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엿듣는 벽

uragawa 2016. 9. 22. 23:17

호텔에서 일한 몇 달 동안 콘수엘라는 옷장을 상당히 풍성하게 재정비해오고 있었다. 남는 옷가지 몇 개 좀 가져온다고 절도라고 할 순 없었다. 그건 상식의 문제, 심지어 정의의 문제에 더 가깝다. 어떤 사람들은 아주 부자고 다른 사람들은 아주 가난하다면, 약간 균등하게 나눠 가져야 하지 않을까? 그런 면에서 콘수엘라는 자기 역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 필요도 없어. 냄새가 나잖아. 썩었으면 냄새가 나는 법이지.”



지배인인 에스카미요가 말했다.
“몇 방울 마셨을 뿐이에요. 기운을 차리려고.”
“몇 방울은, 하! 냄새가 풀풀 풍기는데.”
“돼지 자식에게 모욕당하고 내가 가만히 참을 줄 알아!”
“지금 네까짓 게 나를 돼지 자식이라고 부른거야. 이 도둑년이!”



서른세 살인데 이제껏 다른 사람에게 기대어 어린아이처럼 살았던 것 같아. 좋아서 그런 것도 아냐. 그저 남에게 기대지 않고 살 생각이 없을 뿐이었지. 그냥 집에 있으면서 익숙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난 앞으로도 줄곧 그럴 거야. 난 오롯이 혼자 있는 기분을 느껴봐야만 해. 



편지를 쓰는 일이 참 힘드네요. 막상 쓰려고 하면 잊고 싶은 일들이 선명하고 날카롭게 나타나거든요. 잊어버린다기보다는 도망치고 싶다는 말이 맞겠네요.



“대체 무슨 일을 꾸미는거예요, 도드?”
“언젠 내 일이 깨끗했었나.”
“그건 알아요, 하지만 뭐가 관련된 거죠?”
“사랑, 증오 돈. 뭐든 골라.”



지금도 그런 기분이에요. 바로 지금, 강풍이 불고 위험이 닥쳐오죠. 뭔가 해야만 해요. 하지만 뭔지 모르겠어요. 명령은 헛소리 같고 어디서 오는지조차 알 수 없어요. 그런데 배에서 내릴 순 없죠. 버턴양은 내릴 수 있겠어요?





“게임은 그만 하세요.”
헐린이 미소를 지었다.
“난 게임을 좋아해요.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겠죠. 어떤 면에서는 재미있어요. 길과 도드가 불안한 사냥개 한 쌍처럼 킁킁 냄새를 맡고 다니는데, 나는 그 둘을 냄새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무슨 냄새겠어요? 바로 서방님 냄새죠.”



그래, 그럴 거야. 그 말이 입에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래, 난 당신을 죽일 거야. 하지만 맨손으로는 아니야. 지금은 아니지. 내일모레, 어쩌면 그 이후에, 당신이 죽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들이 있으니까.



당신은 이해 못 해요. 친구도 없이 혼자서, 나를 싫어하고 내가 죽길 바라는 사람들하고만 만나며 사는 게 어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