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미소짓는 사람

uragawa 2013. 9. 17. 14:04

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어요. 겉으로는 싱글벙글하면서 속으로 칼을 갈고 있던 게 아니냐는 거죠?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짜증 나는 녀석을 싫어하는 거랑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건 상당히 다르다고 봐요.



꾹꾹 눌러 참지 않으면 한마디가 아니라 온갖 욕이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직장에서 서로 욕을 하며 싸울 수는 없기에 가능한 한 이치를 내세워 상대의 잘못을 따질 작정이었다.



역시 씨알도 안 먹히나. 이렇게 될 줄 예상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자 헛고생했다는 생각에 힘이 쭉 빠졌다. 가지와라에게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것이다. 인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팀워크 같은 건 염두에 없을 뿐 아니라 염치도 없이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가지와라는 외계인이나 다름없다. 똑같이 일본어로 말했지만 상대에게 말이 통했다는 느낌은 눈곱만큼도 들지 않았다. 인두겁을 쓴, 완전히 별종의 생물이라는 것이 가지와라에 대한 지점 내의 평가였다.



A “경찰 조사에서도 니토시가 가지와라 씨를 죽일 동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잖아요. 아지카와 강 사건도 그래요. 책을 둘 곳이 없어서 아내와 딸을 죽였다는 자백을 진심으로 믿는 거예요?”


D “니토 씨는 책을 좋아했으니까. 그저 그런 독서가가 아니라 책이라는 물체를 편애하는 구석이 있었지. 그 사람은 여름철에 책을 읽을 때 페이지 아래쪽 가장자리만 붙잡고 읽었어. 왜 인줄 알아? 땀이 종이에 스미는 걸 최대한 막으려고 그런거라고. 손톱으로 페이지를 넘기는 모습을 본 적도 있지.”



니토에 대한 취재를 진행하다 보니 이해가 갔는데, 세상에는 살인이라는 금기에 대한 관념이 완전히 결여된 인간도 있다. 그러한 인간에게 살인은 사태를 해결하는 한가지 수단에 불과하다. 죄악감이라는 억제 장치가 없으면 인간은 얼마든지 쉽게 결단을 내리는 법이다.

-제2장 의혹 中




― 책을 둘 곳이 없어서 그랬다는 이유도 진짜입니까?

“진짜입니다. 책은 한없이 계속 늘어나니까요. 아아, 소설가니까 아시겠군요. 처분하면 된다고 간단히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그건 절대 안 되죠. 책을 팔다니 상상도 못 할 일입니다. 물리적으로 책을 보관할 곳은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책장에 더는 꽂을 곳이 없어서 일시적으로 바닥에 쌓아 올렸습니다만, 그런 건 제 미의식에 반하는 짓입니다. 책장에 저자와 출판사별로 책을 깔끔하게 꽂아야 비로소 완벽하게 만족할 수 있는 법이죠. 어때요? 아닙니까?”



속단에 빠진 사람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한다. 인간은 자신의 기억조차 상황에 유리하도록 바꾸는 법이다.



이건 제 직업병인지 아니면 심술보를 타고난 탓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붙임성이 좋은 상대를 보면 경계 벨이 울립니다. 한눈에 수상하다 싶더군요.



니토는 터무니없는 동기로 살인을 저질렀으면서 그 터무니 없는 동기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거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동기로 저지른 범죄라면 체포할 수 있는데 동기가 별나면 체포도 못 하다니 커다란 모순입니다.



무서운 일이죠. 장황하게 말씀드린대로 니토는 좋은 사람이라는 가면을 쓴 극악한 놈입니다. 사소한 이유로 친구를 죽여 놓고, 죄의식을 느끼기는커녕 주도면밀하게 함정을 파서 범행을 눈치챈 형사를 사직시킨다. 일찍이 이렇게 무시무시한 범죄자가 있었을까요?



니토는 책을 둘 곳을 마련하기 위해 아내와 딸을 죽였다고 했다면서요. 저는 그 자백이 전혀 기묘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니토라면 그런 얼토당토 않은 동기로 사람을 죽여도 이상할 것 없어요. 세상에는 살인에 전혀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는 법입니다. 만 수천 엔을 내고 게임을 사기보다 친구를 죽이는 편이 손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말이죠. 지금이라면 제 주장도 분명 받아들여질 테죠.

-제3장 함정 中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왜냐하면 니토는 쉽게 살인이라는 수단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세상에서 사는 사람이 살인이라는 금기를 어기기는 쉽지 않다. 무엇보다 심리적 저항이 크고, 심리적 저항을 제외하고 따져 보아도 살인은 눈앞에 직면한 곤란한 사태를 해결하기 위한 최적의 수단이라고는 할 수 없다. 예사 감각을 지닌 사람이라면 살인을 최악의 수단으로 간주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니토가 너무나 간단히 살인으로 사태를 해결한 것은 사람을 죽이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 아닐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의붓아버지는 마음에 담아 두는 타입이었어요. 바로 화내지 않고 꾹 눌러 참으며 담아 두는 거죠. 하지만 아무리 조금씩 담아 둬도 언젠가는 반드시 폭발해요.


니토는 분명 쇼코의 의붓아버지를 죽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살인으로 역경을 해결하는 방법을 그때 알았다. 그것이 훗날 그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는 짐작도 가지 않는다.사람을 죽이고도 잡히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살인도 선택지에 포함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해하기 쉬운 스토리를 원하죠. 이해하지 못하면 찜찜하거든요.



“최종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이 나는 건 픽션뿐이에요.” 가스미는 다시 입을 열었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모르잖아요. 살인귀는 물론 가까운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실은 모른다고요.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남편이 세상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부모는요? 자식은요? 연인이나 친구의 생각을 백 퍼센트 이해할 수 있다면 그건 초능력자죠. 누군가의 마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왜 살인범의 심리만은 이해하지 못하면 불안해 하는걸까요?”



상대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은 자신이 보고 싶은 대로 남을 본다.

-제5장 진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