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76

서점 일기

멋모르는 사람들에게 ‘종고 서점 운영’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안락의자에 슬리퍼 신은 발을 올리고 앉아 입에 파이프를 물고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노라면,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그런 목가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효과적인 경종을 울려준다. 대부분의 책 거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최근에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 고인의 책을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됐다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아직 고인을 애도 중인 경우가 많아서 얘기를 듣다 보면 아주 약간이라도 그 슬픈 감정에 동요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인이 남긴 책들을 훑어보다 보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관심거리는 무엇이었는지..

한밤의 도서관 2021.03.15

책에서 한 달 살기

책은 읽는 동안 즐거우면 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날의 독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내용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치 여행처럼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습득하고 기억해 둘 의무는 없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나 지켜보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책은 참 신기하다.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여러 번 읽는 게 고역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어도 좋아하는 부분을 자꾸 반복해서 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점심을 먹기 전, 숲을 바라..

한밤의 도서관 2021.03.11

내 하루는 네 시간

찬란하던 때의 나를, 아픔이라곤 모른 채 철없이 밝기만 했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애가 가끔 그리워져서 일기장을 꺼내 보고,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읽어보지만, 도무지 그 애를 또렷하게 그릴 수 없다.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많은 시간을 몸을 돌보는 데에 썼다. 건강도, 공부도 열심히만 하면 이뤄낼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상대를 보며 점점 무기력해졌다. 루푸스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점점 알아가고 있었다. 내 병을 위해, 내 몸을 위해 무엇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건 몹시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아프기만 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억울한 눈물은 ..

한밤의 도서관 2020.12.08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우리는 환경과 동물이 혹사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언젠가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다른 생물들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동물과 생활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몸짓과 언어로도 동물과 긍정적인 의사소통 및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소통을 하면 신기하게도 동물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안에 들어가 동물과 직접 만나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동화나 디즈니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지연의 기본적이 규칙은 존중하되 진실하고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라는 얘기다. 이국적인 동물의 암시장 거래는 중동에서 늘 있던 문제..

한밤의 도서관 2020.11.12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무언가를 기획한다는 것은 결국 그 무언가에 대한 주도권을 내가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콘텐츠 기획도 마찬가지겠지요. 전전긍긍하며 키워드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콘텐츠를 기획하는 목적, 이 콘텐츠가 지금 세상에 나와야 하는 이유,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핵심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형식을 내가 명확하게 파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콘텐츠는 어느 날 갑자기 섬광처럼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기획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번뜩 떠오른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잘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는 지금껏 쌓아 온 맥락이 있기 마련입니다. 콘텐츠 기획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연습을 통해 더 잘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서..

한밤의 도서관 2020.11.01

밀가루는 못 먹지만, 빵집을 하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나오는 열정, 추진력과 성실함 덕분에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성장을 했다. 이제는 돈을 쫓지 않아도 돈이 따라올 수 있는 시스템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을 한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건 비현실적일 때가 많다. 남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되는 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아무리 현실이 막막하고 주변에서 말려도 해내야 한다. 왜냐하면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가장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후 더 잘하려면 더 많은 힘든 여정을 겪어야 한다. 좋아하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다면 좋아하는 일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너무 쉽게 포기한 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다. 어른이 되면 당연히 부모님을 호강시켜드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호강은커녕 이러다 부모님 집에 들어가서 나이만 먹고 구박받으..

한밤의 도서관 2020.10.29

수집자들

Q. @niboshism님이 별도의 개인 사이트 등을 통해 판매 중인 스티커 속 멸치는 어떤 기준으로 선별된 멸치인가요? A. 가장 멸치답다고 생각하는 멸치를 골라 스티커로 만들었습니다. Q. 사진 속 멸치 들의 행방 또는 근황을 알려주세요. A. 제 아내가 요리를 잘해서 미소시루(된장국)를 만들 때 사용했고, 맛있게 먹었습니다. 더보기 수집자들 - 인스타그램에서 모은 수집자들(2019) UE 12@ HOME [BOOKS] 구매한 책. 해외 수집자들은 아는 계정이 몇 개 있었고, 국내 수집자는 새롭네 ㅎㅎㅎ + @yuji_uz_hagoromo 맨홀을 전부 물로 씻은 후 촬영! 와, 난 지역에서 맨홀 관리를 엄청 잘하는 거라고 생각했지 왜 ㅋㅋㅋㅋ 씻어서 촬영하는 거였어!!!!!!!! 컬러가 없는 맨홀은 ..

한밤의 도서관 2020.09.18

내가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

부모님이 동물학자라면 이 정도 사건에 호들갑을 떨지 않게 된다. 한번은 부모님이 시장에서 구입한 커다란 상어의 배를 갈랐더니, 그 안에 사람 손이 들어 있었다! 아마도 앨커트래즈처럼 탈출이 어렵기로 유명한, 바다 한가운데의 감옥 섬에서 희생된 죄수의 손이 아닌가 싶었다. 누군가 탈출을 시도하다가 거센 파도에 휩쓸려 속수무책으로 넓은 바다로 끌려갔을 것이다. 그 감옥에서 탈옥한 후 본토에 도착하는 데 성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들 하니까. 하지만 그 상어는 사람을 잡아먹는 종류가 아니었으니 손은 사람이 죽은 후에 우연히 상어 입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컸다. 나중에 이 상어는 속이 제거된 후 박물관에 전시되었다. 킬에서 작가로 일하고 있던 코둘라 고모를 다시 만났다. 고모는 내가 모든 동물을 학명으로만 알고..

한밤의 도서관 2020.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