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미 씨가 전에 교사들한테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 인간에게는 다른 이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구, 칭찬받고 싶어 하는 욕구, 이렇게 세 가지 욕구가 있대. 그러니 돈이 있으면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말도 맞는 말은 아니야. 인간은 누구든 도움이 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 그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아. 그리고 아무리 단순한 작업이라도 괜찮으니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 라는 발상도 사실이 아냐. 그것만으로 인간은 행복해지지 않으니까. 정신은 점점 메말라 갈 뿐이지”
“인간으로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고들 하는데……” 자파는 내 이야기를 들은 후, 흐흐 웃으며 말했다. “원래 인간이란 모름지기 그런 속성이 있잖아. ‘자기가 제일 중요하고’ ‘늘 자기 사정이 제일 큰일이고’ ‘남의 불행은 금방 잊어버리고’, 그런 게 인간이잖아”
왜 호감을 가지냐고 물으면 딱 부러지게 할 말은 없다. 사람 안가리고 수다를 떨고, 소문 퍼뜨리는 게 취미인 성격은 자동차인 내가 봐도 민폐의 전형인데, 특히 나와 자파를 볼 때마다 이쿠코에게 “차 새로 바꿀 때 되지 않았어요?” 하고, “교장 선생님이니 이제 좀 묵직한 차를 타시는 게 좋지 않아요? 그 코롤라는 이제 골동품이잖아요” 하며 호소미 씨에게 돌직구를 날리기 때문에 당혹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밉지 않다. 보짓을 들면 엔진과 배터리가 그대로 드러나듯이 야스다 부인도 감정을 억누르거나 숨기는 것 없이 있는 그대로 속의 것을 드러내기 때문에 이쪽 역시 안심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생각해 봤는데 지금 우리 집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어.”
“두 개나?”
두 개나 있었나, 싶다가도 두 개만 해결하면 끝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전에 코인 주차장에서 옆에 서 있던 프리우스는 “지구는 지금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고 했고, 45번 국도에서 꽉 막혀 서 있을 때 앞에있던 티아라는 “소비세가 오를지도 모른다”고 가르쳐 주었다.
“이 나라는 천조 엔이나 하는 빚이 있다”며 걱정에 몸부림치는 경차를 만난 적도 있고, “우주에는 수많은 소혹성이 있는데 언젠가 지구와 충돌할지도 모른다”고 부들부들 떠는 RX-8도 있었다. 세상에는 헤아리려야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나는 가슴이 답답하다. 한데 전에 집 앞에 온 흑고양이가 “걱정해 봤자 뾰족한 수가 없어, 아무것도 변하는 게 없다고” 하며 여유 있게 웃는 것을 보고 나도 좀 편해졌다.
인간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할 수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는 있지만 그럴 땐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 세 번째 일에 대응할 수가 없다.
“인간이란 존재는 자신의 발언과 각오는 금세 잊어버리지. 물론 그 당시엔 진짜야. 말한 자신도, 결심한 자신도, 거짓은 아니라고. 당시에는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잊어버리는 거지. 새 차를 뽑은 직후에는 ‘매주 세차해야지’ 결심한 주인이 두 달이 지난 후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과 같은 거지.”
인간들에게는 ‘놀랄 만한 정보를 알고 싶다’ ‘남들이 깜짝 놀랄만한 뉴스를 퍼뜨리고 싶다’는 욕구가 있는 모양이다. 그 욕구야말로 인간 문명이 발달해 올 수 있었던 계기임에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깜짝 놀라고 싶다’는 욕구가 우선시되어 진실이 왜곡되면, 애먼 피해자 또한 발생할 것이다.
“뉴스는 선입관을 만들어 내지. 물론 악의는 없어도 그런 역기능이 있어. 행여 악의적인 의도가 있다면, 일은 더 간단해. 눈엣가시 같은 유명인이 있다면 성희롱 사건을 만들어 내면 되거든. 나중에 아무리 자그마한 정정 기사가 신문 귀퉁이에 난다 해도 세상에 한번 퍼진 인상은 좀체 지워지지 않아. 한번 똥을 뒤집어쓴 인간은 그 후로 쭉 똥냄새 나는 놈이라고 불린다고. 거짓말을 퍼뜨린 측이 아니라 누명을 쓴 측이 매장당하는…… 참으로 희한한 일이지.”
“어른들이 하는 짓이 뭐 대단한 줄 아냐? 사전 교섭이든 바터든, 말하자면 득실을 계산하고 자기 요구를 관철시키는 거야.”
인간이 하는 짓 99퍼센트는 실수다. 그러니 실수하는 것이 보통이다. 프랭크 자파가 말하길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건 자신을 신과 동급쯤으로 생각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인간이다.
나는 평소와는 좀 다른 인사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하려니 더 나오지 않았다. 자파도 마찬가지였는지 “그럼 또 봐” 하고는 그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