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부터 ~ 1711

창백한 잠

“다쓰미 씨, 당신은 아직 젊습니다. 나랑 나이가 스무 살 가까이 차이 나지 않습니까. 이 나이가 되면 대부분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 상상이 되어서 다양한 사람들을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게 되지요. 어려운 건 잘 모릅니다. 그렇지만 느낌으로 ‘아, 이 사람은 이런 인간인가 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는 게 있어요. 이건 특별히 당장 눈앞에 있는 상대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어린 시절이나 젊은 시절에 만난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됩니다. 옛날에는 이해할 수 없다고 목청 높여 싸우곤 했지만 지금이라면 그 남자도 이해가 간다. 그렇게 된달까요. 그렇지만 내 부친만은 아무리 해도 그게 안 되더라고요. 그 사람만은 아들 입장에서 봐도 여전히 어딘가 속을 알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그러나 사람이라는..

한밤의 도서관 2016.04.28

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경남도지사에게 여러 가지 책을 추천했는데 그중 가장 추천하는 책은 단연 ‘개념원리’입니다. 물론 ‘개념을 가져라’라는 1차원 적인 뜻에서 추천한 건 아니라는 걸 모두 알고 계실거라 믿습니다. 그럼 뭐냐고요? 알아서 판단하세요. “판단은 당신의 몫.”-진주문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기’, ‘함께 행복하기’, ‘함께 즐기며 살아가기’ ‘사라져 가는 것’등 평범하지만 쉽게 잊고 살아가는 가치들을 고민하며 살아요.-도시여행자 동네 서점에서 은근 득템한 기억이 많은 나로서는 굉장히 반가운 책.펀딩 받은 책이더라. 표지 디자인도 예쁜데다 가격도 착함.앱도 출시 된단다.(4월 26일) 사용성 좋은 앱이라면 항상 지니고 볼 듯함. 검색해보니 안드로이드는 있던데 ios는 못 찾았어. 금요일 밤의 서점도 가보고 싶음 ..

한밤의 도서관 2016.04.22

기억나지 않음, 형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이토록 천박한 도시다. 살인, 강도, 납치, 강간, 뭐든지 나와 상관없으면 시민들은 방관자적 입장에서 사건을 감상한다. 프롤레타리아 대중이 모두 냉혈동물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단지 현대사회의 인간은 공감능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이성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냉혹하다. 과학기술이 발전할수록 정보는 더 쉽게 유통되고, 우리는 세상일에 점점 더 마비된다. 어쩌면 세상에 나쁜 일이 너무 많아서 냉혹해져야 했는지도 모른다. 합 겹 또 한 겹의 갑옷으로 자신을 감싸고서 이 ‘번화한 사회’에 적응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방관자적 입장에서 사물을 보아야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는다.인간의 마음은 몹시 연약하다. 지금 이런 감각을 ‘미시감’이라고 하는 거겠지? 낯선 사물을 익숙하게 ..

한밤의 도서관 2016.04.14

미스테리아 5호

한니발은 한마디로 ‘먹는 존재’다.걸출한 미식가로서 그는 모든 것을 먹지만, 그중에서도 인간을 먹는다. 그리고 크게 가리지는 않지만, 대체로 무례하고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인간을 먹는다. 현대의 독자나 관객이 은밀하게 환호하는 이유는 그가 보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먹어버리는 판관이자 에티켓 교사이자 육식동물이라는 점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다운 식탁 예절 ― ‘윤리적’도살자, 한니발 렉터 알라딘에서 책 구매하려고 이것저것 보다 표지 디자인이 눈에 띄어서 구매해 봄.솔직히 어떤 책인지 모르고 구매했는데,매거진이더라고 ㅋㅋㅋㅋ 표지도 재질이 좀 간지남.소중하게 다뤄드려야 해..... 재미있는 컨텐츠들이 많았는데,내가 미스테리 소설을 좋아하지만 깊이가 깊지는 않아 그런지..

한밤의 도서관 2016.04.06

장수의 악몽, 노후 파산

점심 식사를 마친 다시로 씨는 옆에 있는 바둑실로 갔다. 그러나 상대가 없어 바둑을 둘 수가 없었다. 고령자 몇 명이 바둑을 즐기고 있었지만 다시로 씨는 그 사이에 끼려고 하지 않고 바둑실 안쪽에 있는 책장으로 향했다. 소설과 기행문 등이 꽂혀 있는 책장에서 책 한 권을 꺼내더니 의자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결혼식에 가면 축의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장례식에 가면 조의금을 내야 하지 않습니까? 돈이 없으면 사람들과 교류할 수 없습니다.”친구들과의 식사 모임에도 참가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하고, 슬프고, 비참했다. 돈이 없기 때문에 친구라는 ‘유대’가 단절된 것이다. “이제 밖으로 나갈 수조차 없다고 생각하면 죽고 싶어질 때도 있지요. 왕진을 하러 오신 의사 선생님한테 이렇게 걷지 못하는 몸이 되다니 ..

한밤의 도서관 2016.04.04

Unfair the end

눈에는 눈을복수에는 복수를언페어에는 언페어를 アンフェア the end (Unfair the End, 언페어 디 엔드, 2015)감독 사토 시마코 원작 하타 타케히코 출연 시노하라 료코, 나가야마 겐토, 아베사다오, 요시다 코타로, 카토 마사야, 아키라, 테라지마 스스무, 사토 코이치홈페이지 www.unfair-the-end.jp 진짜 10년이 되도록 사골 우려먹듯,똑같은 패턴으로 징그럽게 우려먹었다. 새로운 인물,아키라(등장하자마자 나 수상한 사람이오 느껴지는 건 나만 그래? ㅋㅋㅋ) 겐토가 잠깐 나오는 줄 알었는데 아니었네 형아 대신 열심히 나와줬다. 아무래도 언페어 전체를 마무리 짓는 영화이다보니, 아버지를 죽인 범인도 밝혀야 하고그동안 얻어낸 엄청난 정보를 어떻게 노출 시킬 것 인가도 고민해야 하고..

먼지쌓인 필름 2016.04.03

말벌

붕붕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날아다니는 모습은 예전에 깐족거리며 나를 야단치던 과장을 연상시켰다. 안자이. 당신, 일할 마음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엉? 대체 무슨 생각이야?내가 웬만해선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제 도저히 못 참겠어. 영업일지는 적당히 얼버무릴 수 있지만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지금까지는 자네를 생각해서 위에 보고하지 않았는데, 더 이상은 안돼.우리 회사가 실업자를 구제하기 위해 있는 줄 알아? 살고 싶으면 싸우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가?아니, 잠깐만. 그것이야 말로 안자이 도모야 작품의 영원한 주제가 아닌가.인생이란 싸움의 연속이다. 싸움을 포기한 자는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안자이, 당신은 회사의 집이자 밥벌레야.일할 마음이 있긴 한 거야? 동료들..

한밤의 도서관 2016.03.31

인어공주- 탐정 그림의 수기

오늘은 이상한 날이다. 마치 어제까지와는 다른 세상에 빠져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탓에 세상에 균열이 생겨 원래의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게 됐는지도 모른다. 분명 그렇다.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일에 그 정도의 영향력쯤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렇게까지 해서 맞서야 하는 현실이 제대로 된 것일 리 없다. 한스는 늘 그렇게 생각하고 현실을 도피해왔다. 이렇게 지저분한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환상을 찾았다. 모든 책이 그러하듯이 중요한 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에 적혀 있어. 이 세상의 진실도 그러하단다. 그리고 진실을 알기에 우리네 인생은 너무나 짧아 세상의 규칙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면 더욱 엄격히 속박당하게 돼...

한밤의 도서관 2016.03.20

골든애플

“삼 년 더 늦게 태어났다면 지금과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까.”부정적인 사고방식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와카미 고이치와 같이 있으면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비슷해서인지 속내가 나오는 것이다.-에로토마니아 中 분명 올해 겨울도 이런 식으로 어느샌가 지나갈 테고, 봄과 여름이 지나 다시 가을이 찾아오겠지. 뭔가 이 비슷한 게 있었는데. 아, 맞아. 얼마 전에 들렀던 전자제품 매장, 거기서 봤던 드럼세탁기. 나는 돌아가는 드럼세탁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천천히 돌던 세탁기 속의 잠옷, 속옷, 수건이 하나하나 다 보였는데, 탈수 모드에 들어가자 빨간 잠옷도, 베이지색 속옷도, 파란 수건도 모두 한데 뒤엉켜 뭐가 뭔지 알아 볼 수 없었다. 아, 지금 내 이생은 탈수모드나 마찬가지였다..

한밤의 도서관 2016.03.16

삼면기사, 피로 얼룩진

이 사람은 언제까지 신혼 기분으로 있을 셈인가. 결혼한지 7년이나 지났는데 남편이 바람피우는 게 아닐까 내내 걱정하며 가슴을 졸인다. 막 연애를 시작한 아가씨도 아니고 좀 더 당당해도 될 텐데. 진짜 바람을 피운다 한들 모르는 척 있으면 대충 접고 돌아올 것이고 그만두지 않으면 전처럼 또 친정으로 가버리면 될 것 아닌가. 그럼 헐레벌떡 데리러 오는 게 형부라는 사람이니까. 중매로 결혼한 언니가 이제 와서 새삼 그 남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아내라는 자리를 잃을까 두려운 게 아니라 마사후미라는 남자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게 두려운 걸까.-사랑의 보금자리 바로 그때 문득 나는 지금껏 내 사랑이 왜 성사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키 큰 사람이 좋다든가, 잘생긴 얼굴이 좋다든가, 늘 외모에만 반..

한밤의 도서관 2016.03.10

살인해 드립니다

켈러는 제일 좋아하는 배우가 잭 일럼 같은 악역 배우라는 사실이 자신에 대해 무엇인가 말해주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002 말을 탄 사나이 켈러 中 개를 보고 싶었다.켈러는 몇 년 동안 혼자였다. 혼자만의 길을 찾고, 생각을 남에게 털어놓지도 않았다. 혼자인 데 익숙했다. 어린 시절부터 본성이 고독하고 비밀스러웠는데 그가 선택한 직업에서는 이런 특징이 전문가의 요건이 되었다. 어느날 정신을 차려보니 나에게 이미 직업경력이 생겨 있더군. 그게 사람들을 없애는 일이었던 거야. 그런 일에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소질도 없었는데 알고 보니 관심이나 소질은 필요가 없더라고. 할 수만 있으면 돼. 처음에는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두번째에도 누가 하라고 해서 했고, 그러다 보니 어느새 그게 하는 일이 되어 있었어...

한밤의 도서관 2016.03.08

하드 럭

일용직 파견만 하고 있으면 개미지옥이야. 그 녀석들 한없이 착취하잖아. ……정말 사람들의 품에서 착취할 수 있을 만큼 착취해간다니까. 지금 세상은 착취하는 자와 착취당하는 자로 나눠져 있어. 입장이 약한 사람은 늘 착취될 뿐이야. 산책로의 수풀로 시선을 보내자 종이박스를 안고 자는 사람이 있다. 자신처럼 무거워 보이는 짐을 안고 헤매는 노숙자 같은 사람과 지나쳤다. 내내 고독했다. 어떻게 하면 이 늪 같은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는 나날이었다. 어쩌면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과 얘기하다 보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착한 사람이라고 해서 보상을 해주는 세상이 아니다. 악인이라고 반드시 대가를 치르지도 않는다. 이런 놈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지..

한밤의 도서관 201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