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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뜨거운 거짓말

3 그냥, 벚꽃, 포기 포기라는 것이 늘 한 순간의 결정 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정이 있기 전까지 숱한 고민의 밤과 흔들리는마음을 고스란히 버텨준 시간이 있다. 대부분의 포기는 계절처럼 서서히 이루어지고, 그 결과의 양상 또한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알게 된다. 많은 것을 쉽게 포기해버리는 사람은 타인의 생각처럼 슬프고 암담하지 않다. 그의 인생에 더 많은 계절이 있을 뿐이다. -봄의 시작 中 4 태양, 경찰차, 빙하 쓸모가 없는 삶이 어디 있겠어. 어디다 쓸 줄 몰라서 이렇게 사는거겠지. 삶의 쓸모라는 것. 나의 삶도 분명 어딘가 존재하는 거겠지? -한 여름의 알래스카 中 12 신문, 밀크초콜릿, 4시 그녀는 말했다. 기억이란 단단하지가 않아서, 시간이 지나면 금세 눅눅해지고 물에 풀..

한밤의 도서관 2017.04.02

서점을 둘러싼 희망

서점을 유지하게 위해 한 달에 몇 권의 책을 팔아야 하는지, 그리고 그것을 영업일로 다시 나눠서 하루에 몇 권의 책을 팔아야 하는지 계산하면 구체적인 그림이 그려집니다. 그만큼의 책을 팔 자신이 없다면 음료든, 이벤트 참가비든, 잡화든 매출을 메워줄 다른 수익 구조가 있어야 합니다. -사적인 서점 그런데 한국에서는 친구가 만든 물건을 비싼 가격에 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말로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힙스터는 중산층 이상의 부자들이기 때문에 본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돈을 씁니다. 하지만 한국 젊은이들은 돈이 없으므로 사진을 찍으면 잘나오는 인테리어는 좋으나 음식 가격이 저렴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가 그 공간의 사진을 찍고 그걸로 자신을 위로합니다. -탐구생활 동네서점이 사라지면 그 손님이..

한밤의 도서관 2017.03.30

침묵의 세일즈맨

전 그냥 남아도는 잉여 무리들 중 하나죠. 빈민가에서 태어나서, 졸업했더니 잉여 인간이네요. “느낌이 있어, 샘. 일에는 타이밍이 있고 탄력받았을 때, 내친김에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 그걸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 “느낌이요?” “또 사람의 집중력이란 것도 있고, 나는 하던 일이 손아귀에서 빠져 나가는 게 싫어. 이제는 이해가 안 가는 점들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나 스스로 헛갈릴 거야. 지금까지 모은 조각들을 그렇게 버리고 싶지 않아.” “난 실패자가 아니야.” 나는 힘주어 이야기했다. “다만 돈이 없고, 멍청하고, 운이 지지리도 없을 뿐.”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존 피기와 관련된 이상한 사실들을 꿰어 맞추는 것이 내게 중요하고, 그걸 마음에서 덜어..

한밤의 도서관 2017.03.29

저 결혼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私 結婚できないんじゃなくて、しないんです (저 결혼 못 하는게 아니라, 안 하는 겁니다, 2016)편성정보 TBS 金 22:00 | 10부작, 2016.04.15 ~ 06.17 |출연 나카타니 미키, 후지키 나오히토, 세토 코지, 오오마사 아야, 나츠키 마리, 토쿠이 요시미, 티순, 히라타 카오루홈페이지 http://www.tbs.co.jp/watashi_kekkon/ 와 오랜만에 일드 집중함. 나카타니 미키 언니랑 같이 연애를 공부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함 (아오 짠내) ㅋㅋㅋㅋ 나도 나이를 먹은건가, 후지키 나오히토, 예전에는 잘 생겨서 ㅋㅋ 좋아했던 것 같은데 별로 감흥이 없더라 자립도 했고 급하진 않지만 느낌이 통하면 결혼하고 싶다는 39살 미용 피부과 클리닉을 운영하는 선생님 결혼 상담소......

먼지쌓인 필름 2017.03.26

디자이너 고객에게 말하다

디자인은 예술도 아니고, 멋진 영감으로 번개처럼 나타나는 결과물도 아니다. 고객이나 자기 회사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과학이다. 또 누구나 한마디씩 “여기 색깔이 어떻고, 저기 모양이 어떻고”라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수년간 전문성을 쌓아온 사람들이 행하는 전문적인 서비스다. 좋은 디자인이란 마술 모자에서 토끼를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창의성’의 산물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수해하는 엄격한 문제 해결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보다 더 나쁜 경우는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두 가지 안을 모두 보여주시겠습니까?” 대답은 ‘안 됩니다’이다. 숨어있는 관계자 “당신이 작업만 훌륭히 해낸다면 모두 알아줄 것이다.” 웃기는 소리다.그들은 자신이 배제된 상태에서 작업이 진행된 걸 ..

한밤의 도서관 2017.03.16

죽기위해 산다

그는 여기서 알게 된 사실들을 곱씹으며 돌아섰다. 사실 사람들이 경보 시스템이라 부르는 것들은 대부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유기적으로 연결된 촘촘한 네트워크 구축에 대한 개념도 없이 그저 닥치는 대로 덕지덕지 붙인 값비싼 전자기기들에 지나지 않았다. 차라리 몰랐다면 더 행복할까? 인생의 남은 1년 동안 ‘무지의 은혜’를 누리면서? 답은 ‘아니오’였다. 시한부 판결은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기드온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이미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이승과 멀어진 것같은 기분이었다. 그의 우선순위가 갑작스럽게, 너무나 순식간에 바뀌어 버렸다. 사랑하는 이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일에 시들해졌고, 직업적인 성공을 거두는 일도 무의미해졌다. 콜레스테롤 수치를 신경 쓰거나 금연해야겠다는 생각도 사라졌다. 다 부질..

한밤의 도서관 2017.03.10

달의 조각

버려진 밤 가끔 나도 나를 감당하기 힘든 밤이 있다. 지금 내가 왜 슬프지, 왜 이런 거지 같은 기분이 드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런 밤이면 저 끝까지 땅을 파고 들어가 빛 한 줌 들지 않는 깊숙한 곳에 천막 하나를 치고, 그 안에서 누군지도 모를 얼굴을 하염없이 원망한다.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냐고, 왜 나조차 나를 보듬을 수 없냐고. 초 너의 생일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나는 그런 생각을 했어. 지금 이 시간을 공유하며 슬픔을 느끼는 건 저기 달콤한 케이크 위의 가느다란 초 하나겠구나. 뜨거운 눈물을 뚝뚝 흘려도, 데인 마음이 뭉텅이로 떨어져 내려도 알아주는 이 하나 없겠지. 작은 연기는 너무 쉽게 사라지고, 매캐한 냄새조차 공중으로 흩어지겠지.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차..

한밤의 도서관 2017.03.03

아무래도 아이는 괜찮습니다

페이스북은 100퍼센트 자기 자랑입니다. 자신이 만든 요리, 놀러 갔던 곳, 화목한 가족 모습 등을 올리면서 기대하는 것은 “와아, 멋지네요.” “수고했어요” 같은 칭찬입니다. 가끔은 자학적인 에피소드도 올리지만 그것도 ‘이런 것까지 올릴 수 있는 여유있는 나’에 대한 자랑입니다. 아이에 대한 얘기는 뭐를 올려도 성공합니다. “귀여워!” “많이 컸네.” “정말 고생 많았어.” 같은 칭찬은 따놓은 당상입니다. 이래서 아이 애기는 빼놓기 어렵죠. 그런데 항상 SNS를 접해야하는 요즘 젊은이들은 큰일이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잘 아는 후배가 갓난아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미혼인 후배 친구 A씨가 “축하해”라는 댓글을 다니까 이 후배가 “너도 다른사람만 축하하지 말고 어서 네 아이 낳아야지. 정말 귀여..

한밤의 도서관 2017.03.01

퇴사학교

갈수록 일자리의 정원은 줄어들고 정년은 짧아지며 미래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사라지는데도, 우리는 마치 평생직장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퇴사’라는 단어가 영원히 나와는 상관없을 것처럼 쉬쉬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 ‘조직’마저도 이제는 스스로의 앞날을 책임질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프롤로그 퇴사학교 입학 테스트 1. 매일 아침 출근길이 무겁다 2. 이 일을 계속 해야할지 고민이다 3.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잘 모르겠다 4. 나중에 회사 없이 뭘로 먹고 살지 걱정이다 5. 회사 밖의 다양한 만남과 자극이 필요하다 6. 회사를 벗어나는 도전은 내게 너무 큰 두려움이다 7. 무작정 퇴사를 할 수도 이대로 회사를 다닐 수도 없어 답답하다 8. 언젠가는 ..

한밤의 도서관 2017.02.22

리츠 호텔만 한 다이아몬드

그는 자신의 젊음을 능력과 바꾸었고, 절망으로 성공을 빚어냈다. 그러나 삶은 젊음과 함께 그의 사랑이 지녔던 신선함까지 앗아가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분별 있는 일’ 中 그들은 호텔 베란다에서 저녁을 먹었다. 하늘은 어두웠고, 그들을 감시하는 낯선 신의 존재가 가득 느껴졌다. 호텔 모퉁이에서 밤은 지나치게 낯선 소리들로 이미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네갈의 북소리, 원주민의 피리 소리, 이기적이고 여성스러운 낙타 울음소리, 낡은 타이어 신발을 신고 달려가는 아랍인들의 발소리 그리고 배화교도의 울부짖는 기도 소리까지. 중독성은 언제나 어두운 곳보다 밝은 곳에서 드러나지. -해외여행 中 악을 부추기고 낭비를 조장하는 취향이 꼭 어린애들 장난 같았다. 갑자기 그는 ‘방탕’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기분이..

한밤의 도서관 2017.02.20

양과 강철의 숲

피아노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물어보면 안 된다. 물어보는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면 다시 한 번 이쪽에서 무언가를 되돌려줘야만 할 것 같았다. 질문은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으나 형태를 이루지 못했다. 아마 되돌려줄 무언가가 내게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아름다움’도 ‘올바름’과 마찬가지로 내게는 새로운 단어였다. 피아노와 만나기 전까지는 아름다움을 깨닫지 못했다. 몰랐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많이 알고 있었다. 그저 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뿐이었다. 희미하게 밝아지는 나뭇가지나 그 후에 일제히 움트는 어린잎이 아름답다는 사실, 동시에 그것들이 당연히 거기 있다는 사실에 새삼스럽게 놀랐다. 당연하면서도 기적 같았다. 분명 내가 깨닫지 못했을 뿐이지 세상 모든 곳에 ..

한밤의 도서관 2017.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