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

시행착오를 겪던 야스나가 대표에게 ‘카스텔라의 법칙’이라는 말을 알려 준 편집자 친구가 있었다. “카스텔라를 좋아한다고 계속 말하면, 남한테 받거나 저절로 얻게 된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목표를 말하고 다니면 자신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는 의미였다. 그 덕인지 창업하고 1년 반 뒤, 첫 책 『청이 없는 나라』를 출간할 수 있었다. -치이사이쇼보_ 야스나가 노리코 오스기 사카에가 한 말 중에 “자유롭고 유쾌한 사회”가 있다. ‘자유’는 쉽게 손에 넣을 수 없지만, ‘유쾌’하게 일하는 것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도요샤_ 도요타 쓰요시 출판 일은 어렵고 매일 실패와 반성의 연속입니다.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서 더 공부하고 싶어요. 아울러 회사의 경영 같은, 전혀 다른 능력도 필요합니다. 회..

한밤의 도서관 2017.05.29

도쿄 책방 탐사

일본에서는 독립출판물이라는 단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개인이 만들었고 일반 유통경로를 따르지 않는 인쇄표현물을 통틀어 자비출판물(自費出版物) 또는 자주출판물(自主出版物)이라고 한다. 그 표현물은 또다시 진과 리틀 프레스로 나뉘기도 한다. “흠, 진과 리틀 프레서의 경계는 사실 좀 애매하긴 해요.” 굳이 구분을 하자면 진은 표현 그 자체에, 리틀 프레스는 표현을 전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진의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을 사람들이 많이 읽으면 좋겠지만 읽지 않아도 만드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다. 고양이, 커피, 여행 등 말랑말랑한 내용이 대부분이고 잡지처럼 가볍게 읽힌다. 리틀 프레슨느 아무도 읽지 않고 자기 만족으로 끝나면 의미가 없다. 원전 반대, 환경 보호 등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을 다루기 때..

한밤의 도서관 2017.05.24

토니와 수잔

어떤 문제도 끝나기 전까지는 일시적인 문제가 아니다. 모든 문제는 영구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토니 헤이스팅스는 그의 희망이 머물러 있던 동굴이 차갑고, 텅 비어 있고, 미래를 빼앗겨 아무것도 없다는 걸, 이 남자들이 더 이상은 거기에 없는 뭔가를 찾는 걸 돕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부질없이 되돌아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텅 빈 도로들, 텅 빈 숲들, 텅 빈 차들을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그곳을 찾아보는 척해서 내가 그곳들을 다 찾아봤고,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말이다. 달리 할 수 있는 일도 생각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다니는 것 자체가 그들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만 깨닫게 해주고 있었다. 계속 시간의 흐름을 따르길 거부하는 ‘안 돼! 안 돼!’라는 말..

한밤의 도서관 2017.05.22

내 무덤에 묻힌 사람

일 년에 한 달밖에 보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서 사는 삶은 무척 힘들었고, 바닥에 구멍난 주전자처럼 매일을 메우는 건 무척 고됐다. 하지만 일이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도록 그를 구해주었다. 일을 통해서 그는 수없이 다양한 절망의 단계에 빠져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접촉했고, 그들과 비교하면 자신의 삶은 좋아보였다. “나는 막대사탕을 달라고 조르는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아니지, 피나타는 생각했다. 당신은 다이너마이트를 달라고 조르는 여성이야. 자신은 자신의 삶과 집을 좋아하지 않지. 그걸 아이와 함께 공유하는 게 두려운 거야. 그래서 모든 것을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아름다운 파편들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걸 보려는 거지. 도시의 불빛은 해안선과 고속도로를 따라 한 줄로, 한 무더기로 이어졌다가 차가 작은 언덕..

한밤의 도서관 2017.05.02

아주 오래된 서점

‘좃키혼’이란 출판사에서 판매를 포기하고 염가에 내놓는 책이다. 헌책 노점은 전쟁 전 진보초에서 역시 볼 수 있었던 모양이다. 밤바람을 맞으며 술을 깨려고 길거리의 헌책 진열대를 눈요기하며 걷는다. 이 또한 각별한 기분이었으리라. 어떻게든 되살아나면 좋겠다. 오카자키 사부를 알게 된 다음부터긴 하지만, 여행을 가면 그 지역에서 헌책방을 찾는 버릇이 생겼다. 나 스스로도 발전하려는 마음이 넘치는 제자라고 생각한다. “현책방을 운영하며 드는 생각 중 하나가, 물건이나 사람의 소멸을 그 자체가 기억이나 기록의 소멸을 뜻한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물건만이라도 남아 있으면,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고, 또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나타날 가능성은 남지 않을까요.” 현책방은 그 ‘가능성’을 잇는, 이야..

한밤의 도서관 2017.04.28

너무 시끄러운 고독

나라면, 내가 글을 쓸 줄 안다면, 사람들의 지극한 불행과 지극한 행복에 대한 책을 쓰겠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 내가 보는 세상만사는 동시성을 띤 왕복운동으로 활기를 띤다. 일제히 전진하는가 싶다가도 느닷없이 후퇴한다. 대장간 풀무가 그렇고, 붉은 색과 녹색 버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내 압축기가 그렇다. 만사는 절룩거리며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 지는데, 그 덕분에 세상은 절름발이 신세를 면하게 된다. 우리는 손..

한밤의 도서관 2017.04.19

호텔 프린스

보통의 중년 남자라면 다들 그렇게 산다. 가정을 떠난다는 생각 자체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다만 중년 남자라면 가정이 아닌 다른 곳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 정도는 한다. ― 대책 있는 삶은 어떤 건데요? 그것도 품위랑 같은 의미인가요? ― 그러니까 내 이야기는…… ― 고리타분한 충고는 그만둬요. 그런 말은 신물 날 정도로 들어왔으니까. -코 없는 남자 이야기 강 부장은 입사 때부터 나의 사수 역할을 했고, 결혼 전후로 미라와 함께 만난 적도 있다. 회사 파벌에서 유일하게 친인척 계열이 아닌데, 어떻게 그 자리까지 올라갔는지 신기하다. 가족에게 버림받는 것이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강 부장은 맛있는 거라도 사 먹으라고 하면서 내 주머니에 오만 원짜리 몇 장을 쑤셔넣었다. -해피 아워 ..

한밤의 도서관 2017.04.17

앞으로의 책방

○책방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에게 무언가 어드바이스를 부탁해도 됩니까? ●다카하시 즐거우니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자신이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분명 즐거우니까요. 그것이 즐겁지 않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할까. 그만두는 게 더 낫죠. 책방의 일이란 사람 마음의 부드러운 곳을 찌르는 것입니다. 책방은 사람의 소원이 벌거숭이가 되는 장소라고 할까요. 책방의 책장 앞에서 어슬렁어슬렁하면서 정보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책장을 보며 자기 일을 곰곰이 생각하면서 마음의 틈에 문득 들어오는 것을 무심히 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펀딩으로 받은 책. 매우 좋군 만족했다. 이카분코(공기책방) 장소가 없는 서점이라니 겁나 획기적인데???* 과거에 두번 1일 한정으로 정사원을 백 명 모집하는 기획..

한밤의 도서관 2017.04.11

아직 뜨거운 거짓말

3 그냥, 벚꽃, 포기 포기라는 것이 늘 한 순간의 결정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정이 있기 전까지 숱한 고민의 밤과 흔들리는마음을 고스란히 버텨준 시간이 있다. 대부분의 포기는 계절처럼 서서히 이루어지고, 그 결과의 양상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게 된다. 많은 것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처럼 슬프고 암담하지 않다. 그의 인생에 더 많은 계절이 있을 뿐이다. -봄의 시작 中 4 태양, 경찰차, 빙하 쓸모가 없는 삶이 어디 있겠어. 어디다 쓸 줄 몰라서 이렇게 사는거겠지. 삶의 쓸모라는 것. 나의 삶도 분명 어딘가 존재하는 거겠지? -한 여름의 알래스카 中 12 신문, 밀크초콜릿, 4시 그녀는 말했다. 기억이란 단단하지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금세 눅눅해지고 물에 풀..

한밤의 도서관 2017.04.02

서점을 둘러싼 희망

서점을 유지하게 위해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팔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영업일로 다시 나눠서 하루에 몇 권의 책을 팔아야 하는지 계산하면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만큼의 책을 팔 자신이 없다면 음료든, 이벤트 참가비든, 잡화든 매출을 메워줄 다른 수익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사적인 서점 그런데 한국에서는 친구가 만든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힙스터는 중산층 이상의 부자들이기 때문에 본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돈을 씁니다. 하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돈이 없으므로 사진을 찍으면 잘나오는 인테리어는 좋으나 음식 가격이 저렴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가 그 공간의 사진을 찍고 그걸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탐구생활 동네서점이 사라지면 그 손님이..

한밤의 도서관 2017.03.30

침묵의 세일즈맨

전 그냥 남아도는 잉여 무리들 중 하나죠.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졸업했더니 잉여 인간이네요. “느낌이 있어, 샘. 일에는 타이밍이 있고 탄력받았을 때, 내친김에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 “느낌이요?” “또 사람의 집중력이란 것도 있고, 나는 하던 일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는 게 싫어. 이제는 이해가 안 가는 점들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나 스스로 헛갈릴 거야. 지금까지 모은 조각들을 그렇게 버리고 싶지 않아.” “난 실패자가 아니야.” 나는 힘주어 이야기했다. “다만 돈이 없고, 멍청하고, 운이 지지리도 없을 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존 피기와 관련된 이상한 사실들을 꿰어 맞추는 것이 내게 중요하고, 그걸 마음에서 덜어..

한밤의 도서관 2017.03.29

디자이너 고객에게 말하다

디자인은 예술도 아니고, 멋진 영감으로 번개처럼 나타나는 결과물도 아니다. 고객이나 자기 회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이다. 또 누구나 한마디씩 “여기 색깔이 어떻고, 저기 모양이 어떻고”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수년간 전문성을 쌓아온 사람들이 행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다. 좋은 디자인이란 마술 모자에서 토끼를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창의성’의 산물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수해하는 엄격한 문제 해결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두 가지 안을 모두 보여주시겠습니까?” 대답은 ‘안 됩니다’이다. 숨어있는 관계자 “당신이 작업만 훌륭히 해낸다면 모두 알아줄 것이다.” 웃기는 소리다.그들은 자신이 배제된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된 걸 ..

한밤의 도서관 2017.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