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3월, 잘 맞지도 않는 구두를 질질 끌면서 역으로 향했다. 스타킹에 물이 튀겨서 기분이 나빴다. 나는 이 스타킹이라는 물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렇잖아도 무르기 쉬운 피부를 이런 정체 모를 것으로 감싸다니! 도대체 이해가 안 간다.
면접관은 하기와라 쇼켄을 닮았다. 나는 그의 긴 손눈썹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기에 어떤 질문을 받고 어떤 대답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그저 그랬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때는 얼마든지 ‘무난한’ 인간이 될 수 있다.
“뚱뚱한 사람이 와구와구 먹고 있는 걸 보면, ‘아유, 그렇게 먹으면 안 되지’ 하고 걱정이 돼서 가슴이 아파. 영양사가 되어 식이요법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야. 나 정말 뚱보를 좋아하는 성향일까?”
-지망 中
4월이 끝날 때까지 2주 동안 출판사 입사 지원서를 쓰면서 보냈다. ‘좋아하는 책과 잡지’, ‘감동한 일’, ‘기뻤던 일’, ‘출판계의 전망은’, ‘어떤 출판물을 만들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등등……. 이런 걸 물어서 뭣하려는 거야.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의 관계는 뚜렷하게 균열이 생겼다. 이제는 견딜 수 없을 정도의 무게가 우리를 내리 누르고 있다. 어떻게든 뭔가 하지 않으면 망가져버린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극적으로 망가진 것은 극적으로 재생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극적’인 사건도 없이, 감정의 고조도 없이 스르르 무너져가는 것에 대해서는 손쓸 도리가 없다.
니키는 놀리는 투가 아니라 진지하게 말했다.
“응. 난 말이야, 텔레비전이나 담배는 없어도 전혀 상관없어. 하지만 책이나 만화가 없는 생활이란 상상할 수가 없어.”
나는 말을 끊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에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현실적인 문제로 매일 돈을 벌면서 살아야 한다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 행복할 거 같아.”
만원 전철에 꼭 낀 채 실려 가면서, 나는 사람들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과연 나는 정말로 일을 할 수 있을까? 매일 전철을 타고 정해진 시간에 회사에 간다. 대다수 대학생이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을 느끼면서 회사에 들어가려고 애를 쓴다.
-응모 中
“큰 기성복 업체에 가면, ‘어, 지금까지 엘리트 코스 였군요’ 하고 눈썹을 반듯하게 정리한 남자가 한 소리하고, 작은 회사에 가면 ‘우리처럼 작은 회사 말고 좀 더 큰 회사에 가는 게 어때요?’ 하고. 결국 아무 데서도 받아주질 않아. ”
“대체로 회사, 나아가서는 ‘사회’가 말이야, 그들이 원하는 능력이란 게 애초부터 우리에게는 없는 거라고.”
스나코의 말에 공감하며 생각나는 대로 면접에 필요한 능력을 들어보았다.
“패기가 있고, 기개가 있고, 처음 보는 사람과도 밝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해. 그런 걸 면접이라는 한정된 시간 내에 어필해야하고.”
“맞아 맞아, 그런게 가능한 인간을 사회인이라고 하는 거야.”“최근 본 영화 중에 재미있었던 것은?” 하고 물어서, “<요시나리 구미 외전·미아견의 계보>입니다.”라고 대답하고 내용을 설명했다. 그러나 면접관은 냉소적이었다.
“흐흠, 사는 게 즐거운가 보군요. 취직하면 영화 볼 시간도 없어요. 바빠서요. 그게 회사 생활이란 거죠.”
묻는 대로 대답했을 뿐인데, 왜 내가 핀잔을 들어야 하는가. 뭔가 이야기가 이상하다. 회사에 들어가면 학생 시절보다 자신의 시간이 적어진다는 것쯤 누구나 알고 있다. 알면서도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진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