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는 동안 즐거우면 된다.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그날의 독서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선생님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내용을 외우고 있을 필요는 없다. 마치 여행처럼 순간을 즐기기만 하면 될 뿐, 보고 들은 것을 모두 습득하고 기억해 둘 의무는 없다.
‘책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문득 궁금해졌다. ‘일단 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나나 지켜보자’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책은 참 신기하다. 읽을 때마다 다른 생각을 하게 한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을 여러 번 읽는 게 고역인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어도 좋아하는 부분을 자꾸 반복해서 접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점심을 먹기 전, 숲을 바라보면서 책을 펼치면 누군가 정성스레 싸준 소풍 도시락을 펼치는 것만 같다. 책을 다 읽으면 진짜 점심은 직접 준비해야 한다는 게 조금 아쉽지만.
읽을수록 다르게 읽히는 책이 좋은 책이라면 나는 그간 좋은 책들만 만난 거구나. 운이 좋다.
책 한 권이 가져다주는 고요에 감탄하곤 한다. 음악이나 텔레비전 소리 곁에선 책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지만, 가끔 어떤 책은 주변의 모든 소음도 잡아먹을 만큼 묵직한 소리를 낸다.
어떤 일이든 꾸준히 한다면 시간 낭비는 없다고 믿는다.
나만의 방식으로 독서 모임을 고안해 보았다. 우선, 내가 모임의 주최자라 생각하고 책을 한 권 선정했다. 이때 최대한 추천 글이나 서평은 찾아보지 않는다. 일반적인 독서 모임처럼 적당한 기간을 정해 읽고 내 의견을 노트해두었다. 그리고 인터넷으로 같은 책에 대한 서평을 몇 개 찾아보는 것이다. 그러다가 나와 비슷한 부분에서 공감을 했거나 다르지만 흥미로운 의견이 있으면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내 서평을 그들에게 보여 주고 이야기를 나눌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같은 책을 읽은 다양한 사람들의 해석을 볼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함께 읽고 나누는 나만의 소소한 방법을 찾았다.
어릴 적 시골에서 나고 자란 덕분에 심심할 틈이 아주 많았다. 그땐 그게 무척 싫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다행이었다. 심심했고, 상상했고, 연구한 덕에 오늘의 내가 조금은 창의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건이 되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그랬는데, 어떤 의미에서 정말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온 세상이 동물성 제품으로 뒤덮인 것처럼 보인다. 아침마다 마시는 커피에 우유를 넣고, 부드러운 빵에도 우유와 버터가 들어가고(바게트 같은 거친 빵이 아닌 부드러운 빵엔 일반적으로 100% 유제품이 들어간다), 저녁이 다가오면 마시는 시원한 맥주도 젤라틴으로 불순물을 걸러낸다.
좋아하는 고전을 여러 가지 번역으로 읽어보는 것을 선호한다. 같은 원본이지만 말투나 단어의 선택, 설명을 얼마나 자세하게 하느냐 등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는 그 ‘흔적’들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다. 번역본으로 읽을 땐 원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옮긴이가 해석한 고유의 분위기가 있다. 어차피 원작자의 언어로 원본을 읽을 수 없다면, 믿음이 가는 옮긴이가 들려주는 ‘새로운’ 분위기를 누리는 것을 행운이라고 여기는 편이다.
책을 한 달간 읽는다고 행복해질지는 알 수 없다. 괜히 시간 낭비했다며 몇 달 전의 나를 원망할지도 모르고, 그러나 외로워서 시작했지만 결국 외로움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읽기를 계속해 보련다. 이 읽기를 받아들이는 내가 마지막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궁금하니까.
책이 또 너덜너덜해졌다. 재미있는 건, 내가 책을 이렇게 만든 게 아니라 책이 나를 어르고 달래고 상담해주느라 기력을 다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정말이지 책이 나 때문에 한 달 동안 수고가 많았다.
책에서 한 달 살기
- 한 권의 책을 한 달 동안 읽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2021)
[트위터책빙고 2021]
16. 모험
나는 좋아하는 책은 일 년에 한 번 같은 시기에 다시 읽긴 하는데
‘한 달 동안 같은 책을 계속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네?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대사를 다 외울 때까지 n차 관람하잖아
+
글쓴이가 한 달 동안 읽는 책에서 배우고 생각하게 되는 점을
실천하는 모습이 멋있었다.
프랑스는 비건으로 살기 쉬운 나라라는 고정관념이 있었고만 내가.
++
나만의 독서모임. 너무 귀여워
1인이지만 기간도 정해 책도 읽고, 다른 사람의 서평 검색해 보는 것
+++
아래는 한 달에 한 권씩 읽은 글쓴이의 책.
읽은 책은 첫 번째 책 하나뿐이었네 ㅋㅋㅋ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소란』
『글쓰기의 최전선』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아무튼, 비건』
『대리사회』
『사라지는 번역자들』
『안녕, 동백숲 작은 집』
『심신 단련』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이게,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