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달의 뒷면

uragawa 2014. 6. 2. 01:00

그는 스무 해도 더 전에 아내를 여의었다. 고독이 오래 입은 재킷처럼 등에 익었다. 하기야 고독은 당사자가 자각해야 고독이지, 교이치로처럼 그것이 본래부터 거할 곳인 듯한 이에게는 그런 생각 자체가 공연한 간섭일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배우자를 잃은 남자는 어째서 하나같이 등이 똑같을까. 다몬은 그런 기묘한 감개를 느꼈다. 그가 보기에 그런 남자는 등에 독특한 각도가 있다. 아주 약간 구부정하고 한 쪽 어깨가 살짝 올라갔다. 이유가 뭘까. 



사막도 유전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면 탐나고, 경품에 당첨될지 모른다고 생각하면 싸구려 아이스크림도 매력적이다. 수수께끼가 있는 거리는 분명 기분 전환에 안성맞춤이리라.




‘내가 정신 똑바로 차려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과 ‘이미 나는 물러난 몸이니까’ 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다몬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국내외를 돌아다닌 그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에 사무치게 알고 있었다. 말이 다르다는 것은 그 인간이 이분자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분자라는 것은 온갖 위해를 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자기 몸을 지키고 공동체에 친화되려면 그 공동체의 말을 배우는 게 수단으로서 유효하다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일본어를 배울마음이 전혀 없는 외국인보다 비록 서투를지언정 열심히 배우려 하는 외국인에게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다몬은 귀가 좋은 덕도 있겠지만 새로운 언어, 새로운 억양을 빨리 체득했다. 새 공동체의 말을 배우면 공동체도 기뻐해준다. 그러나 너무 빨라서도 안된다는 점이 어렵다. 




하늘은 우유부단한 남자의 어조처럼 무거웠다.
그리고 무거운 하늘 여기저기에 우유부단한 남자 때문에 속 썩는 여자의 불만 같은, 짜증 어린 시커먼 구름이 번져 있었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은 이 방에 어울렸다. 면발이 굵고 쫄깃한 우동과 찬 술. 다몬은 새삼 자신이 객지에 와 있음을 실감했다. 아이코의 분투기가 술안주가 되었다. 아이코는 정말 곧잘 떠들었다. 늘 감탄하는데, 그녀는 이야기 순서를 틀리는 법이 없다. 말솜씨가 없는 사람이 곧잘 그러하듯 이야기의 중심을 우회하거나 되돌아가는 일이 없다.



“응. 나도 지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여기는 밤이 아주 짙은걸. 묵직한 중량감이 있어. 어둠이 살아있어. 도쿄의 어둠은 옅잖아. 밤 자체가 얄팍하니까.”

“그러게. 그렇지만 그 얄따란 밤이 그리워. 밤 따위 별거 아니란 느낌이잖아. 도쿄는 그게 굉장히 든든하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

“그렇겠지. 하지만 사실 밤은 별거 있단 말이지. 밤 덕분에 태곳적부터 인류는 수없는 망상을 길러왔으니까. 가끔씩 이런 데 오면 그게 실감되잖아? 재미있는걸. 이런 데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 기분이 어떨까. 똑같은 체험일까. 게다가 그게 십대 때라면 꽤나 다른 체험이 되지 않을까.”

“어째 무섭다.”

아이코가 중얼 거렸다.

“인간의 상상력만큼 무서운 건 없으니까.”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짧게 느껴진다. 몸이 익숙해져 경계심이 엷어진 만큼 뇌의 정보 처리량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리라.



어렸을 때부터 타인이 부러웠다. 고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든지, 콤플렉스 때문에 괴로워한다든지, 증오를 필사적으로 억누르는, 그런 질척질척한 청춘을 구가하는 인간들이. 그런 족속은 내 눈에 ‘자기 자신’을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내눈에 그들이 ‘나’라는 일인칭을 질리지도 않고 되풀이 하는 모습은 막대한 에너지를 허비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도서관에 들어가면 언제나 마음이 놓인다. 정밀한 공기. 늘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들. 믿음직한 질서. 어째선지 보호받는다는 안심이 든다.



“난 정직하지만 솔직하진 않거든.”

“그거 양립되는 건가?”
“양립돼. 내 안에선.”
“여자는 재미있단 말이지. 내장된 벡터의 방향이 전혀 달라.”



교이치로는 입술을 씰그러뜨리고 겸연쩍게 웃었다.

버스는 전원을 통과해 앞쪽에 보이기 시작한 새하얀 건물들을 향해 달려갔다.
천박한 신흥 주택지. 단지라고 해야 할지, 아파트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이름 없는 콘크리트 덩어리들. 어린이 런치 세트에 곁들여 나오는 시든 파슬리 같은 가로수. 새 버스 정류장에 내린 교이치로는 기가 찬 심정으로 장난감 같은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반쯤 자는 듯한 관리인에게 ‘고바야시 다케오’의 주소를 물었다.



그렇지 않아도 볕이 비치지 않는, 자기 그림자도 없는 오전 시간이다. 이대로 영원히 무인의 거리를 방황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가 밀려왔다.



나는 늘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농담을 해본 적이 없다고 기억한다. 지극히 진지한 성격에 더해 나름대로 복 받은 환경 덕에 내가 속한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느낀 이유 없는 절망을 설명하기 위해, 또는 해소하기위해 온갖 방법을 시도했다. 철학이며 종교를 연구한 적도 있고, 연애 상대에게서 그것을 구해 보기도 했다.그러나 아무것도 내 절망을 달래주지 못했다. 내가 가장 절망했던 것은,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절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어째서 그들은 이렇게도 부조리하고 공포로 가득 찬 세상에 절망하지 않는 걸까?



“그나저나 여긴 이상한 곳이군.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 같은 곳이야. 과거도 미래도 없어. 내가 유령이 된 기분이 드네.”

교이치로는 눈앞의 남자를 보며 커피를 마셨다. 장식품 같은 사내다. 사늘하고 매끌매끌한 도기 장식품 같다.
“괜찮아 그쪽이 더 마음이 편하네. 여긴 대피소니까.”



집 안에 널어놓은 빨래 냄새. 매실주를 담근 병의 빨간 플라스틱 뚜껑에 붙은 새 라벨. 구두 속에 쑤셔 넣은 신문지. 머리맡에 놓인 부채. 벗어놓은 허물처럼 발치에 말려 있는 타월 담요. 땀에 젖어 돌아눕는 아이의 달짝지근한 냄새.



두터운 구름이 움직이고 있었다.

토담으로 둘러 싸인 저택의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순간, 다카야스는 공포에 휩싸였다.
사람이 없다. 그것이 어째서 이렇게 무서울까. 남겨진 나무들, 토담, 저택, 상점. 그것이 어째서 이렇게 으스스하고 기분 나쁠까.
짙은 녹색 덩어리가 어둡게 술렁거린다. 슬로모션 같은 그 살벌한 움직임이 뇌리에 들러붙는다.
아무도 없는 풍경 속에서 바람만이 살아 있다. 그리고 우리 넷만이.



‘낮에 시내에서 가장 큰 서점에 숨어들어 문고본 한 권을 훔쳤다. 날로 도덕심이 결여돼 가는 것 같다. 이 책을 돌려줄 날이 과연 올 것인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꼭 읽고 싶었다. 잭 피니의 《바디 스내처》. 내가 생각해도 참 악취미다. 그러나 이 절망적인 일상 속에서(그러나 인간은 절망에조차 익숙해진다.), 각오를 굳힌 현실 속에서, 이런 픽션을 읽는다는 게 어떤 행위인지 알고 싶었다.’



라디오도, 텔레비전도 나오지 않는 지금,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가 전혀 없었다. 그로 인한 폐쇄감은 예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웠다. 정보 과다라고 하면서도 며칠씩 정보가 없으면 서서히 불안해지고 시간 감각이 어긋난다. 현대인은 정보를 먹고 사는 동물이다. 정보가 항상 주입되지 않으면 신경이 점점 이완돼 사회에서 탈락한다.



까닭도 없이 등골이 오싹했다. 그가 뭔가 엄청난 말을 하려 한다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눈앞이 이중으로 어긋나는 감각. 가벼운 현기증. 겨드랑이에 땀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