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말이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이 느끼며 모인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그런데 날카로운 칼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또다시 우리의 평화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째서 양자택일을 해야 하나요? 어째서 둘 다 선택하면 안 되는 거죠? 모두가 똑같은 걸 본다고 똑같이 느낀다는 법은 없지 않을까요? 그런 거, 부자연스럽지 않나요?”
-주사위 7의 눈 中
“마침 점심시간이라 어디를 가나 자리가 없었어요. 어디나 회사원들로 만원이었죠. 활기가 가득하고, 스피드가 넘치고. 학생 신분에서 직장인을 바라보면 스피드가 넘치더군요. 다들 그저 점심을 먹는 것뿐인데 압도돼서 말이에요. 다들 저렇게 취직해서 일하고 있구나 생각하니까, 이도 저도 아닌 처지에서 어설픈 구직 활동을 하는 제가 너무너무 비참하게 느껴져서 가게에 도저히 못 들어가겠지 뭐예요. 난 저 속에 못 낄 게 틀림없다, 직장인이 될 수 없다 싶어서요.”
작은 한숨.
“얼마나 비참했는지 몰라요. 세상에 달랑 저 혼자뿐인 것 같았죠. 저만 세상에서 소외된 느낌이었어요.”
기묘한 웃음이 떠오른다.
“편의점에서 빵이라도 사야지 했는데, 편의점 계산대도 붐비는 거예요. 바깥까지 줄을 섰을 정도로. 나처럼 느려 터진 인간은 점심도 못 먹는구나 싶어 점점 더 비참해져서, 그나마 한산한 자동판매기에서 캔 커피를 사는게 고작이었어요.”
-변명 中
오늘도 세계는 움직이고 있다.
천천히. 조금씩. 몰래.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소녀계 만다라 中
약속 시간까지 아직 좀 남았으니 책을 더 읽자. 이런 속도로 가면 중간까지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애완동물 붐이라는 말이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이제는 붐이 아니라 완전히 정착된 느낌이다. 애완동물과 함께 들어갈 수 있는 가게도 늘었겠다. 엄연한 시민권을 얻은 것 같은데, 사실 동물을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많다. 구태여 말하지 않을 뿐 실은 불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도 어렸을 때 물린 경험이 있는 터라, 보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만지고 싶지는 않다.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면 귀엽다고 생각하지만 근처에 있으면 아무래도 경계하게 된다.
-오해 中
사후 십 년이 지나 비로소 그의 작품이 전집으로 묶여 나오게 되어 리플릿에 그의 추억담을 쓰기로 했다. 그래서 오랜만에 이 거리를 찾아와 기억을 더듬으며 그와 걸었던 길을 되밟는 중이다.
그러나 발길 닿는 대로 골목을 돌아다녀도 Y의 부재만 자꾸 커질 뿐이었다. 그와 동시에 지금도 이 거리 어딘가에 Y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가슴속을 떠나지 않는다. 절망과 희망이 기묘하게 균형을 이루어 양 갈래로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이어진다.
-타이베이 소야곡 中
여자로 사는 슬픔. 여자로 사는 노여움. 인간이란 동물의 슬픔, 교활함, 착잡함. 때로는 폭력적이고 잔혹한, 때로는 낭만적인 공범자, 때로는 오만하고 허영심 가득한, 그러나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남녀라는 관계.
그런 말이 머릿속에 떠오르는데, 그것을 글로 표현하려 하면 더없이 진부하고 기만적으로 느껴져 나중에는 속이 메스꺼워질 지경이었다.
-나와 춤을 中
간토 대지진 직전이 배경인 영화는, 의자 속에 남자가 있고 그 의자 위에서 남녀가 정사를 나눈다는 내용이었다. 마유미에게 물었더니 일본의 저명한 미스터리 작가의 단편이 원작이라는데, 그녀가 아는 영화는 90년대 이후 만든 것이고 짚이는 데가 없다고 했다.
일본엔 사람들을 입 다물게 하는 데 아주 편리한 말이 있거든.
가나코가 차갑게 말한 적이 있다.
그 마법의 단어는 ‘자숙’이라고 한다.
정보는 정보를 원하게 마련이거든요. 고바야시 씨는 말했다.
한번 수집하기 시작하면 수집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혹시 빠뜨린 건 없나, 더 없나, 어디 모르는 정보가 있는 건 아닌가, 누가 감추고 있지는 않나 의심에 빠져서 정보 자체를 비대하게 살찌우면서 더 더 하고 탐욕스럽게 원하게 되는 거죠.
나는 일본의 자동판매기가 영 불편하다. 꼭 로봇 같은 게 인격이 느껴진다. 괜히 뿅뿅 소리를 내면서 불빛은 깜박이지(도쿄는 점멸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감사합니다’ ‘이후 세 시간 뒤 날씨 흐림’ ‘뜨거우니 주의하세요’ 하고 말을 걸어온다.
-도쿄의 일기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