기의 말벌처럼 윙윙거리는 소리 속에서, 부엌에 있는 냉장고..

한밤의 도서관 2016.02.10

시머트리

“자네, 동료들한테 미움 사는 타입이지?”레이코는 갑자기 목덜미의 땀이 쏙 들어가는 서늘함에 불쾌해졌다. 몰래 엿보려던 구멍으로 오히려 감시를 당한 기분이었다. 초조함 비슷한 불쾌한 감정이 일었다. “정의? 웃기는 소리. 사람을 죽이는 데 정의고 나발이고가 무슨 상관이야? 오직 선택일 뿐이야. 살인이라는 방법을 택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건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이유와 죽이려는 마음은 전혀 별개라는 뜻이야. 사람을 죽이는 데에 타당한 이유따위는 이 세상에 단 하나도 없어. 하지만 정말 사소한 이유로도 사람은 사람을 죽이는 게 현실이지. 살인의 순간에는 오로지 선택할 기회만 있기 때문이야.”-지나친 정의감 中 형사가 어떤 인물에 대해 ‘아느냐’고 물었다. 건강하게 잘 지낼 리가 없지 않은가. 요즘 들어..

한밤의 도서관 2016.01.20

빅슬립

죽은 사람은 상처받은 마음보다도 무겁다. 하현달은 달무리를 드리운 채 래번 테라스의 유칼립투스나무의 높다란 가지 사이로 은은하게 비쳤다. 언덕 아래 낮은 곳에 있는 어떤 집에서 나오는 라디오 소리가 요란했다. 젊은이는 가이거의 집 앞 상자 모양 울타리 너머에 차를 대고 시동을 끈 뒤 자기 앞의 운전대에 두손을 올려놓은 채로 앞을 똑바로 보면서 앉아 있었다. 가이거의 울타리에서는 아무런 빛도 흘러 나오지 않았다. 나는 점심을 먹으러 나갈까 생각하다가 삶이 아주 지루하고 술을 한잔 하더라도 여전히 지루할 것이고 하루 중 어떤 때라도 혼자 술을 마시는 일은 어쨌거나 재미가 없겠거니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가벼운 발걸음, 여자의 발걸음이 보이지 않는 샛길을 따라왔고 내 앞에 있는 남자는 앞으로 움직였는데 마..

한밤의 도서관 2016.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