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검은 빛

uragawa 2012. 10. 5. 00:31

절망한 인간의 얼굴은 참으로 한심스러웠다.



고토미와 먹은 마지막 저녁 반찬이 왜 떠오르지 않을까. 부모님의 시체를 따라 학교까지 걸어가면서 노부유키는 생각에 잠겼다. 미카를 만나러 가는 일로 머릿속이 가득 찼기 때문인다. 밥은 언제든 먹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미카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평상시와 다름 없는 아침을 맞을 거라 생각했다.

 

 


나미코는 전에 회사에서 일할 때도 신입사원을 대하는 게 힘들었다. 업무 흐름을 전혀 모르는데다 몇 번을 가르쳐줘도 한동안은 똑같은 실수를 저질렀다. 나도 그랬다, 신입사원이 업무에 백지 상태인 건 당연하다. 스스로를 그렇게 설득하면서도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상대의 속을 떠보고, 경쟁상대에게 약점을 보이지 않기 위해 원만한 가정생활을 넌지시 암시하는 여자들.

 

 


생각만 할 뿐이다.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다.

 

 


나미코는 아무도 사랑한 적 없는 인간들을 알고 있었다.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끝내 배우지 못하는 인간들을 알고 있었다.

 

 


왜 이런 곳에 있을까. 태어난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 정신을 차려보니 홀로 밤의 한가운데 내팽개쳐져 있었다. 그사람도, 나도, 어린 쓰바키도.

 

 


거대한 파도가 밀어닥쳐 모든 것을 바다로 휩쓸어간다.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한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복수를 당한다.
보고도 못 본 체한 사람도, 폭력의 비호 아래서 태평스럽게 평안을 탐하는 인간도 모두 예외 없이 응보를 받는다.

 

 


“전 요즘 아버지를 죽이는 꿈만 꿉니다. 어떻게 하죠?”
이소자키는 입을 다물없다.
어중간한 걱정도 조언도 다 필요 없다. 빌어먹을, 뒈져버려. 매일매일 몇십 년이나 똑같은 반찬이 든 도시락이나 처먹고, 한심하고 처량한 공장과 가족이 있는 집이나 끊임없이 오가다가 거지같이 죽어버리라고.

 

 


이 여자가 말하는 착하다는 기준은 뭘까, 어이가 없는 정도를 넘어 무서웠다. 자신이 아무 생각도 품고 있지 않은 인간이 자신을 착하다고 느끼고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아 다스쿠는 신기했다.

 

 


“여행은 어디로 갈 예정이야?”
“아직 정하진 않았지만, 될 수 있으면 아름다운 곳으로 가고 싶다. 바다와 산이 있고, 느긋하게 쉴 수 있는 곳.”

 

 


노부유키에게 있어 대부분의 사건은 그저 단순한 점에 불과했다. 작은 점들이 한 줄로 늘어서서 언뜻 보면 선 형태를 띠는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하나하나는 어디까지나 독립적인 점이고, 더듬어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나는 그릇되지 않았다. 그릇됨 없이 자기 자신과 소중한 사람을 살아남게 했다.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폭력을 휘두른 일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은 표정으로. 처자식을 사랑하고, 성실하게 일하고, 언젠가 호흡이 멈추는 그날까지 모든 비밀을 가슴에 담고.

 

 

 

동정이나 애정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상처가 있는 한, 형벌은 사람을 구원할 수 없다. 자기에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준자가 설령 교도소에 3년 동안 갇혀 있다고 한들 아무런 기쁨도 감정도 느낄 수 없다. 형벌은 기껏해야 ‘이 정도로 참아줘’라며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덮고 얼버무리는, 반창고 정도의 힘밖에 갖지 못한다. 배가 고파 죽어가는 생물에게 먹을 것과 비슷하게 생긴 발포 스티로폼 모형을 주고 배를 채우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먹은 고기를 다 합하면 생명이 몇이나 될까.

 

 


내가 원하는 상대는 나를 원하지 않고, 원하지도 않는 자는 나를 원한다. 흔히 있는, 그러나 때로는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불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