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는 고이지 않고 흐른다. 관계는 멈추지 않고 쉼 없이 움직이는 생물이다. 어디에선가 누구는 놓고 어디에선가 누구는 닿는다. 살아 있으므로 그리워하고 살아가야 하므로 잊는다.
호의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 당연하게 여기는 그 순간이 관계의 첫 균열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가깝고 친해지면 자신도 모르게 관계에 방심하는 횟수가 는다. 소홀과 무례는 항상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이라서, 나 사진이 알아차리게 된 때에는 이미 늦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싶다면, 내 성격이 어떤가를 남들에게 묻기보다 내 혀가 어떤 말을 주로 내뱉고 있는지 스스로 살펴봐야 한다.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성격이 아니라 사용하는 언어를 바꾸고 말하는 태도를 바꾸면 된다. 성격은 바꾸기 힘들지만 말의 색채는 사용하는 사람이 얼마든지 선택하고 바꿀 수 있으니까.
행복감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성취와 소소한 마음의 오고감에서 생성되는 물질이다. 누군가의 작은 관심과 인정과 격려만으로도 충만해질 수 있다.
자기 자신과 사귀는 법을 모르고 사는 어른이 의외로 많다. 자신의 어떤 감정을 밖으로 내보내고 어떤 감정을 보살펴야 할지 몰라 온갖 감정을 다 끌어안고 살거나, 모든 감정을 내보내버리고 감정 없이 사는 사람도 있다. 감정이 시키는 대로 감정에 끌려다니며 사는 사람도 있다. 감정 관리는 자기 자신과 당당하게 마주하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끊임없는 걱정과 고민들, 고통과 상처의 기억들로부터 도망치지 않아야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 삶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때는 자신의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해야 하는 때이다.
상처나 아픔이나 쓰라림은 그때 그 시간의 파편들이다. 그때는 감히 지금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현재는 지금의 소유다. 지금이야말로 가장 단단하다.
조금은 행복해질 권리가 내게도 있다고 믿었다. 열심히 산 만큼의 수입을 갖고 싶었다. 보통의 일상을 꿈꿨다. 이 정도면 욕심부리지 않는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