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다리쿠 30

축제와 예감 (2019)

악보라는 것은 음악이라는 언어의 번역이며 그 이미지의 최대공약수에 지나지 않는다. 연주자는 그 최대공약수에서 작곡가가 생각한 원래 이미지를 짐작하는데, 외국어 번역이 결코 원래 의미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작곡가의 이미지와 다른 것은 당연한 일이다. - 가사와 그네 中 숨이 닿을 만큼 가까이 있는데 두 사람이 있는 곳은 아득하게 먼 곳이다. 스포트라이트 속, 찬란한 음악의 나라. 가고 싶다. 나도 저곳에 가고 싶다. 마사루는 그렇게 열망했다. - 하프와 팬플루트 中 스트라디바리나 과르네리처럼 엄청나게 비싼 악기만 주목을 받고, 비싸면 비쌀수록 좋다는 게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지만 악기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분명 명기라 불리는 악기는 존재하고 연주해보면 굉장히 실력이 좋아진 것처럼 느껴지는 훌륭한..

한밤의 도서관 2022.05.17

蜜蜂と遠雷 (2019)

蜜蜂と遠雷 Listen to the Universe, 꿀벌과 천둥 (2019) 감독 | 이시카와 케이 원작 | 온다 리쿠 출연 | 마츠오카 마유, 마츠자카 토리, 모리사키 윈, 스즈카 오지, 카타기리 하이리, 카가 다케시 더보기 시리즈온에서 구매하고 1년 묵혔다? 보네 ㅋㅋㅋㅋ 그냥 소설만 보세요- 원작 읽은지 오래돼서 내용이 다 기억은 안 나지만 엄청 재밌게 읽었는데 영화는 텐션이 계속 축 쳐진 채로 진행되는 느낌이라 되게 별로였다. 피아노 연주하는 장면 나올 때쯤 (하 옛날에 밴드 영화 뭐지 ㅋㅋ 음악 안 들려주면서 표정연기만 보여줘서 진짜 쓰러질 뻔했는데) '이질감 들면 진짜 최악일 것 같다' 생각했는데 다행히 ㅎㅎㅎ 영화관에서 봤다면 음향이 달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소설 읽을 때는 음..

먼지쌓인 필름 2022.01.30

꿀벌과 천둥

‘연주할 수 있는’ 것과 ‘연주하는’ 것은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너새니얼은 둘 사이에 깊은 골이 있다고 생각한다. 까다로운 것은 ‘연주할 수 있어서’ 연주하는 사람 중에도 ‘연주하는’ 재능이 숨어 있을 때가 있고, ‘연주하는’ 일에 열의를 불태우는 사람이라도 마음이 헛돌아 실속 없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다. 둘 사이의 골은 깊지만 거기에 골이 있다는 것만 알면 우연한 계기를 통해 골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콩쿠르는 기묘한 행사지만 재미있다. 이렇게 많은 소리에 젖을 수 있다니 꿈만 같다. 소리에 젖는다, 소리가 몸속으로 퍼져나간다, 음악을 들이마시고 내뱉고, 몸속에 머금었다가 밀어낸다……. 그러다 보면 시간의 감각이 사라지고 마음은 언제나 어디론가 날아간다. 내 일에 그토록 행복을 느껴본 적이..

한밤의 도서관 2017.10.07

나와 춤을

맞는 말이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느끼며 모인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그런데 날카로운 칼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또다시 우리의 평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째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나요? 어째서 둘 다 선택하면 안 되는 거죠? 모두가 똑같은 걸 본다고 똑같이 느낀다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그런 거, 부자연스럽지 않나요?”-주사위 7의 눈 中 “마침 점심시간이라 어디를 가나 자리가 없었어요. 어디나 회사원들로 만원이었죠. 활기가 가득하고, 스피드가 넘치고. 학생 신분에서 직장인을 바라보면 스피드가 넘치더군요. 다들 그저 점심을 먹는 것뿐인데 압도돼서 말이에요. 다들 저렇게 취직해서 일하고 있구나 생각하니까, 이도 저도 아닌 처지에서 어설픈 구직 활동을 하는 제가 너무너무 비참하게 느껴져서 가게에 도저..

한밤의 도서관 2015.07.14

몽위

인간은 진심으로 오싹했을 때 어떻게든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공포에 쥐어뜯겨 움푹 팬 부분을 평평하게 고르려고 한다. 하지만 세월은 헛되이 하루 또 하루 얇은 종이를 떼어내듯이 흘러간다. 뭔가를 희박하게 만들고 조금씩 빛바래게 만들어간다. 기대를 품었던 시간은 실망으로 변하고 이윽고 체념에 들어간다. 마사지사에게 몸을 맡기고 끄덕끄덕 졸고 있으려니 낮에 본 몽찰의 잔재가 조금씩 녹아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반쯤 잠든 상태가 되면 히로아키는 항상 이즈미 교카의 소설이 떠오르곤 한다. 수술실에서 마취주사를 맞으면 자칫 마음속에 감춰진 비밀을 고백해버리지 않을까 걱정하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혹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도 떠오른다. 비밀을 감춰두기란 어려운 일이다.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

한밤의 도서관 2014.12.01

불연속 세계

벚꽃은 기묘한 꽃이다. 벚꽃이 핀 것을 보면 굉장히 득 본 기분이 든다. 다른 꽃은 이 정도는 아니다. 벚꽃이 피면 좌우지간 ‘봐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드는 건 왜일까.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일본인과 벚꽃의 관계에는 어딘가 영적인 면이 존재한는 것 같다. 무엇보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도 벚꽃이 있지만, 외국에서 피는 벚꽃은 가령 일본인이 좋아하는 왕벚나무 꽃이라도 전혀 다른 꽃이다. 벚꽃이 아니라는 생각마저 든다. 일본 풍토에서 나고 자랐을 때 벚꽃은 비로소 벚꽃이 된다. 다몬은 골똘히 그런 생각을 하며 걸었다. 발은 제2의 심장이라는 말이 있다. 걸으면 걸을수록 뇌에 산소가 공급되어 사고 활동이 활발해진다고 한다. 예로부터 철학자와 과학자는 산책 중에 사색의 실마리를 얻었다. 그러나 다몬은 그..

한밤의 도서관 2014.08.28

달의 뒷면

그는 스무 해도 더 전에 아내를 여의었다. 고독이 오래 입은 재킷처럼 등에 익었다. 하기야 고독은 당사자가 자각해야 고독이지, 교이치로처럼 그것이 본래부터 거할 곳인 듯한 이에게는 그런 생각 자체가 공연한 간섭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배우자를 잃은 남자는 어째서 하나같이 등이 똑같을까. 다몬은 그런 기묘한 감개를 느꼈다. 그가 보기에 그런 남자는 등에 독특한 각도가 있다. 아주 약간 구부정하고 한 쪽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이유가 뭘까. 사막도 유전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탐나고, 경품에 당첨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싸구려 아이스크림도 매력적이다. 수수께끼가 있는 거리는 분명 기분 전환에 안성맞춤이리라. ‘내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과 ‘이미 나는 물러난 몸이니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

한밤의 도서관 2014.06.02

어제의 세계

인구가 줄었다고 하는데, 전국 어딜 가도 교통량이 많은 것은 어째서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 한걸음만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고요하기 그지없는데, 국도에는 끊임없이 많은 차들이 달려간다. 당신은 가끔 저 차들은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어디로도 돌아가지 않고, 실은 일 년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계속 달리기만 하는 차가 상당수 존재하는 게 아닐까? 모두 묵묵히 핸들을 잡고 오로지 달리기만 할 뿐, 일본의 모든 마을을 지나가기만 할 뿐으로 그저 도로를 달리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 제1장 버려진 지도 사건 밤의 자동판매기, 그것도 호텔 안에 있는 자동판매기는 어째서 이렇게 무서운거지? 당신은 그런 생각을 ..

한밤의 도서관 2014.04.11

라이온하트

처음으로 이 땅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절망을 기억하고 있다. 누구나 이곳에 오면 쾌활함을 상실하고 울적하고 나른한 표정이 된다. 한 걸음 밖으로 내딛는 순간, 후끈 하고 몸에 들러붙을 것 같은 고온다습한 공기에 압도당한다. 그것은 언제나 배부른 짐승이 얼굴에 대고 숨을 내뿜는 것 같은 소름 끼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지금은 배가 부르니까 살려주지만, 언젠가 배가 고프면 한입에 물고 날카로운 이빨로 찢어발겨 주겠다. 고 선고라도 받는 느낌이다. “그래요, 살아있는 인간처럼 무서운 것도 없지요, 사람을 잡아먹는 건 인간뿐이니까.” 같은 속도로 천천히 돌아가는 시계바늘이 하루의 8분의 5를 지나면 갑자기 하늘은 흐려지고, 창가의 화분에 물 줄 시간이나 된 듯 쏴아 하고 세면기를 뒤집은 것처럼 비가 쏟아진다...

한밤의 도서관 2014.03.08

Q&A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죠. 실은 까마귀의 생태가 아직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고요. 뭐, 인간도 마찬가지인 겁니다. 죽음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은 독특한 냄새가 납니다.” 어떤 냄새입니까? “잘 표현을 못 하겠군요. 그야말로 시취屍臭랄지. 신체 기관이 이미 생명 활동을 중단해 안쪽에서 조금씩 썩어가는 냄새라고 하면 될까요. 나이를 먹으면 그 냄새에 민감해지거든요. 친구들을 만나도 누구한테 그 냄새가 나는 게 아닐까 싶어 불안합니다. 그런 냄새는 맡고 싶지 않지만, 한편으론 혹시 조금이라도 그런 냄새가 난다면 놓칠 순 없다고 혈안이 되고 말이죠. 그러다 그 냄새가 나는 녀석을 발견하면 다가서서 킁킁냄새를 맡지 않을 수 없어요. 입 밖에 내서 말하진 않아도 다들 같은 느낌일 겁니다. 서로 감시하는 ..

한밤의 도서관 2014.0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