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아직 뜨거운 거짓말

uragawa 2017. 4. 2. 13:23

3
그냥, 벚꽃, 포기
포기라는 것이 늘 한 순간의 결정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정이 있기 전까지 숱한 고민의 밤과 흔들리는마음을 고스란히 버텨준 시간이 있다. 대부분의 포기는 계절처럼 서서히 이루어지고, 그 결과의 양상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게 된다. 많은 것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처럼 슬프고 암담하지 않다. 그의 인생에 더 많은 계절이 있을 뿐이다.
-봄의 시작 中




4
태양, 경찰차, 빙하
쓸모가 없는 삶이 어디 있겠어. 어디다 쓸 줄 몰라서 이렇게 사는거겠지. 삶의 쓸모라는 것. 나의 삶도 분명 어딘가 존재하는 거겠지?
-한 여름의 알래스카 中



12
신문, 밀크초콜릿, 4시
그녀는 말했다. 기억이란 단단하지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금세 눅눅해지고 물에 풀어놓은 것처럼 흩어져버리는 것. 그래서 더 붙잡고 싶은지 모른다.
-기억의 거짓말 中



25
리모콘, 용기, 단골집
욕심은 많은데 의욕은 없다. 호기심은 많은데 관심은 없다. 외로움은 많은데 용기가 없다. 세상에 대한 불만은 많은데 바꿀 수 있는 대안은 없다. 너에 대한 정보는 많은데 다가설 만한 논리는 없다. 다시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은 많은데 그렇게 우리다시 만나면 또 헤어지지 않을 자신이 없다. 그냥 그렇게 되었다.
-헤어짐이 준 선물 中



27
남극, 변호사, 손바닥
우리들은 너무 쉽게 타인의 장래희망을 얕잡아본다. 각자가 마치 무언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 자신의 삶을 ‘바람직한 삶’이라 규정해놓고 사는 경우가 많다. 삶이란 저마다 다른 양상으로 펼쳐진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다른 사람과 견주어서 판단할 수 없는 것은 우리들 각자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장래희망이라는 것이 그 사람이 도저히 이룰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나는 그 사람의 내면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증거라고 생각한다.
-친구의 장래희망 中



36
브로콜리, 청년, 가면
“아무 표정도 없이 늙어 간다는 건 하나의 생명으로써 안타까운 일이야. 넌 참 표정도 감정도 풍부했던 사람이었는데, 언제나. 하긴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으니까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울거나 웃거나 中



54
심장, 여정, 공
사랑을 한다는 것이 매번 그렇게 알 수 없는 공을 가만히 굴리는 일이야.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가만히 공을 굴리다 보면 결국 다시 공은 저기 언덕 아래로 내려가 있거든. 열심히 밀어서 다시 언덕 위에 올려 놓으면 또 다시 아래로 내려 가 있고, 내려 가 있고, 그런 일들의 반복. 두근거리고 땀도 나고 하는 게 사랑이 다 운동처럼 느껴져서 그런 것인가 봐. 마음 안에서 열심히 무거운 공을 언덕 위로 굴리는 거지.
-마음의 상태 中



99
유보, 침대, 책
인간들이란 얼마나 가엾은 족속인가. 읽어야 할 책들을, 먹어야 할 음식들을, 마셔야 할 술들과 참아야 할 말들을. 나눠야 할 이야기들과 마주쳐아 할 눈빛들을, 지켜야 할 원칙들과 흘려야 할 눈물들과 삼켜야 할 탄식들을, 기억해야 할 시간들과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모조리 남겨둔 채, 또다른 날을 맞이해야만 하는 너와, 나와, 우리들. 오늘은 다 희미해져 버리고 그 자 슬그머니 꿰찰 내일이 얄밉다. 내일은 내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일은 내일이 없었으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