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전화번호가 어떻게 되지요?"
사이는 전화기로 손을 뻗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어제 일어난 큰 사건이 뭔지 얘기할 수 있나요? 3년 전에 사서 재미있게 읽은 책은 뭔가요? 마지막으로 헤어진 애인하고 사귀기 시작한 때는?"
사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봤지요? 틸리가 없으면 당신은 일을 할 수가 없어요. 자신의 삶조차 기억 못 하고, 어머니한테 전화 한 통 못 겁니다. 이제 인류는 사이보그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의식을 전자(電子)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자아를 두뇌 속으로 다시 욱여넣기가 불가능합니다."
-천생연분 中
내가 지금 느끼는 기분이 바로 그거야. 마음이 탁 트인 기분, 만사가 태평한 기분, 어디에든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말이야. 그래, 내 삶은 이제 비로소 진짜 실험이 됐어. 다음엔 뭘 할 수 있을까? 뭐든지 할 수 있을 거야.
-상태 변화 中
하지만 일본은 만주를 차지한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네. 몇 년 후에는 온 중국 땅을 침공했고,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내 고향 마을도 일본군에 점령당했더군. 집에서 오는 편지도 뚝 끊겼고, 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네. 식구들은 남쪽으로 피난을 갔을 거라고, 모두 무사할 거라고 혼자 되뇌면서. 하지만 결국에는 막내 여동생이 보낸 편지가 도착했네. 일본군이 마을을 점령하면서 우리 일족을 모조리 죽였다더군. 부모님까지 포함해서. 막내는 죽은 척해서 혼자 살았다고 했네. 부모님은 그렇게 내가 꾸물거린 탓에 돌아가시고 말았어.
나는 중국으로 귀국했네. 배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모병소를 찾아가 입대시켜 달라고 했지. 국민당군 장교는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는 내 얘기에 콧방귀도 뀌지 않더군. 그때 중국에 필요했던 건 총을 쏠 줄 아는 군인이었지. 읽고 쓰고 법전을 해석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었거든. 내가 받은 건 총 한 정과 총알 열 발이었네. 총알이 더 필요하면 아군의 시체 에서 챙기라고 하더군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어. '일본은 위대하고 중국은 약해 빠졌다, 일본은 동아시아 전체가 번영하기를 바라므로 중국은 일본의 뜻을 받아들여 항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말이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일본'이 무언가 원하는 게 가능할까? '일본'이나 '중국' 같은 것은 조재하지 않아. 그건 그저 낱말일 뿐, 지어낸 것일세. 일본 사람 한 개인이 위대할 수는 있겠지. 중국 사람 한 개인이 뭔가 바랄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이 무언가 바라고, 믿고, 받아들인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나? 나라 이름 같은 건 다 공허한 낱말일세.
-파자점술사 中
헤스페로인, 그들과 글쓰기의 관계는 늘 복잡했다. 위대한 헤스페로인 철학자들은 글쓰기를 신용하지 않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책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닌데도 살아 있는 척하는 정신이었다. 책은 설교하듯이 의견을 밝히고, 도덕에 입각하여 판단을 내리고, 역사적 사실로 알려진 것들을 서술하고,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지만...... 실제 인물처럼 심문할 수 있는 대상은 아니었고, 비판자에게 대답을 하거나 자신의 변명을 정당화하지도 못했다.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中
워처는 길 한쪽의 벤치에 앉아 노트북 컴퓨터를 꺼낸 다음, 정보는_자유를_원한다라는 이름의 네트워크에 접속한다. 워처는 네트워크 주인의 주장을 반박하는 것이 즐겁다. 정보는 자유를 원하지 않는다. 정보는 값진 것이고, 그래서 돈을 벌고 싶어 한다. 정보 자체는 누구도 자유롭게 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 그 정보를 소유한다며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레귤레이터는 사용자의 명령을 따른다.
이 장치를 몸에 심은 사람은 기본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공포, 경멸, 쾌락, 흥분, 애정 같은 감정을. 법 집행기관의 실무자는 반드시 심어야 한다. 이는 생사가 걸린 결정에서 감정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이자, 선입견과 불합리를 제거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자기가 알려 하지 않는 것을 알지 못하는 법이다.
-레귤러 中
우리가 누구인지 정의하는 것은 타인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그물 속에서 차지하는 자리이다.
나는 수많은 바둑알이 합쳐져 더 큰 패턴을 변할 때까지, 그래서 변화하는 생명과 일렁거리는 숨결로 바뀔 때까지 바둑판을 바라보다가, 눈을 돌린다.
-모노노아와레 中
하지만 나는 지상에서 보내는 삶은 이제 상상할 수가 없었다. 눈이 멀 것 같은 햇빛을 본 지가 너무 오랜만이라, 바깥에 나가면 꼭 갓난아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너무나 조용했다. 그동안 고함을 질러서 이야기하는 데에 익숙해진 탓에 내가 말을 하면 다들 흠칫 놀랐다. 그리고 하늘과 높은 건물을 올려다보면 어지러웠다. 나는 너무나 익숙해졌던 것이다. 지하의 삶에, 바다 밑바닥 아래에, 비좁고 밀폐된 공간에. 그래서 고개를 들고 위쪽을 보면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태평단 횡단 터널 약사(略史) 中
사람들은 언제나 '주권'이나 '사법권'같은 용어를 단지 책임 회피용으로, 또는 거치적거리는 굴레를 끊어 버릴 때 사용하는 편리한 도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독립'을 선포하면 과거는 순식간에 망각됩니다. '혁명'이 일어나면 기억과 피로 얼룩진 원한은 어느 날 갑자기 깨끗이 지워져 버립니다. '조약'에 서명하면 과거는 한순간에 땅속에 묻혀 사라져 버리지요. 현실의 삶은 그런 식으로 돌아기지 않는데 말입니다.
저는 1941년에 의무 지원대의 일원으로 731부대에 배속됐습니다. 외과 수술의 기술을 갈고닦이 위해 저희 지원대는 포로들을 대상으로 절단술을 비롯한 여러 수술을 집도했습니다. 건강한 포로와 동상 실험을 마친 포로 모두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팔다리를 다 절단하고도 살아남은 포로는 생물학 무기 실험에 이용했습니다.
한 번은 제 동료 둘이 어떤 남자 포로의 양팔을 절단해서 각각 반대쪽에 접합하는 수술을 했습니다. 저는 지켜보기만 하고 거들지는 않았습니다. 가치 있는 실험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불의에 관해 이야기할 때에는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사랑하는 생물이지만, 한편으로는 개개인의 이야기를 믿지 말라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떠한 국가도 어떠한 역사학자도, 진실의 모든 측면을 완전히 아우르는 이야기를 들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는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진실에서 동떨어졌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지구는 완전한 구체도 아니고 평평한 원반도 아니지만, 진실에 훨씬 더 가까운 것은 구체 모형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우며, 우리는 언제나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전하고 완벽한 지식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악을 심판하고 악에 맞서야 할 우리의 도덕적 의무를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中
종이 동물원
The Paper Menagerie and Other Stories (2016)
테드 창 책 보다 좋았다는 리뷰를 보고 바로 구매했는데,
책을 펼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두께도 두껍기도 했고...
[종이 동물원]
종이 동물은 작은 요소에 불과했음.
이렇게 이야기 재미있게 풀 수가 있나?
[천생연분]
틸리에 의존하여 사는 삶.
충분히 우리 미래에 있을 것이다 예상되는 삶이다.
틸리의 의견을 듣고 틸리가 하라는대로
실패없이 살아가고 틸리가 없으면 불안한
[즐거운 사냥을 하길]
초반부는 요술에 대한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는데,
염의 다리를 크롬으로 바꾼 xx...
가만두지 않겠어.
[상태 변화]
각얼음이 영혼이라니,
육체와 떨어진 영혼에 대한 이야기라 흥미롭게 읽었다.
[파자점술사]
다 읽고 난 후에
누가 머리를 돌로 때린 것 같이 띵-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이건 좀 어려웠다 ㅋㅋ
[시뮬라크럼]
시뮬라크럼을 발명한 아빠와
시뮬라크럼이 없는 더 좋은 세상에 대해 책을 쓰는 딸의 이야기
[레귤러]
두 번째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신종 망막 임플랜트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 범인이 꼭 남자여야만,
피해자가 여자여야만 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저는 상급 독자 아니라서 어려웠고요.
[파(波)]
[모노노아와레]
두 에피소드는 연결되는 이야기었다.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略史)]
세상에
읽다가 너무나 깜짝 놀랐음.
여기서 약간 멘탈이 나갔는데,
[송사와 원숭이 왕]
이거 읽고 더 멘탈이 나감.
와- 어떻게 이렇게 이야기를 연결할 수가 있는거지???
2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만주족 황제들은 『양주십일기』를 금서로 지정해 탄압했고, 양주대학살은 만주족이 중국 정벌 과정에서 벌인 여러 참극과 함께 망각되었다.
...
역사적 사실 자체가 오랜 세월 동안 은폐되었기 때문에, 또한 어쩌면 지금도 어느 정도는 은폐된고 있기 때문에, 양주 대학살의 희생자가 정확히 몇 명이었는지는 영영 밝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를 그들의 기억에 바친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 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초반부는 사실 집중을 잘 못했는데,
뵘기리노 입자와 731부대로 연결하는 거 보고
멘탈이 여기서 와장창 부서짐.
와, 진짜 너무 땀이나서 종이책이 다 우글우글해졌네.
올해 마무리 하면서 좋은 책 잘 읽었다.
작가님의 다른 책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