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부스러기들

uragawa 2017. 10. 2. 23:48

토라가 요리보다 귀찮게 여기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 주제에 있어서 그녀는 지난 몇 년 사이 부쩍 음식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는 대부분의 친구 부부들과 성향이 갈렸다. 심지어 한 친구는 토라와 토라의 남자친구 매튜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요리교실 수강증을 끊어주고는 본인의 결정에 아주 만족스러워 했다. 토라와 매튜는 ‘중동의 마법’이라는 이름의 요리교실에 의무감으로 참석했지만, 강사는 두 사람에게 요리의 즐거움이라는 마법까지 전파해주지는 못했다.



토라는 어째서 지금까지 아름답고 젊은 여자와 돈 한 푼 없는 늙은 남자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지 신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토라와 무슨 상관이겠는가?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것에 끌리기 마련이고, 의도가 무엇이든 두 사람만 합의에 만족한다면 어차피 나쁠 것은 없었다.



아이에르는 복잡한 생각을 머릿속에서 떨쳐내려 애썼다. 우울한 생각이 자신을 압도하도록 내버려두는 건 의미 없는 짓이었다. 걱정거리에 상상의 날개를 달아주게 되면 끝도 없이 자가증식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부리냐르는 이직할 시점이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누구도 이 사실을 자신만큼 절실하게 느끼지는 못할 것이다. 5년 전 이곳에서 항구 감시원으로 일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야간근무가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금방 익숙해지리라는 믿음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이 일에 코가 꿰는 건 애초 그의 계획이 아니었다. 그저 대학을 중퇴하고 남는 시간 동안 돈을 좀 벌다가 적성에 맞는 학과를 재등록하려 했다. 밤에 근무하면서 미래 계획을 세워볼 생각이었지만, 수천 번의 야간근무를 반복한 지금 브리냐르의 머릿속에 떠오른 결론이라고는 이곳에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 호화요트가 항구에 정박하고 난 이후 그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브리냐르와 마찬가지로 요트의 승객들 역시 삶이 눈앞에 길게 펼쳐쳐 있다고 확신했겠지만 결과는 달랐다. 그는 현재의 삶이 영원히 반복되는 걸 원치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의 운명을 바꿀 힘이 없었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채 친구들과 다른 시대에 사는 것만 같았다. 얼른 손 쓰지 않으면 레이캬비크의 밤거리를 배회하는 인생 낙오자들이나 상대하는 늙고 외로운 꼰대가 되기 십상이었다.



행동에 돌입하기 전 잠시 동안의 고요한 순간, 고독감이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난데없이 떠오른 라라의 생명보험금은 찜찜한 입맛을 남겼다. 보험금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의 계좌에 거액의 돈이 찍힌 것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 그는 오랫동안 부자가 되는 꿈을 꾸었지만 이런 식으로 돈이 들어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 했다. 너무나 크나큰 대가를 치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