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디자이너 고객에게 말하다

uragawa 2017. 3. 16. 21:58

디자인은 예술도 아니고, 멋진 영감으로 번개처럼 나타나는 결과물도 아니다. 고객이나 자기 회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이다. 또 누구나 한마디씩 “여기 색깔이 어떻고, 저기 모양이 어떻고”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수년간 전문성을 쌓아온 사람들이 행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다.



좋은 디자인이란 마술 모자에서 토끼를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창의성’의 산물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수해하는 엄격한 문제 해결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두 가지 안을 모두 보여주시겠습니까?”
대답은 ‘안 됩니다’이다.



숨어있는 관계자
“당신이 작업만 훌륭히 해낸다면 모두 알아줄 것이다.”
웃기는 소리다.그들은 자신이 배제된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된 걸 알고는 프로잭트를 망치려고 들 것이다.
나는 안타깝게도 여러번 이런 상황에 놓인 적이 있다. 좋은 의도를 가진 팀이 나를 고용했고, 나는 당연히 모든 관계자가 해당 ㅡㅍ로젝트를 알고 있느냔고 물어보았다. 그들은 “네” 또는 “물론이죠!”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작업ㅇ르 진행했고, 엄청난 일을 함께 해냈는데, 프로젝트가 출범하려는 즈음 지금까지는 보이지 않던 관계자가 어둠 속 배트맨처럼 갑자기 나타났다. 이 유령은 다음과 같은 말로 모습을 드러내곤 했다. “최종 결제 전에 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합니다.” 이 ‘위원회’는 투자자가 되었다가 총장님이 되었고, 익명의 동업자가 된 적도 있고, 고객의 아버지인 경우도 있었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광고 업계가 많은 죄를 범했지만 이런 사람들을 ‘창의적’이라 일컬음으로써 가장 큰 죄를 범했다. 안타깝게도 웹디자인 업계 또한 이를 수용하고 말았다. 누군가를 창의적이라고 일컫는 것은 그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소외시키는 것이다. 디자이너에게 이런 낙인을 찍으면 전략과 제품 정의, 비즈니스 목표, 지표 등에 관한 대화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낳는다.



혼자서만 일하는 디자이너를 조심하라. 홀로 일하는 디자이너는 자기가 아는 것만 안다. 하지만 다른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해본 디자이너는 그들에게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배우며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을 다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당신이 운영하는 조직의 유형과 디자이너가 보유한 기술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무슨 권한이든, 당신이 고용한 디자이너의 능력을 보고 싶으면 최대한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회계사에게 어무 처리 방식을 가르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디자이너에게 업무 처리 방식을 가르치려는 회사는 널리고 널렸다.
신념과 경험을 갖춘 디자이너는 아무런 문제없이 일할 공간을 만든다. 하지만 권한이 없으면 디자이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디자이너를 무작정 사무실로 데려오는 것은 휘몰아치는 변덕의 도가니로 밀어 넣는 위험천만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디자이너는 팀의 온전한 구성원이 될 수 없다. 말이 좋아 디자이너지, 사실 복사기처럼 그저 픽셀을 움직어야 할 때 아무나 불러다 쓰는 물건에 불과하다. 이렇게 해서 UI 작업을 해야할 디자이너가 인사부 직원의 ‘잃어버린 고양이를 찾습니다’같은 전단지 따위나 만드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작업에 참여하지 않은 사이트를 자신의 방식으로 다시 작업해 포트폴리오에 실은 디자이너도 조심하라. “크레이그리스트 사이트를 새롭게 바꿔보았습니다.!”와 같은 것 말이다. 그 디자이너는 고객 프로세스나 고객 사례를 지켜보지 않았다. 내부사항도 전혀 모른다. 디자이너가 새로 만든 버전은 디자인이 아니다. 고객과의 협업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해결책도 아니다.



“종일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면 진짜 재미있겠어요”는 다른 말로 “당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만큼 나에게 돈을 내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이다. 이런 말 다음에는 보통 이 일이 당신의 경력에 도움이 될 거라든지. 포트폴리오에 넣으면 좋을 거라는 말이 따라온다. 다른 헛소리로 디자이너의 명예욕을 자극하기도 한다. 이런 말들이 통하는 경우도 있긴하다.
그런데, 절대 통하지 않는 것이 있다. 낮은 단가로 또는 심지어 무료로 일하기로 서명한 디자이너는 최고 기량을 펼치지 않는다.



견적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데이터 포인트를 고려해 작성한다.
· 범위 : 프로젝트의 목표, 규모, 복잡성 - 문제 해결에 필요한 작업의 양.
· 경험 : 노련한 디자이너는 더 비싸다. 뒤얽힌 문제를 다룰 줄 아는 디자이너는 쉬운 문제를 풀어본 디자이너보다 단가가 높다. 복잡한 문제 해결은 실전으로 다져지는 기술이다. 당신은 디자이너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 덕에 충분한 혜택을 보게 된다.  당신과 일할 때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므로.
· 가치 : 앞에서 이미 얘기했다. 디자인 작업이 당신의 조직과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클수록 비용은 높아진다.
· 유용성 : 공급과 수요가 요인이다.
· 프로젝트의 위용 : 당신의 프로젝트는 디자이너가 정말 하고 싶어하는 또는 포트폴리오에 꼭 싣고 싶을 만큼 매력적일 수 있다. 다만 이때 ‘위용’은 디자이너가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다. ‘포트폴리오용으로 훌륭한 작품’이 될 작업이라고 운운하면서 악용하려는 고객도 있다. 이와 유사하게, 작업이 비밀이어서 디자이너가 포트폴리오에 넣지 못한다면 그 부분만큼 보상해야 한다.
· 조직의 규모와 복잡성 : 이것은 프로젝트 관리 자원에 영향을 미친다. 스무 명의 일정과 의사소통을 조율하는 것은 다섯 명의 경우보다 더 오래 걸린다. 시간이 드는 만큼 돈도 들게 마련이다.
· 일정 : 놀랍게도 일을 빨리 해달라고 하면 더 짧은 기간만 일하게 되므로 작업 비용이 줄어든다고 생각하는 고객이 있다. 페덱스에 당일 배송을 신청하면 택배 상자가 트럭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으니 요금도 줄어드는가.
· 사업 비용 : 디지털 디자인과 전략에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 하지만 실력 있는 사람들과 생산성 있는 사무실을 갖추려면 비용이 든다. 고객인 당신이 둘 다를 원한다면 특히 더 그렇다.
· 까칠한 고객에게 부과하는 추가 비용 : 중요하다 .나머지 조건이 모두 같다고 할 때 당신이 사업 개발 단계에서 까칠하고 제멋대로 굴면 디자이너는 당신이 프로젝트 진행 중에도 그럴 것을 예상해 보상 차원에서 더 많은 돈을 요구한다. 한편, 존경할 만한 일을 하는 비영리 단체나 좋은 업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이전 고객에게는 종종 깜짝 할인도 해준다.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든 할인 받으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더 높은 비용이 요구될 수 있다.
단연코, 견적의 가장 큰 요소는 프로젝트의 규모와 복잡성 또는 범위다.



좋은 디자인은 직관이나 재능 또는 운에서 나오지 않는다. 좋은 디자인은 리서치와 합의에 기초한다. 고객에게 이것이 우리가 일하는 프로세스이며 고수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 포트폴리오에 담긴 작업, 그들이 우리를 잠재적 파트너로 보고 접근하게 만든 바로 그 작업도 이러한 프로세스의 결과라고 말했다.



당신과 나는 친구니까 업계 비밀을 하나 털어놓겠다. 이런 것을 우리는 ‘방귀 뀌는 소리’라고 한다. 당신은 절대 이런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이기 때문에 알려주는 것이다. 팀원 모두가 모여서 몇 시간 동안 논의를 하는 상황이다. 리서치나 데이터에 관해 논쟁하고 좋은 결론을 내개 위해 노력하는 상황에서 경영진 한 명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나는 중간 게 맘에 드는군!”이라고 말하는 것 만큼 프로세스를 허물어뜨리는 것도 없다. 



“나는 스크롤하는 게 싫더라고요”와 같이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지 마라. 그런 말에 디자이너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독자들은 큰 서체와 편안한 스크롤을 선호한다고 리서치에 드러나면 디자이너는 그에 맞게 작업한다. 모든 독자가 당신과 같지 않다. 당신의 선호대로만 개발하면 한 사람만 행복하게 된다. 바로 당신 말이다. 



사람들이 야근을 한다.
나는 야근을 좋게 보는 여러 회사에서 일했다. 적당한 시간에 퇴근하는 건 대의를 어기는 배반 행위였다. 물론 프로젝트 진행 중에는 언제나 그런 순간이 있다. 특히 프로젝트 마감일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최대치의 작업 능률을 올리려고 한다. 이런 상황이 되면 먹을 것만 챙겨주고 건들지 마라. 하지만 이런 일이 정기적으로 벌어진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다. 일정을 살펴보고 뭔가 비합리적일 일은 없는 지 확인해야 한다. 



사람은 해고하는 일은 찝찝하다. 그래야만 한다. 이 끔찍한 느낌은 당신이 사람이라는 증거다. 하지만 누군가를 해고하는 일이 얼마나 찝찝하든지 간에 해고당하는 것 만큼 찝찝하지는 않다.



새로운 사람을 찾기 전에 당신이 지금까지 배운 것을 적용해 살펴보라. 고용 과정에서 놓친 위험신호는 없었는가? 문제의 원인이 일의 퀄리티에 있었는가, 관계 자체에 있었는가? 좀 더 경험 많은 디자이너가 필요했던 건 아니었는지? 아니면 돈을 아끼고 싶어서 무조건 급여가 낮은 사람을 고른 것은 아닌지?(이제 알겠는가. 당신은 돈을 아낀 것이 아니다. 비용을 아낀 만큼 위험을 얻게 된 것이다.)







2015/05/12 - [△텅빈도서관] - 디자이너, 직업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