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아기 말고 내 몸이 궁금해서

엽산 저장량이 부족한 정자도 선천성 기형을 일으킬 위험이 높다. 엽산은 수용성비타민의 일종으로 DNA 합성과 세포분열 등에 관여하는데, 가임기 여성이 엽산을 먹지 않으면 태아 척추 이분증이 생길 수 있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가임기 남성이 엽산을 먹지 않아도 문제가 발생한다. 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엽산을 먹지 않은 수컷의 2세가 엽산을 많이 먹은 수컷의 2세에 비해 선천성 결손 발생 비율이 30%가량 높게 나타났다. 또 다른 연구에서 엽산을 많이 먹은 남성들(섭취량 상위 25%)은 정자 염색체 수가 비정상일 위험이 대조군보다 20~30% 낮았다. 이론적으로 마지막 생리 시작일을 임신 0주차 0일로 본다. 흔히 열 달간 아이를 품는다고들 하지만, 인간의 임신 기간은 열 달이 채 안되는 40주(..

한밤의 도서관 2019.10.13

브러시에 낀 먼지를 떼어낸다는 것은

디자이너를 그만두고 싶다고 했지만, 디자인을 하기 싫다는 말이 아닙니다. 일은 재미있습니다. 단지 어렴풋이 디자인 세계에 답답함을 느껴 벗어나고 싶은 것 뿐입니다. 이런 상태에 대해 사회학자에게 물으면 마치 막다른 골목에 부딪힌 것 같은 ‘요즘 시대의 폐색감閉塞感’이라 할 테고, 심리학자에게 물으면 ‘과거의 트라우마’라고 할지 모릅니다. 주변에 털어놓으니 다들 쉬라지만, 원인을 찾아봐도 어찌할 도리가 없으니 답답할 따름입니다. 일러스트레이터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가? 나는 지면과 광고의 내용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요지후지의 작풍’만을 요구했다. 그대로 한다면 아마 1년만 지나도 식상하다는 소리나 듣고 버려질 것이다.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었다. 어느 날 나..

한밤의 도서관 2019.10.10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국내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28만 여명이 사망하는데, 실제로 타살은 500여 명 정도, 즉 10만 명당 1명이 안 된다. 2017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0만 명당 0.8명이며, 흔히 10만 명당 2명 정도로 나오는 통계는 살인미수까지 포함된 경우다. 반면에 자살은 10만 명당 24명이 넘는다. 타살의 30배의 달하는 수치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의학자 수는 정확히 40명이다. 부산에 있는 세 명을 제외하고, 전부 전국에 흩어져 있다. 1년에 두 번씩 개최하는 학회에 참석할 때도 법의학자들은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 혹시 같은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만약 사고라도 날 경우를 대비하기 위하서다. 혹시 사고가 발생해 한꺼번에 죽는 일이 발생하기라도 하면 우리나라 법의학자가 전멸할 우려가 있기..

한밤의 도서관 2019.10.08

누구나 결국은 비정규직이 된다

채용 측이 조건(연령이나 성별, 경력 등)을 상당히 제한적으로 좁혀놓아서 여기에 맞는 인재가 올 때까지 구인광고를 계속해서 내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효구인배율이 높은 것은 노동자에게 있어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자료라고밖에 달리 할 말이 없다. 비정규직이 2,000만 명까지 늘어나고 실제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은 쉽게 말해 ‘정규직 사원이 되기 위해 넘어야 할 허들은 높고, 비정규직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정규직 사원이 못 된다’는 걸 의미한다.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인사 업무를 경험한 전문가의 말에 따르면, 12시간 노동은 특히 제조업 경영자에게 있어서 매우 매력적인 제도라고 한다. 8시간을 1.5배 늘려 노동자에게 일을 시키면 인원은 그대로지만 결과물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한밤의 도서관 2019.09.26

별별 일로 잘 먹고삽니다

현재 지망생이라면 또래의 성공한 배우들을 보며 부러워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경제활동을 하기를 권한다. 경제활동은 생산적인 일이다. 일을 하다 보면 활력을 되찾는다. 되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연기’만 생각한다면 꿈에서도 일상에서도 나아갈 힘을 잃어버릴 수 있다. 한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다음 거래를 만들어낸다. 그의 임무는 약속 기한 내에 좋은 품질의 물건을 납품하는 것이다. 자신이 받을 손해보다 상대의 신뢰감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이 성공적인 비즈니스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몸이 아프면 가정에 행복은 없다. 가정에 불화가 생기면 회사에 와서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오너로서 인생의 1순위가 회사라면 더 좋겠지만 그것은 무책임한 생각에 불과하다고 한다. 대신 자신이 건강하고 온전할 때 일의 능..

한밤의 도서관 2019.09.25

유튜브로 책 권하는 법

일단 유튜브에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최소한의 조건이란 구독자 수 1천 명, 시청시간 4천 시간입니다. 둘 모두를 충족해야 하므로 꽤 어렵습니다. 채널에 정기적으로 방문할 의사가 있는 사람이 천 명을 넘어야 하고, 사람들이 실제로 시청한 시간의 총합이 4천 시간, 즉 24만 분을 넘겨야 합니다. 10분자리 영상 열 개를 올렸다면, 적어도 2천4백 명이 그 열 개의 영상 모두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야 합니다. 이 허들을 넘으면 유튜브에 수익 창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저로 인해 누군가는 책을 다시 읽고, 누군가는 유학을 떠나고, 누군가는 검정고시를 보고, 누군가는 전공을 결정하고, 누군가는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소식을 접하는 것은 경이로운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영향을 ..

한밤의 도서관 2019.09.19

그렇게 이 자리에 섰습니다

남녀에 상관없이 인간을 성인이나 학자를 만드는 것은 피부색이 아니라 그 영혼 속에 새겨진 신념입니다. 찬란한 지성은 빛나는 영혼에서 우러나옵니다. 때문에 천재성과 재능은 그 광채를 절대로 숨기지 못합니다. 여성이 나라에 봉사하는 길은 오로지 자기 가정을 잘 꾸리는 데에만 있다는 생각은 이미 한물갔습니다. 이제는 때가 되었습니다. 책임은 여러분들의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여러분을 도울 수 없습니다. 시민이기 전에 여성으로 먼저 보는 세상의 낡은 인식을 여러분 스스로 바꾸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각은 발굴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틈새이고, 이것이 이 나라에서 여러분의 위치입니다. 그러니 도전하십시오. 지도자가 될 수도 있고, 단순한 추종자가 될 수도 없고, 정당에 가입할 수 있고, 스스로 정당을..

한밤의 도서관 2019.09.18

책갈피의 기분

언어의 기본 역할은 뜻을 통하게 하는 것이 첫째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나도 일상에서는 어마어마하게 대충 말하고 쓴다. 편집자가 대순가, 바빠 죽겠는데. 실장님ㅁ~ 종이 들어갓나여? ㅃㅏ릴빠ㄹ리빨리빨리 대펴님 이거 빨리 확인해주샤야 마감햅니다 편집자가 되어서 저따위로 언어를 파괴한다고 비낸해도 진짜 어쩔 수 없다. 생존형 언어니까. 좋아하는 것을 업으로 삼으면 안 된다고들 하던데, 그 말에 정말 200퍼센트 공감한다. 책이 좋아서 책 사이에서 일을 하게 되었는데 결국 그 책 사이에 끼어 납작한 책갈피의 기분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날 힘들게 하는 것은 바로 ‘띄어쓰기’다. 미친 듯이 어려운 건 사실 아닌데 진짜 너무 헷갈리고 애매하다. 이미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시는 문제를 넘어서 ‘찾아보..

한밤의 도서관 2019.09.16

“세상에는 돌아오지 않는 것이 네 가지 있다. 입 밖에 낸 말, 공중에 쏜 화살, 지나간 인생, 그리고 놓쳐버린 기회.”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 中 공기는 만들어낼 수도, 파괴할 수도 없다. 우주에 존재하는 공기의 총량은 일정하다. 따라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공기뿐이라면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우주의 수명을 계산할 수 있다고 해서, 그 안에서 생성되는 생명의 다양한 양태까지 계산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운 건물, 우리가 일군 미술과 음악과 시, 우리가 살아온 삶들은 예측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 어느 것도 필연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숨 中 동물을 돌보는 일에 종사하는 여자들은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는 소리다. 동물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아이를 키우고..

한밤의 도서관 2019.09.15

달빛 노동 찾기

일의 강도는 최고 수준인데 대우는 최저 수준이었다. 시급은 정확히 최저임금을 따랐고 주휴, 야간 등 일한 만큼 받는 수당 외에 일체 받는 돈이 없었다. 근속수당도 없어서 1년을 일하나 10년을 일하나 월급은 같았다. 명절 상여금도 정규직들만 받았다. “예전에는 점심시간에 학교 사무실 직원들 밥 먹으러 가면 우리가 사무실을 지키고 그랬어요. 그 사람들 밥 먹고 올 동안. 왜 그래야 되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관행처럼 여겨진 거죠. 노동조합 만들면서 그런 것도 없애버리고, 누구 집 이삿짐 나르는 거, 교회 나오라 하는 거 이제 없어졌어요. 사무실 사람들이 우리를 대하는 게 달라진 게 큰 변화죠. 예전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부리면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거니까.” 야간에 ‘일’을 하다가 ‘일터’에서 사람이 죽었다...

한밤의 도서관 2019.09.12

나는 내 파이를 구할 뿐 인류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고

여자 인생 마흔부터잖아? 늦지 않았다고! “경력이 너무 많네요.” 그사이 내 나이 앞자리는 3에서 4로 바뀌어 있었다. 연차도 연봉도 부담스러운 위치가 돼버린 것이다. 아무리 일 잘하고 커리어가 좋아도 팀장 자리를 누구의 라인도 아닌 나 같은 여자에게 내어줄 곳은 없었다. 조직 내에서 열심히 일하던 여성도 40대가 되면 밀려나는 것이 남성중심적 기업구조다. 조직이라는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는 프리랜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일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맺고, 능력을 인정받고, 사회적 발언권을 얻었다. 일은 경제적 자립을 넘어 나를 나로 존재하게 해주었다. 그런 일이 사라진다는 건 내가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야망을 갖고 위로 올라가려는 것은 여성스럽지 않은 것. 그런 여자는 남자들이 좋아하지 않는 여자. ..

한밤의 도서관 2019.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