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라이프 오어 데스

uragawa 2020. 3. 12. 20:33

“자네 이름이 뭔가, 젊은이?”
“모스 제러마이어 웹스터인데요.”
“이름이 모스가 뭐야?”
“그게요, 소장님, 엄마가 제 출생증명서에 모세를 잘못 쓰셔 가지고요.”

 

 

 

자라다 만 나무들의 행렬 위로 붉게 빛나는 태양이 떠오른다. 네 시간 후, 물의 기억은 까마득하고 하늘에서는 불타는 원이 용접공의 불꽃처럼 뒷목을 달구고 있다. 길 위에는 피부의 모든 주름과 패인 곳에 먼지를 뒤집어쓴 오디 혼자뿐이다.

 

 

 

면회시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여자들이 몇 명 있다. 남자들을, 또는 범죄자들을 잘못 고른 여자들이다. 잡힌 자들. 패자들. 서툰 자들. 사기꾼들. 데지레는 회상에 잠긴다. 데지레는 이미 좋은 남자를 찾는 건 쉽지 않다고, 제일 좋은 남자는 보통 게이 아니면 유부남이거나 허구의 인물이라고 결론을 내려버렸다. 20분을 기다린 후에야 데지레는 교도소장 사무실로 안내된다. 데지레는 의자에 앉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는 하느님을 믿지 않았지만 여섯 명의 천사가 있다고 했어요. 고통, 체념, 실망, 절망, 잔인함, 그리고 죽음이요. ‘결국에 가서는 모두 만나게 될 게다.’ 아버지는 그러셨지요. ‘그렇지만 쌍으로 만나지는 않았으면 좋겠구나.’ 오디 파머는 천사들을 쌍으로 만났어요. 삼총사로 만났지요. 매일매일 만났어요.” “그 사람이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요?” “그 친구한테는 그냥 운이 나쁘지 않은 게 곧 운이 좋은 거였어요.”

 

 

 

문득 스스로가 많이 지쳤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보통은 이렇게 사람들을 보면서 최악을 떠올리지 않는데.

 

 

 

라이언 발데즈는 학교 정문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면서 라디오를 껐다. 라디오 토크쇼에 굳이 전화를 걸어 자신들의 편견을 쏟아내고 스스로 무지를 폭로하는 사람들에게 발데즈는 늘 놀라곤 한다. 이 사람들은 세상만사에 대해 지랄하는 것 말고 더 나은 할 일이 없나. 맨날 ‘좋았던 옛 시절’에는 모든 게 더 나았고 어쩌고. 시간이 지나면 와인은 시어져 식초가 되는데 왜 기억은 달콤해질까.

 

 

 

살다 보면 중요한 결정의 순간들이 있다. 운이 좋을 경우에는 내가 직접 그런 결정을 내릴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결정이 이미 다 내려져 있는 경우가 더 많다.

 

 

 

맥키니 스트리트에 있는 휴스턴 공립도서관은 시멘트 믹서와 큐비즘 화가의 금지된 사랑이 만들어낸 결실 같은 건물이다. 정면은 말끔히 닦여져 있고 트인 공간에는 나무들이 심어져 있지만, 그 건물에서는 아무런 온기나 매력도 찾을 수 없다.

 

 

 

사랑은 언젠가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사고였다는 게 오디가 내린 결론이었다. 마치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던져버리고, 공중에서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맨몸으로 뛰어내리는 격이었다. 추락하고 있었지만 왠지 죽지 않는다는 확신.



어반이 말했다.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은 선택하지 못해. 하지만 죽음의 시간은 총탄이나 다른 어떤 치명적인 수단으로 예정이 가능하지.”




“저 집에 못 가요.” 데지레가 말한다. 
“근무가 있어서요.” “아, 안타깝구나……. 데지레는 안 온대, 해럴드. 근무가 있대.” 
“햄을 먹으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뒤편에서 마치 자기가 아니라 남들이 귀가 먼 것처럼 큰 소리로 외친다. 
“얘도 알아, 해럴드, 방금 말했어.” “남자 친구라도 사귀었대?” 아버지가 묻는다. 
“네가 좋은 남자를 만났는지 알고 싶으시대.” 어머니가 말한다.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았다고 말씀드려주세요. 티몬하고 품바요. 품바는 방귀대장이긴 한데 아주 착해요.” “그렇게 농담으로 얼버무리지 좀 말고.” 어머니가 말한다. 
뒤편에서 아버지가 고함을 친다. “레즈비언이라도 괜찮다고 말해줘. 우리는 개의치 않는다고.” 
“얘는 레즈비언이 아니야.” 어머니가 나무란다.




밖에서 한 아이가 비명을 지르고 이어 한바탕 눈물바람이 휘몰아친다. 윌포드는 한숨을 쉰다. 
“사람들은 손자들이 축복이라고 하는데 내 손자들은 공포 그 자체예요. 난쟁이들로 가득한 정신병원에 갇힌 느낌이랄까.”




발데즈가 아내에게 한 팔을 두른다. “우리 잘못이 아니야. 우리는 맥스를 안전하게 되찾아올 거야.” 그리고 세노글레스를 응시한다. “당신이 직접 말해요, 프랭크.”



“그리고 나는 당신이 아무래도 오디 파머한테 너무 무르게 구는 것 같아. 내 생각이 맞나? 혹시 살인마 쓰레기들을 보면 꼴리고 그래, 특수요원님?” “당신이 뭔데 감히 나한테 그런 소리를 하죠?” 
“내가 뭐냐면 씨발, 당신 상관이야. 그리고 지금쯤이면 당신도 그 사실을 받아들일 때가 된 것 같은데.” 데지레는 빛을 비켜 서 있다. 뺨에는 머리카락이 늘어졌고 눈은 그림자 속에서 빛나고 있다.




홍수나 허리케인 같은 재난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기자들은 으레 어떻게 버텼느냐고 묻곤 한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들어주신 하느님께 은공을 돌리거나 “아직 갈 때가 안 되어서”라고 대답한다. 마치 우리 모두에게 보이지 않는 만료기한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보통은 뭐라고 대답하지 못한다. 비결 따위는 없기 때문이다. 특별한 기법은 없다. 바로 그래서 그토록 많은 생존자들이 죄의식을 느끼는 거다. 그 사람들은 더 용감하거나 더 영리하거나 더 강해서 그런 행운을 손에 넣은 게 아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다.



우리 삶에서 행복과 불행은 물려받는 거라고, 오디는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넉넉하게 받고 어떤 사람들은 모자라게 받는다. 어떤 사람들은 부스러기 하나까지 음미하고 마지막 골수까지 쪽쪽 빨아들인다. 우리는 빗소리, 새로 깎은 풀 냄새, 모르는 사람들의 웃음, 더운 날 새벽의 시원한 공기에서 기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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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오어 데스
Life or Death: A Novel(2014)



2016년부터 읽으려고 리스트에 있던 건데,
구매 우선 순위는 아니었고,  도서관은 가기 귀찮고 ㅋㅋ
시간이 흘러 흘러 2020년이 됨 ㅋㅋㅋㅋㅋㅋㅋㅋ



리디북스에서 1900원에 대여하는 기간에 빌렸다.
역시 사람이 마감날짜가 있어야 쫄리듯 읽는 것이지.

처음 접하는 작가님인데, 번역이 굉장히 매끄러워서 그런지
읽는 내내 속도감 쭉쭉-
 


+
읽다가 중간중간 대사가 터지는데
소네 케이스케 작가님 스타일이라 너무 마음에 들었닼ㅋㅋㅋㅋㅋ

맥키니 스트리트에 있는 휴스턴 공립도서관은
시멘트 믹서와 큐비즘 화가의 금지된 사랑이 만들어낸 결실 같은 건물이다.

시멘트 믹서와 큐비즘 화가의 조합 뭔데 ㅋㅋㅋ



“결혼해서 쌍둥이를 낳았다고 말씀드려주세요. 
티몬하고 품바요. 품바는 방귀대장이긴 한데 아주 착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이언킹 다시 보고싶어졌다구 ㅋㅋㅋ



“사람들은 손자들이 축복이라고 하는데 내 손자들은 공포 그 자체예요. 
난쟁이들로 가득한 정신병원에 갇힌 느낌이랄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웃겨 죽겠음.



++
예전 같으면 그냥 지나치면서 읽을 부분이었을 텐데,
그렇게 당해도 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그려져서 불쾌했음.

첫째, 오디가 도망치며 잠깐 신세 지는 20대 엄마랑 딸이 갑자기 죽는 부분.
둘째, 작은 키에 콤플렉스 있는 데지레 요원이 당하는 모든 일이 거슬렸다.
그리고 셋째, 벨리타 과거와 현재 이야기까지
(쓸데없이 너무 상세해서 오디가 10년 복역한 교도소 이야기보다 셈 ㅋㅋㅋㅋㅋ미치겠)

이야기는 재미있고 재미있어서, 반전이랄 게 없이 쭉 연결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고,
다른 책도 읽어봐야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