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쌓인 필름

세상에 남겨진 유일한 내편

uragawa 2010. 8. 18. 13:23



예전에 인터넷에서 달 동네에 사는 한 초등학생의 그림일기를 본 적이 있다.
엄마는 알코올 중독이고, 굉장히 힘들게 현실을 살아가던 소녀였다.

그림일기에 하느님은 정말 우리 때문에 죽은 거 맞아요 ?
저는 죄를 지은 적도 없는데, 다른 애들보다 아프고 힘들게 살아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전 억울해요. 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그 글을 읽고, 소미(김새론)라는 캐릭터와 정서를 떠올렸다.
그러다 만약 이런 아이가 납치되면 누가 구할까?를 고민하면서
태식(원빈)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중점을 뒀던 건 내러티브가 설득력을 갖고 관객들에게 다가갔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옆집 아저씨가 아이를 구한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촬영을 하면서도 굉장히 신중하게 접근했다.
일단 두 사람은 피가 섞이지 않은 관계지 않나?
그동안의 스릴러 영화들을 보면 아버지가 딸을 구하는 등 익숙한 관계가 많았다.

그런 영화를 내가 또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아무런 관계 없는 아저씨가 애를 구하는 게 훨씬 더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을 위해 어떻게 (이야기의) 정당성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한 뒤 드라마를 만들었다.
아이가 납치 당하고 아저씨가 나쁜 놈들을 추적하는 얘기다 보니까 둘이 만날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더라.
어떤 감정들만 솎아내서 관객들한테 보여줘야 되는지. 그 부분이 제일 고민스러웠다.
무엇보다 아저씨와 소녀의 관계성을 밀도 있게 조직하려고 노력했다.
그 부분에 있어 왜 아저씨가 소녀를 구하는지에 대해 중점을 뒀다.

물론 매체에서 이 영화가 소구되는 모습은 원빈이나 액션일 것이다.
그러나 감독의 욕심이라고 하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저씨라도 소녀를 구할 수 있다는 걸 느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줄 수도 있음을 알게 됐으면 한다.


 - <아저씨> 이정범 감독


아저씨 (This Man) 2010   
• 감독 : 이정범  • 출연 : 원빈, 김새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