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노르웨이의 숲

uragawa 2017. 10. 4. 19:30

아무도 없다.  나오코도 없고 나도 없다. 우리는 대체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나는 생각해 본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그렇게나 소중해 보인 것들이, 그녀와 그때의 나, 나의 세계는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그래, 나는 지금 나오코의 얼굴조차 곧바로 떠올릴 수 없다. 남은 것은 오로지 아무도 없는 풍경뿐이다.



이렇게 기억을 더듬으며 문장을 쓰다 보면 때때로 격한 불안에 빠지고 만다. 불현듯, 혹시 내가 가장 중요한 기억의 한 부분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몸속 어딘가에 기억의 변경이라 할 만한 어두운 장소가 있어 소중한 기억이 모두 거기에 쌓여 부드러운 진흙으로 바뀌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고독한 걸 좋아하는 인간 같은 건 없어. 억지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것뿐이야. 그러다가는 결국 실망할 뿐이니까.”



“내가 가장 두려운 것은 그렇게 죽어 가는 거야. 천천히 죽음의 그림자가 생명의 영역으로 파고들고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아무것도 안 보이는 어둠이 깔렸고, 주변 사람들도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으로 바라보는 상황. 그런 거 정말 싫어. 절대로 견딜 수 없어. 난”



우리는 분명 자신의 뒤틀린 부분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건지도 몰라. 그래서 그 뒤틀림이 불러일으키는 현실적인 아픔이나 고뇌를 자기 내면에서 정리하지 못하고,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여기 들어온 거야. 여기 있는 한 우리는 남을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되고, 남에게 아픔을 당하지 않아도 돼. 왜냐하면 우리 모두 스스로에게 ‘뒤틀림’이 있다는 사실을 아니까.



“그러니까 말이야, 가끔 세상을 둘러보다가 넌덜머리가 나. 왜 이 인간들은 노력이란 걸 하지 않는거야, 노력도 않고 불평만 늘어놓을까 하고.”
나는 어이가 없어 그저 나가사와를 쳐다보았다. “내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몸이 부서져라 노력하는 것 같아 보이는 데, 내가 뭘 잘 못 본 겁니까?”
“그건 노력이 아니라 그냥 노동이야.” 나가사와는 간단히 정리해 버렸다. “내가 말하는 노력은 그런 게 아냐. 노력이란 건 보다 주체적으로 목적 의식을 가지고 행하는 거야.”



“그럼, 행복해라. 여러 가지 일들이 있겠지만 너도 나름대로 고집이 있으니까 잘해 나가리라 믿어. 한 가지 충고해도 될까, 내가.”
“해 주세요.”
“자신을 동정하지 마. 자신을 동정하는 건 저속한 인간이나 하는 짓이야.”



4월은 혼자 지내기에는 너무도 쓸쓸한 계절이다. 4월에는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한 듯이 보였다. 다들 코트를 벗어 던지고 밝은 햇살 속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캐치볼을 하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렇지만 나는 완전한 외톨이였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 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