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갑자기 미소를 띠었다가, 이내 평생 미소를 지어 본 적이 없다는 듯 거두었다. 그가 이죽거리듯 느른한 음성으로 말했다.
-밀고자 中
“도박사는 차 버려.” 다이얼이 잔을 건네주며 말했다. “녀석은 당신을 수렁에 빠뜨릴 거야.”
그녀가 잔을 홀짝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이얼이 그녀의 손에서 잔을 빼내, 같은 자리에 입을 대고 마신 후 잔 두 개를 든 채 상체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다시 키스를 했다.
-네바다 가스 中
그는 흔들의자에 앉아 몇 분 동안 꼼짝 않고 담배만 피웠다. 생각에 잠긴 그의 얼굴은 평온했고, 검은 두 눈은 다른 먼 세상을 향해 있었다. 마침내 그의 입꼬리에 단호한 미소가 걸렸다. 미소 속에 희미한 냉소가 배어 있었다.
미소를 지운 그는 묵묵히 집 안으로 돌아가서, 다시 시신을 끌어당겨 헛간에 넣고, 통나무로 허술하게 덮어 두었다. 그는 장작 헛간 자물쇠를 채우고, 별장 현관도 잠근 다음, 대로로 이어진 좁고 가파른 길을 올라 캐딜락을 세워 둔 곳으로 갔다.
차를 몰고 떠났을 때는 벌써 6시가 지났지만, 아직도 태양이 빛나고 있었다.
-스페인 혈통 中
“해낼 수 있겠어?” 내가 물었다. “못 하겠다면 지금 말해.”
“당연히 해낼 수 있죠.”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날 뭘로 보는 거에요?”
“사기꾼과 결혼한 여자잖아.” 내가 잔인하게 말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고, 그 누구도 속이고 있지 않지만 속이려는 서로를 그만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서로가 아는 현명한 커플처럼 서로를 향해 씩 웃었다.
“이보게, 탐정. 나한테는 여기 멋진 집이 있네. 조용하지,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아. 아무도 그럴 권리가 없지. 나는 백악관으로부터 직접 사면을 받았어. 나는 물고기들과 놀며 소일하고 있다네. 남자라면 뭐든 자기가 돌보는 걸 좋아하게 마련이지. 나는 세상에 땡전 한 푼 빚진 게 없어. 다 갚았거든. 이보게, 탐정. 이제 내가 원하는게 있다면 날 좀 내버려 두라는 것일세.”
나는 고개를 내두르고 그의 어깨 너머로 커다랗고 조용한 수족관에서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바라보았다. 피로가 엄습했다. 집 안이 너무 조용해서 온갖 망념이 머릿속에 떠올랐따. 오래전의 망념들. 어둠 속을 질주하는 열차와 우편 칸에 숨어 잆는 총기 강도, 권총의 작렬, 바닥에 쓰러져 죽은 우편물 담당자, 어딘가 열차 급수 탱크가 있는 역에서 몰래 뛰어내린 남자. 그리고 19년 동안 비밀을 지킨, 거의 지킨 남자.
-금붕어 中
청년이 말했다. “저는 술꾼이 제일 싫어요. 둘째로 싫은 건 술꾼이 여기서 곯아떨어지는 거고요, 셋째로 싫은 건 그게 첫 손님인 거예요.”
“당신은 마음에 드는 구석이 눈곱만큼도 없어요. 내 앞에서 꺼져요.”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둘 다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서로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말이다.
-붉은 바람 中
“암튼 잘 알아서 해, 헨리”
“그래. 잘 자게, 친구. 가위 눌리지 말고.”
그리고 그가 떠나자 갑자기 울적하고 외로워졌다. 헨리와 같이 있으면 그의 말투가 거칠긴 해도 내게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정말 사나이다웠다. 나는 병에 남은 위스키를 꽤 큰 잔에 따라 우울한 심정으로 단숨에 들이켰다.
-진주는 애물단지 中
다리를 펴고 일어서서, 스카치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침묵이 괴괴하게 깔렸고, 멋진 향수 냄새의 기억만 아련했다. 마지막 나뭇잎처럼 사라진 다음에약 비로소 알아차리는 그런 향수 냄새였다. 다시 머리를 만져 보고, 끈적한 곳을 수건으로 닦아 냈다. 이까짓 것은 신음할 거리도 되지 않는다고 생가갛며 다시 술병을 꺾었다.
처음으로 프론트 도어로 가서 도어맨에게 25센트를 주고 붕 뜬 기분으로 계단을 내려가서 잠시 보도를 따라 내 차가 있는 곳으롤 갔다. 금세 캘리포니아의 노을이 지고 있었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서녘의 샛별이 가로등만큼이나 밝았다. 인생만큼 밝고, 헌트리스 양의 눈동자만큼 밝고, 스카치 병만큼 밝았다. 그러고 보니 스카치 생각이 났다. 나는 네모난 병을 꺼내 조심스레 코르크 마개를 뽑고, 다시 막고, 다시 뽑았다. 집에 갈 수 있을 만큼 양은 충분하다.
“골칫거리가 내 일거리입니다. 달리 무엇으로 밥벌이를 하겠습니까?” 내가 말했다.
“그 모든 사건을 은폐한 죄로 당신은 콩밥을 먹어도 쌉니다. 이번 일로 얼마나 벌었습니까?”
“지터 영감의 의뢰를 받은 애나 핼지의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마 크게 적자가 났을 겁니다.”
-골칫거리가 내 일거리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