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그 집에 사는 네 여자

uragawa 2020. 12. 18. 22:30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유키노는 뭐든지 다 혼자 해왔다. 어른이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자립해 혼자 사는 것은 어른이 됐다는 증거가 아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혼자 살 수 있는 인간은 없고, 돈도 어차피 천하를 돌고 돈다. 어디까지나 노동한 대가로 남에게 받는 것이지 유키노 본인의 가치를 나타내진 않는다.
양보하기도 하고 부대끼기도 하면서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야말로 어른일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뀌었다.



“너는 회사에 다니니까 누군가와 만날 수 있을 거 아냐. 그러면 혼자 사는 편이 아무래도 편리하지 않을까 해서.”
“이보세요.”
유키노가 한숨을 쉬었다.
“밖에 나가면 호감을 주고받을 사람을 만날 거라는 거, 네 환상이야.”
“그래?”
“그렇게 생각하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만, 사귀는 상대가 없는 사람은 방에 있든 사람들 틈에 있든 어차피 외톨이야.”
“잔혹한 진실이다.”
“세상사가 원래 그렇답니다. 애당초 우리가 몇 살인 줄은 아니? 괜찮은 사람이 있더라도 대부분 결혼했어. 아니면 열 살쯤 어리지. 불륜에 빠지거나 한참 어린 남자에게 말을 걸 기력이 너한테 있어?”
“없어.”
“나도. 그러니까 혼자 살지 않아도 연애에는 아무 상관없어.”



노후를 생각하면 아득해진다. 그렇지만 노후를 맞이하기 전에 죽을지도 모르는데 정처 없이 우울해하는 것도 바보 같다. 분쟁 지역에서 매일 생명에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노후는 생각도 못 할 테니까.
지금 당장 미끄러져서 머리를 박아 죽을 가능성도 엄연히 있는데, 거기에서 눈을 피한다. 이는 죽음에 대한 불안이나 공포에서 온다기보다 노후가 반드시 찾아오리라 믿는 안온한 자신의 정신상태를 수치스러워 하는 데서 오는 것 같다.



“그러면 여자도 남자도 어떤 관계를 추구해야 베스트일까?”
“그야 서로‘이래야지’나 ‘이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과 상대에게 포용력 있는 마음을 지녀야 베스트겠지.”
“엄청 어렵겠는데?”



경험을 쌓는 것과 무지한 것은 얼핏 상반돼 보이지만, 둔감해진다는 점에서는 아주 비슷하다.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이제 곧 장마철이 끝나니까요.”
다에미가 열변을 토했다.
“여름이 온다고요!”
“빙수 먹고 싶구나.”
쓰루요의 시선이 허공을 황홀하게 헤맸다.
“녹차에 팥을 잔뜩 얹어서, 거기에 살구까지 얹고…….”
“그건 됐고, 역시 바다죠!”
“피부를 태우느니 나는 죽음을 선택하겠어.”
유키노가 근단적인 비유를 들자, 다에미는 독재자처럼 팔을 들어 올리고 바다의 매력을 누누이 설파했다.
“사람이 많아서 어차피 물가에서 참방거릴 공간밖에 없을 테니까 파라솔 아래에 있으면 돼요. 요즘 해수욕장 시설은 대단해요. 야키소바나 라면만 파는 게 아니라 터키 요리랑 베트남 요리랑 프랑스 요리까지 먹을 수 있다니까요! 게다가 인테리어도 세련됐고, 다 같이 바다에 가요, 네
?”



“참, 다음에 에 가방에 수놓아줄 수 있어? 돈 낼 테니까 귀여운 무늬로.”
“그냥 해줄게. 작은 새는 어때? 빨간 열매가 달린 잔가지를 문 모습.”
“꼭 부탁합니다. 그래도 공짜로는 안 돼지. 너는 프로 자수 작가잖아.”
“응, 알았어. 그럼 친구 가격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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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사는 네 여자
あの家に暮らす四人の女(2015)



작가님 신작!
(아니네, 2015년 작인데 이제 번역된 것이구나?)



한 집에 사는 4명의 여자 이야기.
쓰루요와 사치는 모녀지간이지만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서로 배려하며 이해하고 사는 것은 여자만 가능한 것일 거야? ㅋㅋㅋ

식사 당번은 돌아가면서,
욕실 사용을 마지막으로 한 사람이 청소를 담당한다던가
(매일 해야 하지만 하기 싫은 것이 욕실 청소)



+
지루해지는 부분은
화자(까마귀, 돌아가신 아버지)가 바뀌어서 그럭저럭 읽었고,
사치와 가지의 열린 결말 마음에 들었다구 ㅋㅋ



++
2019년에 드라마로 만들어졌다는데,

세상에 캐스팅이 찰떡이잖아??????




+++
아, 우리나라 표지 무슨 일이야.
솔직히 펼쳐보고 싶은 호기심 안 생기지 않음?
4명의 여자랑 갓파는 무슨 상관인데......

아 근데 이것도 내 취향은 아니넼ㅋㅋㅋㅋ



이거 보고 탄력 받아서
[배를 엮다] 만화책 다시 읽고 옴.
선생님 다작하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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