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도서관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uragawa 2019. 8. 1. 22:00

임신 중 복통은 월경통과는 다른 고통을 준다. 내 몸도 부스러질 거같이 너무 아픈데 아기에 대한 걱정도 함께 들어 정신적으로 버텨내기가 힘들다. 아픔의 원인을 찾으려고 수만 가지 생각을 하다가도 결국엔 진료비 걱정에 병원 가기를 주저한다.
-10주차 中



결국 보스가 우리 부서의 전 직원을 불러 모았다. 급격히 많아진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결국 임신한 여성 직원들에 대해 말을 꺼낸다. 임신 당사자도 같은 공간에 불러놓고 “임산부가 많지만 업무에 빈틈 생기지 않도록 긴장하라”는 말을 하려면, 업무 중 임산부에 대한 배려도 같이 언급해야 온당하지 않나 싶지만 역시 그런 건 없다. 그 자리에서 나는 그저 임신해 죄인이 된 것만 같았다. 고개를 들어 동료들을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육아휴직자의 대체근무자를 채용하지 않는 회사이지만 상황이 상황이라며 다급하게 신규 채용을 논의했다. 신규 채용자는 학력, 경력, 실적 다 필요 없고 남성이면 합격이라는 우스갯소리를 했지만 전혀 웃기지 않았다.
이런 뻔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 다음 중 잘못은 누구에게 있는가? 비난은 누가 받아야 하는가? 미안함은 누가 느껴야 하는가?
 
1. 회사 업무가 늘어난 시기에 임신한 여성 직원
2. 일이 갑자기 더 많아져 임신한 직원이 얄미운 동료
3. 직원이 임신하더라도 업무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시스템을 마련해두지 않은 회사
-16주차 中



어떤 사람들은 임신한 나를 “질싸〔질 내 사정〕인증녀”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망혼〔망한 결혼〕해서 유충 배어놓고 저 힘들다고 징징대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엄마라면 누구나 힘든 임신기를 겪는다며 내게 엄살이 심하다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제 욕심으로 임신해놓고 사회의 배려를 바란다며 이기적이라 했다.



그럴 때면 늘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나는 절대 내 후배들에게 악행을 되풀이하지 말아야지’ 다짐하지만, 이런 문화를 견뎌내면서 회사를 계속 잘 다닐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임신을 하고 직장생활이 더 외로워졌다.
- 24주차 中



회사에 일이 많은 시기라 요즘 사무실엔 늦은 밤이나 주말까지 사람들로 가득하다. 근로기준법 제74조에 따르면 임산부의 시간외근로는 금지이기 때문에 임산부는 정시퇴근을 보장받지만 동료들에게 미움받는 거까지는 보호받지 못한다. 여기에 휴직 후 내 업무를 이어받는 걸 누가 달가워할까. 일의 총량은 그대로인데 일하는 사람만 줄어들 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체제가 아니라 공백을 만든 사람에게서 찾는다. 그리고 미워한다.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법 모두 체제에 있는데 말이다. 육아휴직자의 대체인력을 채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출산 이후 내 공백을 메울 대체근무자를 스스로 찾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 25주차 中



당신들이 고생하며 양육과 가사를 ‘돕고’ 있는 게 ‘원래는 아내 몫’이라는 저급한 인식만 드러날 뿐이다. 아내가 임신하고 고생하는 건 자연스러우면서 남편이 양육과 가사를 맡은 건 어쩜 그리 특별하고 숭고한지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과 아내가 동등한 위치는 아니라는 거지. 가사 ‘돕는다’는 남편들이 제일 싫다.
- 31주차 中



기혼 여성을 채용해서 가르쳐놓으면 결국 애 낳으러 간단 이야기를 수없이 들었다. 비혼 동료들은 그 나이 되도록 ‘시집’ 안 가고 뭐하냐는, 젊어서 아기 많이 낳는 게 최고란 이야기를 잊을만하면 들었다.
- 35주차 中



출생신고를 하러 가니 구청에서 아기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제출하라기에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라고 적었다. 아기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꿈꾸고 누리고 또 성취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성별, 인종, 외모 등 아기가 선택하지 않은 것 때문에 차별받지 않았으면 한다. 또 그것을 자신과 타인에게 실천하며 살아갈 때 결국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될 거라고 아기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