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디셀렉트 48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임신 중 복통은 월경통과는 다른 고통을 준다. 내 몸도 부스러질 거같이 너무 아픈데 아기에 대한 걱정도 함께 들어 정신적으로 버텨내기가 힘들다. 아픔의 원인을 찾으려고 수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엔 진료비 걱정에 병원 가기를 주저한다. -10주차 中 결국 보스가 우리 부서의 전 직원을 불러 모았다. 급격히 많아진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결국 임신한 여성 직원들에 대해 말을 꺼낸다. 임신 당사자도 같은 공간에 불러놓고 “임산부가 많지만 업무에 빈틈 생기지 않도록 긴장하라”는 말을 하려면, 업무 중 임산부에 대한 배려도 같이 언급해야 온당하지 않나 싶지만 역시 그런 건 없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저 임신해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 동료들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육아휴직자의 대체근..

한밤의 도서관 2019.08.01

아무튼, 술

나에게는 어떤 대상을 말도 안 되게 좋아하면 그 마음이 감당이 잘 안 돼서 살짝 딴청을 피우는, 그리 좋다고는 하지 못할 습관이 있다. 말도 안 되게 좋아하다 보면 지나치게 진지해지고 끈적해지는 마음이 겸연쩍어 애써 별것 아닌 척한다. 술꾼들끼리의 밥 먹자는 약속은 결국 술 먹자는 약속으로 변하게 되어 있다. 술은 원래 밥과 곁들여 먹는 기본 반찬이니까. 술이란 건 참 시도 때도 없이 시제에 얽매이지 않고 마시고 싶다는 점에서나, 마시기 전부터 이미 마시고 난 이후의 미래가 빤히 보인다는 점에서나, 일단 마시기 시작하면 앞일 뒷일 따위 생각 안 하는 비선형적 사고를 한다는 점에서 너무나 헵타포드어 같지 않은가. 아무튼, 술 - 오늘의 술을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늘 어제 마신 사람이 되어야 한다 리디셀렉트..

한밤의 도서관 2019.07.31

사장을 죽이고 싶나

금융 엘리트라면 남자든 여자든 사냥감에만 군침을 흘리는 늑대가 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의 고객 역시 늑대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똑같은 늑대여야만 함께 최대의 이익을 거둘 수 있다. 만약 당신이 다른 것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의 약점이 되기에 십상이다. 이런 약점이 알려진다면 당신은 더 이상 늑대가 아니라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다. 맞아, 바이통 너도 여기 오래 살 생각이면 아파트를 꼭 사. 오래 안 있더라도 집값은 오르니까. 일자리가 확실하지 않은 요즘 같은 때는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게 최고야. 개인의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개인의 브랜드를 만들지 못하면 조직의 브랜드에 의존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 양안옌, 《나는 금융 엘리트가 될 것이다》 “바이통, 집이 뭐가 중요..

한밤의 도서관 2019.07.30

온 더 무브

결국 내 성 정체성은 남이 상관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고, 비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떠들고 다닐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 에릭 콘과 조너선 밀러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우리는 이 주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조너선은 나를 ‘무성애자’로 여긴다고 말했다. 나를 특히 매혹시킨 것은 감각기관의 생리학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색과 입체감과 움직임을 보는가? 어떻게 어떤 것을 알아보는가? 우리는 어떻게 이 세계를 시각적으로 이해하는가? 나는 시각편두통을 겪으면서 일찌감치 이런 의문을 품어왔다. 눈부신 지그재그 모양이 나타나는 전조aura 증상 말고도 편두통이 일어나는 동안 색이나 입체감이나 움직임을 지각하는 능력을 상실했고, 심지어 어떤 것을 알아보는 능력까지 상실했기 때문이다. 시력이 ..

한밤의 도서관 2019.07.27

비혼입니다만, 그게 어쨌다구요?!

결혼은 사실 하나의 문에 불과하다. 결혼하지 않고 싶어졌다면 열려 있던 문을 닫아두는 것뿐이라고 말하자. 이유는 단순하다. 닫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 닫으려는 문틈에 잽싸게 발을 끼우고, 혹시 모르니 열어둔 채로 두라거나 나중에 도로 열고 싶어지면 어쩔 것이냐고 묻는 이들이 나타날 것이다. 답도 간단하다. 그때 가서 도로 열면 그만이다. 등쌀에 못 이겨 잠자코 있다 보면 당연히 해야 할 결혼을 하지 못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될 테니, 결혼하고 싶지 않으면 않은 대로, 결정하지 못하면 못한 대로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하자. 여성은 항상 결혼하라는 압력을 받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는 결함이 있든지 규격에서 벗어난 사람 취급당합니다. 결혼한 여자는 남자에게 선택을 받은 여자, 여자로서 성공한 일종의 승자로 여..

한밤의 도서관 2019.07.24

하면 좋습니까?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모든 여자에게는 '자기만의 방'과 '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에게도 만약 젊은 여성들이 조언을 딱 하나 해달라고 한다면 1초도 지체없이 "돈 열심히 벌고 열심히 모으세요"라고 할 것이다.(돈의 중요함은 비혼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문제는 아무리 개인이 열심히 벌고 모아봤자 경제적으로 독립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다. 가장 크게 들어가는 돈이 주거비용인데 1인 가구를 위한 주거공간은 턱없이 부족하거나 비싸다. 내 집 마련 좀 해보자고 주택청약을 들어도 1순위는 신혼부부 즉 '정상 가족'의 몫 '혼자 사는 여자'랑 '불안'은 한 몸이야, 한몸. 자웅동체!가깝게는 CCTV 하나 없는 빌라에 매일 혼자라는 불안....출입할 때 사주경계는 기본이고 밤늦게 문 ..

한밤의 도서관 2019.07.18

역향유괴

대부분의 기업처럼 A&B도 모든 직원의 키보드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직원이 A&B의 서버에 접속하기만 하면 누르는 모든 키보드가 기록되어 파일로 남는다. 사람이란 게… 지난날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 같지만 돈을 벌면 이건 그때와 다른 거라고 자기한테 최면을 건다니까 주식시장에서 연구개발 증권의 신뢰가 떨어져 판매되지 않는다면 주식시장 자체가 멈춰버릴 수 있었다. 그러면 만기가 도래하는 수천억 달러의 어음이 상환되지 않아 새로운 금융위기가 시작될지 몰랐다. “오해하지 마세요. 제가 그 친구들을 무시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서로의 관점이 다르다고 해야겠죠. 그 젊은 친구들은 사실 저보다 열 몇 살 어릴 뿐인데 인터넷이라는 게 그 친구들에게는 어린 시절을 함께한 장난감이잖아요. 그 친..

한밤의 도서관 2019.07.12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나는 혼자라서 못 하는 일이 있는 게 싫어서 뭐든 혼자서도 해왔고 또 꽤 잘 해왔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세상에는 여럿이 해야 더 재밌는 일도 존재한다는 걸. 자신이 두려워하는 뭔가를 영원히 피해 다닐 수 없다면 제대로 부딪쳐볼 필요도 있다는 거다. 늘 머물던 안전지대 밖으로 한 걸음을 내딛어보면 세상에 생각해온 것만큼 큰 위험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어쩌면 겁쟁이일수록, 위험한 상황을 좀처럼 만들지 않는 자신의 본능적 감각을 믿어봐도 좋을 지 모른다. 이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하고 있어서 좋은 점은, 세상이 말해주지 않는 비밀을 하나 알게 되었다는 거다. 그게 뭐냐면, 결혼을 안 해도 별일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 정말 큰일 나지 않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기 ..

한밤의 도서관 2019.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