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던 때의 나를, 아픔이라곤 모른 채 철없이 밝기만 했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 애가 가끔 그리워져서 일기장을 꺼내 보고,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읽어보지만, 도무지 그 애를 또렷하게 그릴 수 없다.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 대신, 많은 시간을 몸을 돌보는 데에 썼다. 건강도, 공부도 열심히만 하면 이뤄낼 수 있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나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상대를 보며 점점 무기력해졌다. 루푸스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점점 알아가고 있었다. 내 병을 위해, 내 몸을 위해 무엇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는 건 몹시 절망스러운 일이었다. 그건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계속 아프기만 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혼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억울한 눈물은 언제나 뜨거웠다. 가슴속에 있던 감정 덩어리들이 용암처럼 녹아서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나는 흐느끼면서 이불을 꽉 쥐었다. ‘내일은 눈이 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죽는 것은 두렵지만 이렇게 사는 것도 몹시 절망스러운 일이야. 이렇게 하고 싶은 것을 아무것도 못 하고 좋아하는 사람들과도 멀어지면서 살아야 한다면, 굳이 더 살 필요가 있을까? 나는 왜 계속 이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걸까? 제발 내일은 이대로 눈이 떠지지 않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가슴을 퍽퍽 때렸다.
이제는 빛나지 않아도 괜찮고, 그저 나인 채로 살아가도 좋다고 주문을 외운다. 나는 이미 목적을 다했고, 살아가는 일은 보너스 게임을 하듯 즐기면 그만이라고. 무수한 고통과 불안과 절망이 나를 기다리더라도, 그런 삶을 겪어내고 살아가는 일도 가치 있는 일일 것이다. 병을 얻고 나서 나를 사랑하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시간이 더 중요해졌고, 계절이 변하는 모습과 병원 밖의 삶에 감사함을 느끼게 되었다. 병과 함께하는 삶의 득과 실을 따지자면 물론 실이 더 많다. 아주아주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고, 슬픔에 쓸려 갈 수는 없으니까. 긍정의 힘을 끌어 모은다.
내 하루는 네 시간(2020)
텀블벅 펀딩한 책.
투병기에 대한 이야기라
기승전결 밝은 이야기가 아니다 보니,
펀딩은 했지만 ‘책 읽어야지!’라고 시도하기 쉽지 않았음. ㅜㅜ
+
어머니, 아버지를 그냥 이름으로만 표기해서
이야기 이입이 안 되고 좀 겉도는 느낌이 있었는데,
전문작가가 아니시니 이런 건 어쩔 수 없지 ㅎㅎ
++
아 그리고 책 크기에 비해 글씨 크기가 좀 작아서
눈이 좀 아팠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삶은 정말 큰 복이라는 걸
점점 느끼고 있는 시점인데,
잔(잔잔잔잔하게)병은 많지만 큰 병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지금을 감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