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79

나는 내가 우울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의 우울도 타인의 우울도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기예보는 미래의 기분을 예상하는 것과 같았다. 날이 흐리면 분명히 기분이 나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때문에 날이 흐릴 거라는 예보가 있으면 약속을 취소해버렸다. 심지어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를 갑작스레 취소해버린 적도 있다. 종이마음을 가진 나는 날씨에 지레 겁먹고 일정을 바꾸는 일이 허다했다. 날씨가 나인지, 내가 날씨인지 모를 만큼 딱 붙어 있었다. 우스운 것은 해가 난다고 해서 마음이 밝고 즐거워지지는 않았다. 그저 마음을 약간 햇살에 말리는 정도였다. 아주 우울하거나 조금 덜 우울한 정도였지만, 언젠가는 햇살에 바짝 말라 보송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한밤의 도서관 2021.05.20

꿈의 서점

GOKUCHU BOOKS를 시작한 후 사고방식에 변화가 찾아왔다고 한다. “책은 고상한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눈앞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죠. 책은 단순한 기호품이 아니라, 일용품적이기도 하고, 정크푸드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의 쓰임과 가치는 그것을 요구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다고 실감하게 되었어요.” 하고 기타지마 씨는 이야기한다. 주식회사 아톰쇼보는 재활용 서점으로 운영됩니다. 필요 없게 된 서적을 일본 전역에서 받고 있지요. 10엔, 100엔, 500엔, 1000엔. 가격을 이렇게 총 네 가지로 분류해 판매하고, 수익금 전액을 자선단체에 기부합니다. 동일본 대지진이나 구마모토 지진의 재해지역이나 고아원,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지원하는..

한밤의 도서관 2021.03.18

서점 일기

멋모르는 사람들에게 ‘종고 서점 운영’은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난로 옆에서 안락의자에 슬리퍼 신은 발을 올리고 앉아 입에 파이프를 물고 기번이 쓴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고 있노라면,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그런 목가적인 일이 결코 아니라는 효과적인 경종을 울려준다. 대부분의 책 거래는 생판 모르는 사람이 전화를 해서 최근에 가까운 사람이 세상을 떠나 고인의 책을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됐다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당연히 그 사람들은 아직 고인을 애도 중인 경우가 많아서 얘기를 듣다 보면 아주 약간이라도 그 슬픈 감정에 동요되지 않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고인이 남긴 책들을 훑어보다 보면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관심거리는 무엇이었는지..

한밤의 도서관 2021.03.15

책에서 한 달 살기

책은 읽는 동안 즐거우면 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날의 독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내용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치 여행처럼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습득하고 기억해 둘 의무는 없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나 지켜보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책은 참 신기하다.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여러 번 읽는 게 고역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어도 좋아하는 부분을 자꾸 반복해서 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점심을 먹기 전, 숲을 바라..

한밤의 도서관 2021.03.11

내 하루는 네 시간

찬란하던 때의 나를, 아픔이라곤 모른 채 철없이 밝기만 했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애가 가끔 그리워져서 일기장을 꺼내 보고,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읽어보지만, 도무지 그 애를 또렷하게 그릴 수 없다.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많은 시간을 몸을 돌보는 데에 썼다. 건강도, 공부도 열심히만 하면 이뤄낼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상대를 보며 점점 무기력해졌다. 루푸스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점점 알아가고 있었다. 내 병을 위해, 내 몸을 위해 무엇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건 몹시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아프기만 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억울한 눈물은 ..

한밤의 도서관 2020.12.08

바그다드 동물원 구하기

“우리는 환경과 동물이 혹사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으며 언젠가 인간은 자신들이 저지른 끔찍한 행위에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다른 생물들을 상대로 이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해야 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동물과 생활하는 사람은 누구나 인간의 몸짓과 언어로도 동물과 긍정적인 의사소통 및 접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이고 소통을 하면 신기하게도 동물이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안에 들어가 동물과 직접 만나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동화나 디즈니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지연의 기본적이 규칙은 존중하되 진실하고 친근한 관계를 형성하라는 얘기다. 이국적인 동물의 암시장 거래는 중동에서 늘 있던 문제..

한밤의 도서관 2020.11.12

나만의 콘텐츠 만드는 법

무언가를 기획한다는 것은 결국 그 무언가에 대한 주도권을 내가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콘텐츠 기획도 마찬가지겠지요. 전전긍긍하며 키워드에 끌려다니는 게 아니라, 내가 이 콘텐츠를 기획하는 목적, 이 콘텐츠가 지금 세상에 나와야 하는 이유, 다루고자 하는 주제의 핵심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형식을 내가 명확하게 파악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나가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콘텐츠는 어느 날 갑자기 섬광처럼 번뜩 떠오른 아이디어로 기획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번뜩 떠오른 것처럼 느껴진다 해도, 잘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는 지금껏 쌓아 온 맥락이 있기 마련입니다. 콘텐츠 기획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고, 연습을 통해 더 잘 해낼 수 있는 일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속에서..

한밤의 도서관 2020.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