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가 줄었다고 하는데, 전국 어딜 가도 교통량이 많은 것은 어째서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차를 타고 어디로 가는 걸까? 한걸음만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고요하기 그지없는데, 국도에는 끊임없이 많은 차들이 달려간다.
당신은 가끔 저 차들은 그저 달리기만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어디에도 가지 않고, 어디로도 돌아가지 않고, 실은 일 년 내내 전국 방방곡곡을 계속 달리기만 하는 차가 상당수 존재하는 게 아닐까? 모두 묵묵히 핸들을 잡고 오로지 달리기만 할 뿐, 일본의 모든 마을을 지나가기만 할 뿐으로 그저 도로를 달리는 것만이 목적인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 제1장 버려진 지도 사건
밤의 자동판매기, 그것도 호텔 안에 있는 자동판매기는 어째서 이렇게 무서운거지?
당신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음료수를 비추는 희미한 불빛, 둔한 모터 소리. 그것은 생물이 내는 신호 같기도 하고, 유령의 그림자 같기도 하다. 그런 정체 모를 생물이 복도 한구석에서 누군가가 오기를 꼼짝 않고 기다리는 것 같다.
- 제8장 점과 선 사건
와카쓰키 게이고는 한 달에 한 번씩 훌쩍 사라진다.
길어야 반나절이긴 하지만, 매번 아무한테도 행선지를 말하지 않고 모습을 감춘다.
- 와카쓰기 게이고의 막간
문득 메피스토펠레스(괴퇴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악마의 이름)가 바로 이런 녀석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악마는 절대 눈에 띄지 않는다. ‘악마요’하는 얼굴도 하고 있지 않다. 그저 어느틈엔가 백년지기 같은 얼굴을 하고 조용히 옆을 걷고 있을 뿐이다.
황혼 빛은 사람을 우울하게 한다.
- 제10장 산책하는 개들 사건
도서관에 오는 사람은 모두 비슷한 냄새를 갖고 있다.
타인과 접촉할 뜻이 없는 폐쇄된 기운을 몸에 걸치고 있는 것이다. 각자가 가신의 껍데기에 틀어박혀 타인의 껍데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혼자만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
불현듯 이렇게 양지에 멍하니 있는 자신이 신기하다. 주위는 평소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시간은 평온하게 흘러가고, 모든 것은 일상 속에 있다. 자신은 대체 무엇을 찾고 있는 건가?
- 도서관에서의 막간
교통사고는 어딘가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다. 그가 모르는 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슈헤이는 어릴 때부터 파출소나 경찰서 앞 간판에 교통사고에 따른 ‘부상자 수’와 ‘사망자 수’ 난이 있는 것에 항상 거부감을 느꼈다. 누군가가 사고로 부상을 입거나 죽는 것이 전제되어 있고, 그 숫자를 넣게 되어있다(그것도 친절하게 두 자리까지 OK다). 그만큼 흔한 일이고, 통행인이 그 간판 앞을 태연히 지나가는 걸 보면 모두가 그걸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사람은 살아간다. 무서운 일 같은 건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세계에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하는 것처럼.
- 제11장 바람이 불면 통 장수가 돈을 버는 사건
비밀이란 희한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비밀이어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비밀이 아니기도 하다.
- 제12장 우물과 가위 사건
그러나 사람은 겉모습만으로는 모른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사람의 머릿속에 생각지도 못한 망상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건 오랜 세월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 제14장 불길한 전화 사건
예전에 ‘증발’ 이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평범하게 살던 평범한 사회인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전조도 없이 모습을 감추어 버리는 것이다.
우연히 마음의 틈새로 무언가가 몰래 들어와서.
앞으로도 줄곧 반복될 평범한 일상을 견딜 수 없어서.
- 제15장 그녀의 사건
예전에는 뉴스에서 “한 시간에 100밀리미터의 큰비”라는 말을 들을 때면, “뭐야, 100밀리미터면 겨우 10센티미터 아냐. 그게 어째서 큰비야?” 하고 생각했다. 어린이의 손으로도 한 뼘에 잴 수 있는 10센티미터. 그 크기를 이해하지 못했고, 지금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가즈네는 손가락을 벌려 10센티미터를 만들어 보았다.
겨우 요만큼. 하지만 이 작은 틈이 무언가를 뿌리째 바꿔버릴 수도 있다.
- 제16장 그들의 사건
대단한 거리는 아닌데 모두가 아득히 멀리 느껴진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때까지도 줄곧 고독을 느꼈다. 어릴 때부터 줄곧. 그러나 이때만큼 고독을 의식한 적은 없었다. 아니,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사람들 속에 섞여서 평범한 척하고 싶다는 갈망에 매달렸으나, 이 순간 비로소 포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포기하고 나니 고독이라는 것은 참으로 평온했다. 오히려 안도에 가까운 기분조차 들었다.
- 제 18장 나의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