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아서는 무기질한 단어의 나열이지만, 이 막대한 수의 표제어와 뜻풀이와 예문은 모두 누군가가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쓴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끈기인가. 얼마나 대단한 말에 대한 집념인가.
마지메는 1층 전체를 책으로 가득 메우고, 다케 할머니는 2층 전부를 사용하며 유유히 소운장에서 살고 있다. 만약 방이 조금이라도 거기에 살고 있는 이의 내면을 나타내는 것이라 한다면, 나는 말을 잔뜩 모으기만 하고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무미건조한 인간이겠지.
아무리 말을 못해도 상대가 책이라면 침착하게 깊고 조용히 대화할 수 있다. 또 하나. 학교 쉬는 시간에 책을 펴 놓고 있으면 친구들이 괜히 말을 걸지 않는다는 이점도 있었다.
이불에 누워서 형광등 줄을 당겼다. 도라가 오지 않을까 싶어서 마지메는 잠들지 못하고 천장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창문을 살짝 열어 두었다.
어둠 속에 가만히 있으니 용수로의 물소리도 맑고 깨끗한 시냇물 소리처럼 들린다. 바람이 구름을 걷어 내 달이 나뭇잎사귀 그림자를 창에 비추었다.
세련된 슈트에 풍채도 좋고 화려한 분위기에 니시오카를 보니, ‘확실히 여자들은 니시오카 같은 남자를 좋아할지도 모르겠는걸’ 하는 생각도 들어서 동요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어도 촌스러운 슈트를 입고 항상 소극적이고 존재감 없는 나하고 사귀느니, 귀여운 도라나 쓰다듬으며 있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마지메는 멋대로 가구야의 마음을 추측하며 멋대로 슬픈 생각에 젖었다. 연애에 익숙하지 않은 마지메는 자신의 매력에 근거없는 공포를 느끼는 니시오카의 경지에는 절대로 이르지 못할 것 같았다.
“관람차를 발명한 건 누굴까.”
가구야는 창 밖으로 시선을 보낸 채 말했다.
“즐겁지만 좀 쓸쓸한 놀이기구라고 생각해.”
마지메도 마침 그렇게 느끼고 있던 참이었다. 이렇게 좁은 공간에 함께 있는데, 아니, 좁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더욱 서로 닿지 못하고 바라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음을 절감했다. 두 사람을 태운 관람차 상자가 지상에서 떨어져 하늘 위에 둘만 되었을 때도 따로따로였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공기를 나누면서도 접촉하는 일은 없었다.
불안한 일뿐이다. 사전 편찬의 진전도, 사랑의 행방도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 방은 많은 서적과 말로 넘치고 있지만, 그 중 어느 것을 골라야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 도통 모르겠다.
모른다고 해서 우두커니 서 있어 봐야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머리 위를 덮칠 듯한 서가의 압력을 등으로 느끼면서 펜을 들었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하얀 종이를 메워 나갔다. 마음을 형태로 만들기 위해.
니시오카는 다음 날 아침 화장을 지운 레미의 얼굴을 보고 속으로 경악했다. 눈이 쌍겹에서 외겹이 되어 있었고, 속눈썹 양이 7할 정도 줄었고, 눈썹은 안개처럼 희미하게 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못 생겼다.
스탠드 불을 껐다. 잠시 후 어둠에 익숙해지자, 커튼 틈으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만으로 천장 구석구석까지 볼 수 있게 되었다. 농담濃淡이 생긴 파란 밤의 그림자.
대체 어떻게 하면 무언가에 몰두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것밖에 없다고 작정하고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릴 수 있을까? 니시오카는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 니시오카 주위에 마지메나 아라키나 마쓰모토 선생 같은 사람은 없었다. 학생 시절 친구들은 뭔가에 빠져드는 것을 오히려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니시오카도 기를 쓰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꼴불견이라고 생각했다. 니시오카의 아버지도 샐러리맨이지만,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불명확하다. 단순히 그게 직업이니까 회사에서 일할 뿐이다. 가족을 위해, 회사의 업적을 위해, 월급을 받아 생활하기 위해.
사전을 만들면서 말과 진심으로 마주서게 되고서야 나는 조금 달라진 느낌이 든다. 기시베는 그렇게 생각했다. 말이 갖는 힘. 상처 입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를 지키고 누군가에게 전하고 누군가와 이어지기 위한 힘을 자각하게 된 뒤로, 자신의 마음을 탐색하고 주위 사람의 기분과 생각을 주의 깊게 헤아리려 애쓰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