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달의 조각

uragawa 2017. 3. 3. 23:02

버려진 밤
가끔 나도 나를 감당하기 힘든 밤이 있다. 지금 내가 왜 슬프지, 왜 이런 거지 같은 기분이 드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밤이면 저 끝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 빛 한 줌 들지 않는 깊숙한 곳에 천막 하나를 치고, 그 안에서 누군지도 모를 얼굴을 하염없이 원망한다.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냐고, 왜 나조차 나를 보듬을 수 없냐고.




너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지금 이 시간을 공유하며 슬픔을 느끼는 건 저기 달콤한 케이크 위의 가느다란 초 하나겠구나.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려도, 데인 마음이 뭉텅이로 떨어져 내려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겠지. 작은 연기는 너무 쉽게 사라지고, 매캐한 냄새조차 공중으로 흩어지겠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차갑게 식어 굳어 가는 마음을 안고, 모두가 웃고 떠드는 사이, 한없이 행복한 밤으로 기억될 시간 속에서.



감정 낭비
고작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나면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을 사람들 때문에 너무 많이 상처 받고 고민하지 말아요. 때로 놓을 사람은 놓을 줄도 알아야 내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내어 줄 수 있으니. 지금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절반은 다음 이 계절 내 곁에 없을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세요.



당신의 언어
...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낯선 언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함께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며 서로의 언어를 배워갑니다. 통하지 않는 언어 속에서 웃고 울다가 나는 그만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행복은 저축할 수가 없어서, 오늘 아낀 행복은 내일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가장 사치스럽게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고 싶다.



침몰
갑자기 찾아왔다 갑자기 떠나간 사랑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순간이 있어요. 아무리 깊은 바다도 두려워하지 않던 사람이 감당하기 버거운 슬픔에 잠겨 숨만 참고 있게 되는 그런 순간이. 배운 적이 없으니까요. 우리는. 언제 빠졌는지도 모르는 깜깜한 물 속에서 앞을 보는 방법을.



손끝의 온기
위로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이제는 넘쳐나는 그 위로들에게서 아무런 위로도 받을 수 없다. 힘내라는 말 속에는 힘이 없고, 괜찮다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좀처럼 괜찮아지지 않는다. 무조건적인 희망을 말은 떄로 의도하지 않은 폭력성을 가진다. 괜찮아, 할 수 있어, 너는 나의 희망이야. 무거운 말들은 부담이 되고, 그 부담은 가장 순수한 얼굴을 하고 목을 바짝 조여온다.
어쩌면 우리게에 필요한 것은 힘내라는 말이 아닌 손끝으로 전해지는 작은 온기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에 쉽게 빠지는 사람을 시기한다. 아무리 나를 좋아해 줘도 내 마음이 가지 않으면 좋아지지 않는 나와 다르게 자신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이유만으로도 누군가를 쉽게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을 질투한다. 설렘이 자주 찾아오는 삶은 어떤 색일까. 자주 부풀 수 있는 마음은 얼마나 말랑하고 부드러울까. 부러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고, 그렇게 되고 싶다가도 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복잡하게 얽힌다.



인연에 대한 집착
좋은 인간관계를 선호한다. 깊은 척하는 관계보다는 차라리 서로의 얕음을 인정하는 관계를 선호한다. 너무 많은 노력을 요하는 관계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너무 넓기를 바라고, 또 너무 깊기를 바란다. 나의 존재가 한없이 초라해지고 작아지는 밤, 맥주 한 캔을 함께 비울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부끄러워 한다.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가벼운 인연을 우정으로 포장한다. 내 앞의 네가 나의 너이기를 바라고, 우리라는 단어 속에 자신을 가두며 안정감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