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창백한 잠

uragawa 2016. 4. 28. 00:07

“다쓰미 씨,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나랑 나이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지 않습니까. 이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 상상이 되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요. 어려운 건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느낌으로 ‘아, 이 사람은 이런 인간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게 있어요. 이건 특별히 당장 눈앞에 있는 상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됩니다. 옛날에는 이해할 수 없다고 목청 높여 싸우곤 했지만 지금이라면 그 남자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된달까요. 그렇지만 내 부친만은 아무리 해도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 사람만은 아들 입장에서 봐도 여전히 어딘가 속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라는 것은 실로 능숙하게 거짓말을 치는 생물이었다. 사기꾼도 무엇도 아닌 사람이 때로는 놀라울 만큼 연기력을 발휘하곤 했다. 지금의 가나코는 어떨까. 눈앞의 사람들을 속이려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긴 시간 자기 자신을 속여 온 것일까.




나는 가나코를 응시하며 침 덩어리를 삼켰다.

병으로 인해 기억이 희미해져 인생의 여러 가지 재산을 잃어야만 했던 사람에 대해 지금까지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에서는 나도 그녀도 아무 다를 바 없는 인간들이었다. 감성이라는 재산에 관해서도 그랬다.

가슴이 뛰어 금방 열이 났다.

사진 이야기를 하면 열이 났다.




이제 그만 인정해야 했다. 더 친밀한 관계가 되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있던 건 후지코만이 아니었다. 나도 그랬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둘이서 같은 인생을 걸어 나가고, 이윽고는 아이가 태어나 내가 새로운 가족의 일원으로 행세하며 살아가는 그런 인생이 왜인지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이 둘, 그리고 나와 부인까지 네 사람. 나는 그거면 좋았어요. 다에코도 그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와 살았을 당시 다에코는 결코 집안일이나 육아를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나한테는 좋은 아내였고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였어요. 그렇지만 아마 다에코 자신은 언제나 무언가가 부족했을 겁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다른 학부모들과 이야기하고 오후에는 아이들이 돌아오기를, 그리고 밤에는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죠. 그런 생활을 계속하면서 점점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겁니다. 그렇지만 나는 다에코의 심정을 전혀 몰랐어요. 이혼을 요구당했을 때는 청천벽력같이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 그건 전혀 갑작스럽게 든 생각이 아니었고 긴 세월 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여러 가지 일이 쌓여 온 결과였죠.”




“사람이라는 건 되는 대로 되게 되어 있지 않나,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다. 결국 무엇이든 결정하는 건 시간의 흐름일 뿐이고, 거기에 비하면 사람의 의사 같은 건 정말로 조그마한 부분이 아닐까 하고.”




그때 한 말은 전부 거짓말이야. 뭐가 도예고, 뭐가 도예를 위해서야.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 없어……. 일을 끝내고 혼자 밥 먹는 건 따분한 일일세. 술도 물처럼 쑥쑥 들어가. 그런데 조금도 취하지가 않아. 그저 이것저것 옛날 일을 떠올릴 뿐이지. 아내가 살아 있고 다이이치로가 아직 어린아이였던 시절 같은 걸 말이야. 나는 말이지, 처음 알았어. 이게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을. 반대파 녀석들에겐 미안하게 생각하네. 그렇지만 흙만 있다면 어디서든 일은 할 수 있어. 이 이상 공항 건설 분쟁에 휘말리기보다, 세 식구가 조용히 살고 싶었어. 그게 내 본심일세.




사람의 본질은 겉보기에는 알 수 없었다. 하물며 인간이란 생물을 결코 표면만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은 이미 뼈저리게 알고 있었을 터였으나, 그럼에도 다이이치로를 껴안는 유키코를 보고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