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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은 없는데요...

◆ 손님 어른들 책 안에는 왜 그림이 없는 걸까요? 슬프잖아요. 어릴 때는 항상 글과 그림을 보게 해놓고 어느 날 갑자기 그림만 빼앗아가 버리면 어쩌라는 거죠? 직원 …맞아요. 참으로 잔인한 세상이죠. ◆ 손님 이 서점에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 구연 프로그램 있나요? 직원 네. 화요일마다 하고 있어요. 유아 대상으로요. 손님 잘됐네요. 저 위쪽 골목에 있는 놀이방이 너무 비싸서요. 그동안 애 때문에 꼼짝을 못 했는데 시간이 생기면 쇼핑도 하고 네일도 할 수 있겠어요. 직원 죄송한데, 그렇게는 어려워요. 이야기 시간에 부모님이 아이들을 지켜보고 계셔야 되거든요. 손님 왜요? 직원 …그야 저희는 놀이방이 아니니까요 ◆ 손님 시어머니 관련 유머집 있나요? 농담하는 것처럼 시어머니께 한 권 선물하려고요. 그런데 ..

한밤의 도서관 2018.12.06

모스크바의 신사

비신스키 직업은? 로스토프 직업을 갖는 것은 신사의 일이 아닙니다. 비신스키 좋아요. 그럼 당신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죠? 로스토프 식사와 토론. 독서와 사색. 일상적인 잡다한 일들. 비신스키 시도 쓰죠? 로스토프 나는 깃펜으로 펜싱을 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비신스키 [작은 책을 들고] 당신이 1913년에 발표된 「그것은 지금 어디 있는가?」라는 이 긴 시를 쓴 사람인가요? 로스토프 내가 썼다고들 하더군요. 비신스키 왜 그 시를 썼습니까? 로스토프 시가 절로 써진 겁니다. 시가 나오려고 내 안에서 꿈틀거리던 날 나는 그저 어느 특정한 날 아침에 특정한 책상 앞에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야. 스위트룸을 포기할 준비가 되었을 때 백작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한밤의 도서관 2018.11.28

고맙습니다

내게 원소와 생일은 늘 하나로 얽혀 있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원자번호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부터 그랬다. 열한 살 때 나는 “나트륨이야”라고 말했고(나트륨은 11번 원소이다), 일흔아홉 살인 지금 나는 금이다. 몇 년 전 내가 친구에게 여든 살 생일 선물로 수은이 든 병을 주었더니―새지도 않고 깨지지도 않는 특수한 병이었다― 친구는 별 희한한 걸 다 준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중에 내게 멋진 편지를 보내어 이런 농담을 전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아침 조금씩 섭취하고 있다네.” 나는 노년을 차츰 암울해지는 시간, 어떻게든 견디면서 그 속에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간으로만 보지 않는다. 노년은 여유와 자유의 시간이다. 이전의 억지스러웠던 다급한 마음에서 벗어나, 무엇이든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

한밤의 도서관 2018.11.22

종이의 신 이야기

종이라는 표현수단을 갖는 것은 하나의 언어를 획득하는 것과 똑같이 자유롭구나, 예를 들면 성냥갑 라벨, 우유병 뚜껑, 책갈피, 전단, 화장지 등의 포장지 같은 장기보존을 염두에 두지 않고 만들어진, 이른바 쓰고 버리는 인쇄물 종류를 ‘프린티드 에페메라’라고 한다. 에페메라는 ‘단명한’, ‘쓰고 버리는’이라는 의미가 있어서 번역해보면 ‘하루살이 인쇄물’. 오래전부터 있었던 인쇄용어다. “좋아하는 종이는 뭡니까?” “도쿄 올림픽 전에 변소(!)에서 쓰던 휴지와 옛날 만화 잡지에서 쓰던 종이.” “색깔을 늘리면 늘릴수록 변명할 여지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설명할 여지가 없는 한 가지 색깔이라는 범주에서 얼마나 뛰어난 디자인을 해 낼 수 있는지가 관건이지요.” “행복한 우연과 그리고 역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한밤의 도서관 2018.11.22

멀리 갈 수 있는 배

치카코는 이 회사를 보면 항상 정사각형으로 만들어진 벌집 같다는 생각을 한다. 거기에는 무수한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려 있고, 솔의 빛이 속속들이 스며들고 있다. 결국 우주의 시간은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기를 반복하면서 영원히 이어지고, 자 신은 그 안을 떠돌고 있을 뿐임을 천천히 떠올렸다. 이렇게 함께 방에 있는데도 치카코는 츠바키와 다른 시간의 흐름 속에 있었다. 어느 쪽이 맞다가 아니라 양쪽 모두 올바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 있는데도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그것이 조금 힘들 뿐이었다. “한참 동안 밖에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밖에 나가면 돌아가고 싶지 않을 거 같아요. 그래서 어디에도 가고 싶지 않은 거예요, 나.” 음... 여태 읽은 무라타 사야카 작품 중 개인적으로 제일 별로. 20..

한밤의 도서관 2018.11.22

세계에서 제일 간단한 영어책

영어가 들리지 않는 이유는 발음을 모르기 때문도 아니고 상대방이 말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기 때문도 아니다. 상대방이 말하는 문장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 안에 그 문장이 축적되지 않은 것이다. 알아듣기 어려운 록 가수의 노래도 가사를 보면서 들으면 의외로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리고 일단 가사가 들리면 그 밖의 소리는 희미해져버린다. 즉 영어를 읽는다는 것은 그와 같은 만능의 가사집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두려움의 실체는 문법이 아니라 ‘문법 용어’가 아닐까. 문법이란 예를 들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문장의 첫 머리에 온다’와 같은 규칙일 뿐이다. 문법에 따라 주인공을 ‘주어’라고 부르고 문장 중에 쓰인 단어나 어구를 ‘명사’나 ‘명사절’이라고 부르는데 이러한 명칭이 바로 ‘문법 용어’다. ‘문..

한밤의 도서관 2018.11.21

최소한의 국제 이슈

공포에 빠진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이 아니면 거들떠보지 않았다. 금처럼 가치가 확실한 실물에 투자하거나 돈을 예금 통장 또는 장롱에 쌓아 놓기를 원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대출을 받을 길이 막히고 주가가 떨어지면서 자금난을 겪기 시작 했다. 돈이 없는 기업들은 구조 조정을 통해 직원 수를 줄이고 새로운 사람을 뽑지 않으면서 실업률이 높아졌다. 일자리가 불안한 사람들이 돈을 쓰지 않게 되면서 물건이 안 팔리고 물가도 떨어졌다. 기업들은 물건이 팔리지 않자 더욱 경영이 어려워지고 고용을 더 줄여 버리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안전 자산 : 투자한 돈을 떼일 위험이 없는 자산을 의미한다. 금과 같은 귀금속과 미국 등 각국 정부에 돈을 빌려주고 받는 국채, 일본 엔이나 스위스 프랑처럼 경제가 탄탄한 국가의 돈을 안전..

한밤의 도서관 2018.11.20

임플란트 전쟁

광호를 만나러 가는 길이라 그런지 유독 차창 밖으로 치과들이 눈에 띄었다. 치과가 위아래 층에 나란히 두 개나 있는 건물도 있다. 하나는 뉴욕치과, 하나는 보스턴치과다. ‘뉴욕, 보스턴…… 여기저기서 많이 봤는데, 체인인가? 유학파인가?’ “원장님, 혹시 임플란트 재료들은 가격이 얼마나 하나요?” “재료? 그거는 얼마 안 해. 픽스쳐랑 어버트먼트랑 하면 10만원 좀 넘지.” 광호는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썼다. 그럼 도대체 얼마가 남는다는 얘기인가. “재료는 생각보다는 싼 편이네요. 그런데 외산은 재료가 훨씬 더 비싼가요? 다른 곳도 외제 임플란트로 수술하면 100만원 정도 더 받던데…….” “어휴, 외산은 엄청 비싸지. 나는 제일 비싼 스위스 꺼 쓰거든. 27만 원에 들어와” 광호는 흠칫 놀랐다. 질..

한밤의 도서관 2018.11.16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한 사람만을 위한 서점

나 역시 사적인서점을 열기 전까지 직업이란 사회가 만든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취직을 하든 창업을 하든 기존에 만들어져 있는 틀에 나를 넣는 일이라고 말이다. 사적인서점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직업은 내가 만들기 나름이라는 것을 배웠다. 생각해 보면 나는 편집자의 일을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편집자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서점원이 어떤 일을 하는지 경험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서점원으로 전직을 선택했다. 처음부터 확신을 가지고 시작한 일은 없었다. 성공이 보장된 완벽한 선택은 없다. 시행착오를 겪지 않거나 실패를 하지 않고 사는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미리 걱정하고 몸을 사리기보다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선택을 하자. 그렇게 나는 내가 만든 가능..

한밤의 도서관 2018.11.13

색맹의 섬

색맹은 푸르와 핀지랩 두 곳에서 한 세기 이상 존재했으며 두 섬 다 각종 유전자 연구의 주제가 되어왔으나, 그곳 사람들에 관한 인간적 (말하자면, 웰스식의) 탐구며 색맹 사회에서 색맹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러니까 자기만 완전히 색을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색맹 부모와 조부모, 색맹 이웃, 선생님까지도 색맹인 곳. 색에 대한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며 그 대신 다른 형태의 지각 능력, 다른 형태의 관찰력이 증폭 돼 발달한 문화의 일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에 관한 연구는 전혀 없었다. 암초 아래에서 아이들이 벌써 헤엄치며 놀고 있는데 아이는 이제 갓 걸음마를 덴 아기이지만 산호가 뾰족뾰족 솟아 있는 물 속으로 겁 없이 뛰어 들면서 신나서 빽빽 고함을 질러댄다. 색맹 꼬마 두세명도 물속으로 뛰어들어..

한밤의 도서관 2018.11.03

우리, 독립 공방

‘―수업’ ‘―교실’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취미를 소비하는 방식이 넘쳐나는 게 안타까워요. 누군가에게 소중한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일회용품처럼 소비되고 말아요. 그것이 현실이기에 그 안에서 마음을 조율하고 작가로서의 신념과 노력을 이끌어가야겠죠. -우븐 온 룸스 공방을 준비하는 분이라면 적어도 3년은 적자를 생각하고 버틸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물론 장점도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회사나 조직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요. 사사건건 부딪히는 상사도 없고요. 하지만 모든 일을 혼자서 감당하고 스스로를 조정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힘들어요. 늘 긴장해야 합니다. -폴 아브릴 제주 꽃 서점 [디어 마이 블루]에서 책 다 둘러보고 나오기 직전 충동 구매한 책. 공방의 종..

한밤의 도서관 2018.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