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803

어긋난 인연

1957년부터 1971년까지 15년 동안 32건의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중 생후 1년 이상이 지나고 나서야 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경우가 14건이나 되었다. 아이가 바뀐 것을 의심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카이시 교수는 크게 세 가지 동기를 꼽았다. 첫 번째, ‘왠지 이상하다’는 엄마의 직감 두 번째, 얼굴이 닮지 않음. 세 번째, 혈액형이 다름. ABO식 이외에도 MNSs식, Rh-Hr식, PGM형, Gm형, Gc 혈청형 등 다양한 형질이 있다는 것은 의외로 알려져 있지 않다. 혈액을 구성하고 있는 성분, 즉 적혈구와 백혈구 또는 혈청 중 어떤 것을 조사할 것인가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ABO식 혈액형은 이 많은 혈액형 종류의 하나에 불과하다. ‘잠옷을 그대로 입고 학교에 ..

한밤의 도서관 2019.02.13

행복한 자살되세요, 해피 뉴 이어

10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나는 눈을 뜬다. 안다, 이 일요일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고독하리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일요일 저녁의 우울’이라고 하는 건 주말이 벌써 끝나는 것이 슬퍼서다. 한 배에서 나온 병아리들마냥 따뜻하게 붙어있고 싶은 거다. 그치지 않는 웃음소리, 가족 나들이, 이불 속에서의 애무, 친구들과의 술자리, 그래도 아직 성에 차지 않은 거다. 그런데 나는 어서 월요일이 되길 기다린다. 빨리 침묵에서 벗어나고 싶어서다. 내가 ‘간접적’이라고 하는 건 로라가 나에게는 어쩐지 말을 아끼려고 하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의 상사라서가 아니다. 그녀는 그런 거에 얽매이는 타입이 아니니까. 오히려 나를 배려해주는 거라고 보는 게 맞다. 내가 남편도 자식도 애인도 없이 혼자 산다는 걸 알..

한밤의 도서관 2019.02.10

기쁨의 노래

나는 언제나 혼자다. 하지만 외롭지는 않다. 혼자와 외로움은 전혀 다르다. - 12월 1일-미키모토 레이 中 아무튼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 혼자라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을 보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이 있어서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든 나는 나라고 생각할 근거가 있겠지. 강한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행복한 사람이다. 정말로 혼자가 되는 공포를 극복할 수 있는 뭔가를, 레이는 분명 가지고 있다. - 12월 22일-하라 치나츠 中 “넌 젊으니까 이제부터 시작이야.” 말문이 막혔다. 격려할 생각으로 한 말일 것이다. 하지만 뭐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걸까? 내게 더 이상 이제부터란 없다. 엄마에겐 단순한 즐거움이었겠지만 내게 소프트볼은 전부였다. 그런 말은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걸 ..

한밤의 도서관 2019.01.09

파과

조각은 최소한 신뢰를 잃은 채로 떠나고 싶지 않을 만큼은 이 일에 애정이 있었는데, 대놓고 애정이라고 하기엔 이 일의 성격상 좀 뜨악한 표현이고 몸을 움직여 일하는 데 대한 집념이나 원년 멤버로서의 집착 내지는 나 아니면 할 수 없단 식의 고집이라고 부르기에도 적절치 않은, 말하자면 탯줄과도 같은 감정이었다. 그것도 간신히 영양을 공급하다 불현듯 아이의 목을 단단히 감아버린 탯줄로, 언제 죽음으로 이어질지 모르는. 어린이의 리더십을 길러주고 영재성을 계발한다는 논리 논술 철학 학원에서 막 돌아온 소년이 열쇠를 꺼내는데 건너편에서 무언가 쿵, 육중한 물건이 철문에 부딪쳤다. 소리는 도어스코프 높이쯤 되는 자리에 들러붙었다가 바닥까지 둔탁하게 끌어 내려졌다. 사람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또는 어느 날 ..

한밤의 도서관 2019.01.06

동트기 힘든 긴 밤

거리가 임신해서 아이를 낳기 위해 퇴학한 사실을 알게 된 이후, 그는 여러 사람들에게 이 상황을 알렸다. 하지만 시골 학교에 있는 늙은 교사들은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촌에서는 미성년자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은 흔하다고 말했다. 그들의 눈에 살인과 방화는 교도소에 갈 범죄지만, 십 대 소녀의 원치 않은 임신은 그저 스스로 성폭행당했다고 말하지만 않으면 그리 대단한 문제도 아니었다. 사람이란 항상 끝까지 하고 싶어도 결국 포기하게 되는 일을 만나기 마련이지. 포기해도 좋고 붙잡고 늘어져도 좋아. 뭐가 옳고 뭐가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고, 포기하지 않는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니까. “서류 몇 장만 가지고 누군가를 파악하려 한다면, 그 사람에 대한 정의는 그 종이만큼이나 얄팍할 겁..

한밤의 도서관 2019.01.04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

서점을 산책하는 데에서 얻는 매력은 아주 많다. 첫째, 책을 발견하는 기쁨. 둘째, 대형 서점에서 느끼는 스트레스가 없다는 점. 셋째, 나와 잘 맞는 개성적인 서점이 주는 편안함. 나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직접 기획하고 혼자서 책을 만들 수 있는 유능한 편집자라고 해도 연봉 5천만 원 받는다는 말은 좀처럼 들리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평균 3~4천만 원 정도일까요. 대학을 갓 졸업한 사람이라면 2천만 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기본적으로 급여가 너무 적기 때문에 특히 한국에서는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 편집자라는 직업을 유지할 수 없어요. 우선 전제가 되는 출판 시장의 특징이 매우 달라요. 일본은 출판이라고 하면 곧 잡지이고 출판 불황은 잡지 불황이라고까지 말 할 수 있죠. 잡지 그리고 문고와 만화가 일..

한밤의 도서관 2019.01.01

제가 이 남자랑 결혼을 한번 해봤는데요

남편이 나를 만나고 변화한 점 1. 쌍욕을 배움. 2. 예전엔 상상치도 못했던 남의 단점을 알게 됨.(나에게 들음) 3. 물질만능주의가 됨. 4. 내가 볼 땐 경비 아저씨에게 인사를 안 하게 됨.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준 책. 서점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봐서 3천원 이라는 걸 기억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생각보다 별로라고 해 감안하고 읽었다. 개인적으로 이걸 돈 주고 사라고 만든 서점의 의도에 기겁했다. 시발 글이 장난이야? 아~ 사장인 남편 책 잘 팔리니까 부인 퇴사한 기념으로 책을 만들어주자 뭐 이런거였나본데 그냥 너네들끼리 서로 기념하시지 그랬어요. 독립 출판이 내가 내고 싶은 책 내 돈 내고 만드는 거라는 것 충분히 알지만 서점을 등에 업고 나왔으면 이러면 안 됐지. 이전 책에 중복되는 내용..

한밤의 도서관 2018.12.22

이렇게 책으로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끝까지 읽기 위해서는 참을성이 필요하거든요.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두 페이지 정도 읽기 않으면 재미를 느낄 수 없는 법이니까요. 하지만 일다 책이 재미있다고 생각되면 금방 좋아지고 무엇보다 다음에는 자기가 읽을 책을 스스로 고를 수 있게 되거든요.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스스로 고르는 행위는 생각하고 혼자서 깨닫고 행동하는 인간으로서의 기본자세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러니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자신만의 것으로 만드는 기쁨은 아이에겐 정말로 큰 의미가 있는 거예요.” 단행본이나 잡지가 인쇄되어 독자들에게 가기까지 저자는 편집자를 통해 교열자와 여러 번 원고를 주고받는다. 그러면서 내용에 관해 여러 가지 의문을 해소하거나 구성이나 문맥, 문법상 오류를 바로잡는데, 그 과정에서 필요한 ..

한밤의 도서관 2018.12.11

그런 책은 없는데요...

◆ 손님 어른들 책 안에는 왜 그림이 없는 걸까요? 슬프잖아요. 어릴 때는 항상 글과 그림을 보게 해놓고 어느 날 갑자기 그림만 빼앗아가 버리면 어쩌라는 거죠? 직원 …맞아요. 참으로 잔인한 세상이죠. ◆ 손님 이 서점에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구연 프로그램 있나요? 직원 네. 화요일마다 하고 있어요. 유아 대상으로요. 손님 잘됐네요. 저 위쪽 골목에 있는 놀이방이 너무 비싸서요. 그동안 애 때문에 꼼짝을 못 했는데 시간이 생기면 쇼핑도 하고 네일도 할 수 있겠어요. 직원 죄송한데, 그렇게는 어려워요. 이야기 시간에 부모님이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셔야 되거든요. 손님 왜요? 직원 …그야 저희는 놀이방이 아니니까요 ◆ 손님 시어머니 관련 유머집 있나요? 농담하는 것처럼 시어머니께 한 권 선물하려고요. 그런데 ..

한밤의 도서관 2018.12.06

모스크바의 신사

비신스키 직업은? 로스토프 직업을 갖는 것은 신사의 일이 아닙니다. 비신스키 좋아요. 그럼 당신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죠? 로스토프 식사와 토론. 독서와 사색. 일상적인 잡다한 일들. 비신스키 시도 쓰죠? 로스토프 나는 깃펜으로 펜싱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신스키 [작은 책을 들고] 당신이 1913년에 발표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이 긴 시를 쓴 사람인가요? 로스토프 내가 썼다고들 하더군요. 비신스키 왜 그 시를 썼습니까? 로스토프 시가 절로 써진 겁니다. 시가 나오려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던 날 나는 그저 어느 특정한 날 아침에 특정한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야. 스위트룸을 포기할 준비가 되었을 때 백작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한밤의 도서관 2018.11.28

고맙습니다

내게 원소와 생일은 늘 하나로 얽혀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원자번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열한 살 때 나는 “나트륨이야”라고 말했고(나트륨은 11번 원소이다), 일흔아홉 살인 지금 나는 금이다. 몇 년 전 내가 친구에게 여든 살 생일 선물로 수은이 든 병을 주었더니―새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특수한 병이었다― 친구는 별 희한한 걸 다 준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에 내게 멋진 편지를 보내어 이런 농담을 전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아침 조금씩 섭취하고 있다네.” 나는 노년을 차츰 암울해지는 시간, 어떻게든 견디면서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간으로만 보지 않는다. 노년은 여유와 자유의 시간이다. 이전의 억지스러웠던 다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

한밤의 도서관 2018.1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