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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없는 살인의 밤

“거짓말은 대담한 편이 오히려 낫거든요.” 부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약간 큰 목소리로 말했다. “진실에 거짓이 조금 섞여 있는 건 안 됩니다. 그 부분만 두드러져서 파탄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지요. 100퍼센트의 거짓은, 그것이 거짓이라는 걸 좀처럼 증명할 수 없는 법이거든요.” - 범인없는 살인의 밤 中 히가시노 게이고의 1990년 작 단편집. 첫 수록 작품이 좀 읽기 힘들어서 좀체 읽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작품 [어둠 속의 두 사람]으로 넘어가고 난 후, 겨우 술술 읽어내려 갈 수 있었다. 계모와 중학생의 아들, 어린 동생과의 관계를 이렇게 풀어갈 수가 있나???? 누가 나쁜 건지 모르겠다. [하얀흉기] 담배 냄새 때문에 사람을 죽여버릴 수도 있다는 것 대단하다. 여자는 정말로 섬세한 생물체다. 마지..

한밤의 도서관 2010.04.07

1001초 살인 사건

“황혼 녘에 한자를 붙이면 ‘誰そ彼’거든요. 그리고 어스름 녘은 ‘彼そ誰’래요. 저말이죠. 황혼 녘은 가까이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저기 가는 사람은 누구다’하고 알아볼 수 있는 때고, 어스름 녘은 똑같이 가까이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도 ‘저기 가는 사람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황혼 녘보다 좀 더 늦은 시간이라고 생각했거든요.” “흠흠, 그렇군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양쪽 다 지나가는 사람을 어렴풋하게만 알 수 있는 시간대를 가리키는 말이고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지 뭐예요. 다만 예전에는 저녁에 어둑어둑할 때를 황혼 녘이라고 하고 새벽에 어둑어둑할 때를 어스름 녘이라고 했대요.” - 그대와 밤과 음악과 中 학창 시절은 까마득한 옛날이다.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훨씬 멀다. 평소에는 잊고 ..

한밤의 도서관 2010.03.31

내가 죽인 소녀

죽음의 의식은 죽은 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의식이었다. “인간이 하는 짓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모두 잘못이지만 적어도 용서 받을 수 있는 선택을 하려는 노력은 해야겠죠.” 인간만큼 투쟁을 좋아하는 동물은 아마 없을 테고, 남의 투쟁을 구경거리로 삼는 동물 또한 인간뿐일 것이다. 나는 승부에 진 사람을 싫어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패배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이나 패배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인간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삶의 방식은 아무리 계획적 혹은 의지적으로 보여도 결국은 그때그때의 거래에 지나지 않아.” - 말로라는 사나이中 잡생각 때려치우기와 시간때우기 용으로 고른 서적이 [내가 죽인 소녀] 하라 료 라는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고, 잘 생각해보니..

한밤의 도서관 2010.03.03

오늘 밤 모든 바에서

“니시우라 씨, 흡연실에도 잘 안오시던데 담배 좋아하시는군요.” 나는 노인의 귓가에 입을 가까이 대고, 큰 소리로 한 자 한 자 천천히 떠들었다. “아아, 담배는 좋아하지만, 나 같은 노인이 가면 젊은 사람들이 거북하니까.” “그렇습니까? 이야기가 안 맞습니까.” “그래. 안 맞는다기보다 모른 척하는 게 싫어서.” “모른 척?” “응. 젊은 사람은 자랑하고 싶은 게 많이 있잖아. 자기가 아는 거라든지 해본 거라든지. 대부분은 나이 들면 아는 건데 그걸 안다고 하면 죽도 밥도 안되고 분위기만 험해지니 입 다무는 게 상책이지. 그래도 아는 걸 뽐내고 싶은 게 인간의 습성이니까. 그런 때는 죽은 듯이 있는 게 좋지.” 나카지마 라모. 이전에 읽었던 책이 참으로 기묘했다면, 이번에 읽은 책은 인간미가 느껴졌다...

한밤의 도서관 2010.03.02

13번째 인격 ISOLA

융은 인간의 정신적 기능을 윤리,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로 분류했는데, 이 가운데서도 다른 기능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엄청난 파워를 지니고 있는 것이 바로 감정이었다. 그것은 어두운 바다와 다를 바 없는 무의식의 세계에 깊이 잠들어 있는 마음의 에너지를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힘으로, 강한 감정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사람이 그 힘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내적으로만 확산시킬 경우 불과 몇 초 만에도 위벽에 구멍을 뚫을 수 있다고 한다. 유카리는 지금의 히로코와 비슷한 상태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몇 번인가 들여다본 적이 있었다. 이른바 모에쓰키 증후군(충실하게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기력해지는 증상으로 우울, 권태, 두통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이었다. 한신 대지진 자원봉사자 가운데도 진지하..

한밤의 도서관 2010.02.24

한낮의 달을 쫓다

이 순간부터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롭고 불확실한 존재가 된다.아마 우울한 기분이 드는 것은 자유롭기 때문일 것이다. 평범한 인간에게 자유는 꽤 괴롭다. “좋아하게 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지만 헤어지는 데는 이유가 필요하거든. 아니면 끝낼 수 없잖아.”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너무나도 지당한 의견이었다. - 때에 임하여 짓는 노래 中 나는 평소에 늘 그런 여자들을 동경하고 있었다. 자신이 여자라는 동물이라는 사실에 아무런 의문도 갖지 않는 여자. 회사 탈의실에서 돌려 보는 통신판매 카탈로그에서는 어김없이 세상 대다수 여자들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고르고, 레슨 선생님에게 얼마를 드려야 할지 넌지시 의논할 수 있는, 느낌이 좋고 손톱 손질을 잘하는 여자들을. “지금은 점점 기..

한밤의 도서관 2009.12.31

2009년 읽은 책 목록

아래는 도서관을 통해 읽은 책들이고, (도서관에서 올해 읽은 책을 검색했는데, 시스템 오류가 있는 것 같다. 오차가 있다.) 이것에 (정기 구독하는, 또 주변에서 준)책 30권을 추가하면 올해 읽은 도서 권수가 나온다. 최근에 읽은 순서로 나열 하였다. 1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한참을 생각하게 한 소설, 주관적으로 생각하는 연관성 : 기시 유스케 [신세계에서] 02 내가 그를 죽였다 03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04 나비 : 온다 리쿠 초감각 소설 짧지만 강한 온다 리쿠의 소설. 틈. 05 (디자이너를 위한)그리드 디자인:효율적인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의 원리 06 좋은 디자인을 만드는 33가지 서체 이야기=33 essential typefaces for good design 07 잠자는 숲 따끈..

한밤의 도서관 2009.12.28

로미오와 로미오는 영원히

과학 기술의 진보 등은 속임수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대단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소비는 악덕이며, 문명이 소비를 조장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옛날처럼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불필요한 것을 생각하거나 현실에 있을 법하지도 않은 것을 공상하는 것은 에너지 낭비이며, 일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것 역시도 악덕이다 더구나 서브컬처는 죄악이다 - 어두워질 때까지 中 우리는 어리석은 생물이다 하얀 화면과 상자 안에서 공허한 망상에 빠지고, 뇌만 비대해져 존재하지 않는 것을 추구하고, 폐쇄된 공간에서 하찮은 것으로 쾌락을 추구하고, 손도 발도 내장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거세된 듯한, 유령 같은 인간이 세계를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향락적으로 피부를 노출하고 춤추는 사람들. 죽 늘어선 하얀 화면을 홀..

한밤의 도서관 2009.11.06

고백

칼슘 부족 그런 얘기로 시작해 이 화제로 넘어왔는데 여러분에게 부족한 건 칼슘만이 아닙니다 일본인은 예로부터 재료의 맛을 즐길 줄 아는 민감한 혀를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에는 달콤한 카레를 먹으나 매콤한 카레를 먹으나 맛을 구별하지 못하는 아이가 늘고 있다고 해요 아연 부족이 일으키는 미각장애가 원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혀 아니 A와 B의 혀는 어떨까요?- 성직자 中 착하다는 게 뭘까 봉사활동이라도 하면 또 모를까 나는 착하다는 말을 들을 만한 행동을 한 기억이 없다 칭찬할 점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착하다는 말로 둘러대는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칭찬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나는 꼴찌가 되기는 싫지만 일등이 되지 못한다고 시샘하지도 않으니까 - 구도자 中 생명은 물거품보다 가벼워도 시체는 쇳덩어리보다 무거워..

한밤의 도서관 2009.10.30

나비 -생명의 퍼레이드

원래 남성이랑 진정한 굴욕을 모르는 생물이다. 진정으로 착한 사람이 아닌 인간이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은 별 생각 없이 상투적인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상대방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어디선가 들었음 직한 대사로 얼렁뚱땅 넘기려 한다 그럴듯한 말, 잘 알려진 흔한 말, 빈껍데기 말. 착한사람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인 그는 그 역할에 잘 어울리는 친숙한 말을 별 생각 없이 썼다 그러니까 자신의 말로 말하지는 않은 것이다.-스페인의 이끼 中 아무 존재도 아니고, 사용 목적조차 제대로 모르는 채, 대도시라는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 중 하나가 되어 무기질로 이루어진 경치 속에 파묻혀 똑같은 하루하루를 보냈다. 톱니바퀴는 생각을 갖지 않는다 공포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평온한 날들을 보낼 수 있..

한밤의 도서관 2009.09.30

가가형사

졸업:설월화 살인게임과 잠자는 숲은 두 권 같이 도서관에서 대출했는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 책이었다. (도서관은 하드커버만 있으면, 소설에 대한 내용을 알 수가 없다.) 01 졸업(卒業) -1986 [졸업 : 설월화 살인 게임]은 가가형사의 대학 시절 이야기로, [악의]를 먼저 읽었었기 때문에 가가의 과거로 흘러가서 무척 흥미있게 읽었다. 대학 친구들의 각기 다른 고민, 졸업과 장래희망이 얽혀 있어 80년대 이야기지만, 청춘은 다 비슷한 듯 별반 다르지 않다. 다섯 친구 중 한 명이 죽는 사건을 시작으로, 서로 얽혀가는데 가가 나름대로 사건을 추리해 나간다. 다섯 명의 친구 중 세 명이 죽음으로서 세상과 졸업한다는 게 눈물이 나지만, 가가와 가가가 좋아하는 여자와 이어질 듯 말 듯한 분위기..

한밤의 도서관 2009.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