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고구레빌라 연애소동

uragawa 2013. 4. 16. 08:30

아무도 이를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젊음은 좋다. 만남이 있다. 두려움 없이 사랑을 할 수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혼자 남겨진다는 뜻이다. 어쩔 수 없다.

-심신





예전에는 도심과 떨어진 곳에 살았다. 그 당시 아침 전철 플랫폼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어떡하면 조금이라도 좋은 위치에서 전철을 기다릴지, 얼마나 자연스런 몸놀림으로 인파를 뚫고 전철 안으로 들어갈지, 중간에 어떤 자리가 빌지, 어떤 손잡이를 잡아야 아저씨의 콧김 세례를 받지 않고 스리슬쩍 몸을 기대는 여고생을 업지 않으면서 통근전철 속에서 쾌적하게 40분을 보낼 수 있을지, 하루의 길흉을 점치기라도 하듯 너나 할 것 없이 진지함을 넘어 살기등등한 눈으로 홈에 집결한다.

- 기둥에 난 돌기





남편이 끓이는 커피가 흙탕물 같다.


남자들은 대개 ‘꽃다발이 풍성하게 보이도록’ 주문을 하는데, 여자로서 이해하기 힘들다. 꽃 종류도 제대로 모르면서 크기만 지정하는 건 별 생각이 없어서이겠지만, 꽃다발 크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여자는 그렇게 많지 않다. 젊은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그보다는 흔치 않으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꽃을 사용했는지, 색깔을 조화를 이뤘는지, 디자인 감각은 좋은지 등에 신경을 쓴다. 꽃다발 하나에서도 남녀의 사고가 얼마나 다른지 볼 수 있다. 꽃줄기를 다듬으며 사에키는 생각한다. 남자는 꽃다발을 통해 재력이나 자기 존재감 같은 힘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여자는 꽃다발을 통해 상대방이 얼마나 자신과 대화를 원하는지 읽으려고 한다. 얼마만큼 자기 취향을 남자가 아는지, 얼마만큼 세심하게 신경을 써주는지.

하긴, 남녀의 생각이 다른 것도 당연한 일이지. 마지막으로 리본을 묶어 장식한 다음 꽃다발을 점검하면서 사에키는 피식 웃는다. 사랑을 얻으려는 마음은 같지만 결정적으로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그렇기에 질리지 않고 남녀가 사랑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이를 먹고 늙는다. 마음은 젊어도 몸은 한 걸음 한 걸음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다. 사에키는 놀랍기도 서글프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상상만큼 늙는다는 불안함은 느끼지 못했다.

- 검은 음료수





하지만 구와타의 말에 반론은 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재능도 끈기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는 어쨌거나 자기가 스승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표면상으로나마 존중해 주는 것이 어른스러운 행동이다. 게다가 구와타가 힘들어 하는 것 또한 사진의 매력에 빠졌기 때문이란 걸 잘 안다.

질투, 슬픔, 분노, 구와타는 어쩌면 사랑과 동일한 열량으로 사진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 거짓말의 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