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침묵의 세일즈맨

uragawa 2017. 3. 29. 13:08

전 그냥 남아도는 잉여 무리들 중 하나죠.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졸업했더니 잉여 인간이네요.



“느낌이 있어, 샘. 일에는 타이밍이 있고 탄력받았을 때, 내친김에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
“느낌이요?”
“또 사람의 집중력이란 것도 있고, 나는 하던 일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는 게 싫어. 이제는 이해가 안 가는 점들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나 스스로 헛갈릴 거야. 지금까지 모은 조각들을 그렇게 버리고 싶지 않아.”



“난 실패자가 아니야.” 나는 힘주어 이야기했다. “다만 돈이 없고, 멍청하고, 운이 지지리도 없을 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존 피기와 관련된 이상한 사실들을 꿰어 맞추는 것이 내게 중요하고, 그걸 마음에서 덜어낼 때까지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건물에서 쫓겨나겠지만 그런 꼴은 전에도 당해 보았다. 돈을 못 벌지만 사립탐정을 그만두는 것도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딸린 사람 없이 나 혼자의 안위만 걱정하면 된다는 건 나름의 행운이다. 어떤 결정이건 영향은 나 혼자에게만 온다. 비록 돈이 없어도 그건 세상에서 가장 큰 사치였다. 지옥에 어떻게 갈지, 언제 갈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 말이다.



샘이 떠나자 갑자기 많은 것들이 끝난 것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왜인지 우울하지는 않았다. 한동안은 그 이유를 이해 수 없었다. 나는 돈이 없었고, 살 집도 조금 있으면 없어질 것이고, 탐정 면허증도 어찌 될지 모른다. 나는 사람을 두 명 죽였고, 좋은 사람 이었던 세 번째 사람도 죽었다. 나는 혼자였고 이제 같이 사는 자식도 없다.
하지만 어둠의 담요가 나를 감싸지는 않았다. 그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는 다시 삶을 시작해 볼 새로운 기회였다. 테이블 위의 카드를 다시 섞을 수 있는 기회 말이다. 과거의 패가 약간 섞여있는. 아닐 수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