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부터 ~ 1711

차가운 밤에

가령 내가 쿄지를 열렬하게. 정말 죽을 것처럼 사랑하고 있다면 문제는 없다. 지금이라도 쿄지의 회사에 전화를 걸어 함께 저녁을 먹자고 할 수도 있다. 쿄지는 좋은 사람인데, 왜 좀 더 애틋하게 사랑할 수 없는 것일까. 왜 지금 당장 만나서 함께 저녁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왜 둘이 있으면 고독이 짙어지는 것일까. 이를테면 내가 좀 더 아빠와 엄마를 사랑하면 되는 일이다. 좀 더 솔직하고 좀 더 다감한 딸이 되면 되는 일이다. 집까지는 전철을 타고 30분. 전화를 걸어 요행히 남동생이 받으면, 차를 몰고 데리러 와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그 낯익은 식탁에서 넷이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다. 어째서일까. 왜 그런 일이 이토록 싫을까. 진절머리가 난다. 치가 떨린다. 죽어도 싫다. 혼자 있는 ..

한밤의 도서관 2011.04.27

제물의 야회

사람은 사람의 몸을 보았을 때 무의식적으로 완전한 형태를 상상한다. 그런 습관이 한순간 오코우치에게 천장을 보고 누운 여자의 양손이 다 바닥 속으로 빠져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 살인 中 사회에는 이물(異物)을 배제하는 습성이 있다.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주위와 똑같이 생활하고 비슷한 가치관을 몸에 두르고 자신을 많은 사람들 속에 매몰시켜둘 필요가 있다. 그것이 살아가는 것이다.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무서운 물음인데도 왠지 그 꿈을 꿀 때마다 달콤하고 매력적인 향기가 따라온다. 죽음이란 그렇게 아무도 없는 바다에 혼자 가라앉아가는 듯한 것일까.- 접촉 中 그는 흘끗 시계를 보았다. 5시 34분. 정확히 척척 일을 끝내고 싶다. 일이란 그런 것이다. - 결단 中 “오코우치 씨는 주필리아(zo..

한밤의 도서관 2011.04.18

SOS 원숭이

“왜그래?”헨미누나가 묻는다 “실은 패밀리 레스토랑 질색이거든요” 헨미 누나는 당연히 그 이유를 물었고,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는 다양한 인간이 모여든다 그런 데다 의외로 테이블과 테이블이 가까워 옆에서나 혹은 등 뒤로 다른 사람의 대화가 들리는 경우가 많다 요란스러운 배경음악을 틀어놓은 것도 아니기에 목소리도 알아듣기 쉽다 그게 싫었다 무섭다고 표현해도 좋다 누군가의 당황한 목소리나 상담하는 이야기, 한탄과 서글픈 화제가 들리면 신경이 쓰여 어쩔 줄 모르게 된다. 야만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매스컴은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원인을 찾아내려 한다 흉악 범죄가 일어나면 그 범인의 생활상, 인간관계, 취미 사건 전의기행을 철저히 파헤친다 상식을 초월한 집요함으로 조사를 한다 잘 생각..

한밤의 도서관 2011.04.13

갈릴레오의 고뇌

가오루는 가늠해 본다. 둥그스름한 얼굴에 눈이 처졌다고 다 좋은 사람은 아니다. - 떨 어 지 다 中 “이 친구는 옛날부터 이런 말을 자주 했어. 빨리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과 늦게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 어느 쪽이 더 많을 것 같으냐고. 그렇지만 유가와, 이젠 그런 말을 할 여유도 없어. 당장 결혼한다 해도 충분히 만혼이니까.” “그건 나도 알지만 상대가 없는 걸 어떻해. 그리고 최근에는 결혼해서 후회하는 사람과 결혼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사람 가운데 어느 쪽이 많은가라는 명제로 바뀌어 가는 중이야.” - 잠 그 다 中 피해자의 유족을 만난다는 것은 늘 마음이 무거운 일이다. 게다가 피해자의 죽음이 타살이라는 사실을 유족들이 눈곱만큼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단순한 사고라면 체념하고..

한밤의 도서관 2011.04.11

이치오-비이-쿄코-사요-키쿠코

'엄마는 좋아하는 일이 생기면 바로 어딘가로 떠나버려요. 그것도 아주 즐겁게 말이죠' ブ-ル (Pool)[수영장] 2009 • 감독, 각본 : 오모리 미카 • 출연 : 카세료, 코바야시 사토미, 시티차이 콩필라, 모타이 마사코 주말에 롯데시네마에 갔다, 볼 영화가 없어서 [레드 라이딩 후드]를 보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눈에 띄는 포스터 속에 카세 료 님이 ㅋㅋ 나를 불렀다. 그래서 바로 일드당 분들께 소개하고 보실 수 있는 분들과 함께 광폰지로..! 고바야시 사토미 와 모타이 마사코, 카세 료의 조합이라면 이건 그냥 보는 거다. 뭐 이나, 이 그랬듯이(?) 맛있게 생긴 음식들 등장, 그리고 나는 중간 중간 졸았다.(ㅋㅋㅋ) 히히 사요하고 비이 제일 좋았던 장면, (완전 귀여운 장면) 아래는 엄마랑 비이-..

먼지쌓인 필름 2011.04.08

다잉 아이

“차에 깔려 죽은 기시나카 미네에에 대한 생각은 없나요?”“생각하면 뭐하는데,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하나?” “피해자는 가해자를 끊임없이 원망하잖아요.” 죽은 후에도, 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래서 돈을 주는 거잖아, 피해자의 유족에게 충분한 보상금을 치렀어, 가해자를 대신한 자네에게도 이렇게 돈을 주고 있고, 솔직히 말해서 나 역시 피해자라고.”“하지만 피해자가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닐지도 모르죠.” “그럼 뭐지, 성의인가?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보여 주지. 머리를 숙이라면 몇백 번이든 숙이겠어. 하지만 그런다고 피해자나 유족이 행복해지나? 결국 원하는 것은 돈이라고, 돈. 그러니까 성가신 절차는 생락하고 실무적으로 일을 처리하면 되는거야. 안 그런가?” 회사 라이브러리에서 처음으로 빌..

한밤의 도서관 2011.04.05

인간실격

결국 무엇이 무엇인지 몰랐던 것입니다. 이웃사람의 고통이 어떤 성질의 것인지, 또는 어느 정도의 것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고통, 다만 밥만 먹으면 그것으로 해결되는 고통, 그러나 그야말로 가장 심한 고통이어서 나의 열 개의 재앙 덩어리 따위는 어림도 없을 만큼 처참한 아비규환의 지옥인지도 모르는 그런 것을 알 수 는 없지만, 그래도 그런대로 잘도 참아내어서 자살도 하지 않고 미치지도 않고서, 정당을 논하고 절망도 하지 않고 꺾이지 않고 생활의 투쟁을 계속해 나가자니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에고이스트가 되어 버려서 더구나 그것을 당연한 일로 확신하고 한 번도 자신을 의심한 적이 없는가? 만일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편안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것이 모두 그런 것이고, 또 그것으로..

한밤의 도서관 2011.04.01

그래스호퍼

“정치가의 비서가 자살을 한다고,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관심이 분산되니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비서가 ‘모두 제 책임입니다’라는 어린애도 하지 않을 거짓말을 남기고 목을 매면, 일단 그것만으로도 정치가에게 쏟아지던 비난 수위가 낮아진다. 어리석고 추하고 성가시다. 어리석고 추한 것은 참을 만해도 성가신 것은 거슬린다. ‘당황 할 것 없어, 잠깐 육체가 조화를 잃었을 뿐.’ 바지락을 해감시키는 시간. 그것을 바라보는 시간이 세미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바지락의 호흡을 바라볼 때 만큼 마음이 평온해지는 순간도 없다. 세미는 이따금씩 생각한다. 인간도 이런 식으로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기포나 연기로 알아볼 수 있으면 좀 더 살아 ..

한밤의 도서관 2011.03.29

도시여행자

누군가를 천천히 좋아할 수 있을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을 천천히 인정할 수 는 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천천히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역시 불가능한 것 같다. -나날의 봄 中 언제쯤이었을까, 식당에서 같이 식사를 하는데 히로미가 말했다. “요즈음 말이야, 내 미래를 상상해도 거기에 아이 모습이 없어.” 무슨 깊은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냥 불쑥 튀어나온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오사카 호노카 中 단편소설 모음집. 음,,,, 글쎄눈에 안 들어오는 단편은 바로바로 넘겨버렸으니까.절반도 안 읽은 셈이 되지만 오사카 호노카 중에서내 미래를 상상해도 아이 모습이 없다는 말이 쿵- 와 닿았다. 현재로선 내 미래를 상상해보면 나는 혼자니까.

한밤의 도서관 2011.03.29

유리망치

“수면에는 렘 수면과 논렘 수면이 있어. 렘 수면 중에는 뇌가 활발하게 활동하지만 몸은 잠든 상태야. 눈동자가 심하게 움직이는 데서 ‘Rapid Eye Movement' 의 약칭으로 REM 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어” “그런 이름의 록 그룹이 있었으니까 알아” “하지만 논렘 수면이란 건 바로 그것의 반대지. 뇌는 잠들어 있어도 몸은 활동이 가능한 상태에 있는 거야. 눈동자 운동은 보이지 않고. 소위 몽유병이라는 건 논렘 수면기에 외부로부터 어떤 자극을 받은 뇌가......” “ 이젠 됐어. 몽유병과는 관계 없는 거지?” 준코는 짜증스러워 말을 가로막았다. “그렇다니까 문제는 렘 수면 행동장애야 이건 수면 중에 운동 억제기능이 저하됨으로써 꿈의 내용이 그대로 행동에 나타나게 되는 병인데.......” 일반 O..

한밤의 도서관 2011.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