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쿠리야는 장갑을 벗으며 석연찮은 듯이 말했다. 이 또한 이 사람에게선 좀처럼 볼 수 없던 말투였다.“난처하게 됐습니다.” “소화기관에는 위, 장 소장, 대장, 췌장, 간이 있습니다. 순환기관에는 심정, 비장, 신장이 있고요. 호흡기관이라 하면 폐, 비뇨기관에는 요관에서 방광까지 있을 테고요. 생식기관은 난소 자궁이 있습니다만, 장기란 장기는 죄다 적출된 상태입니다. 잘 아실 테지만 사망 추정 시각이라는게 직장直腸 내 온도를 측정해야 알 수 있는 것인데, 이건 뭐 직장 자체가 없으니…. 음식이 소화된 상태라도 알아보고 싶은데, 위가 있어야 말이죠.” 익명성은 안전지대의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인간은 안전지대 안에서 마음껏 악의나 독선을 드러낸다. 그 과격함에 흠뻑 취한 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것에 희열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