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19

도서관의 말들

마스다 미리 처럼 도서관에 가기 위해 여행지를 고른 적은 없지만 여행지에서 도서관을 만나면 일단 들어가고 본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방전된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충전할 수 있으며 화장실까지 해결된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마실 물이 있고 앉아서 쉴 만한 의자가 있다. 서가에 어떤 책이 꽂혀 있는지 살펴보는 건 맨 나중 일. 책을 둘러보기 시작하면 도서관에 발이 묶이기 십상이니 아쉬워도 간단하게 일별한다. 도서관에는 분명히 좋은 책이 많이 있다. 하지만 모든 좋은 책이 내게 영감을 주진 않는다. 다른 사람의 경험이 순식간에 내 경험이 될 수 없고, 아무리 훌륭한 작가의 인생 좌우명이라 해도 단숨에 본받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흠 없고 진실한 문장이어도 나와 그 문장 사..

한밤의 도서관 2020.07.04

서점의 온도

유능한 사람을 만난 기쁨, 그 유능한 사람이 내 친구라는 기쁨 그리고 그 유능한 친구가 나와 함께 일한다는 기쁨. 이 세 가지 기쁨의 순위를 정해보라고 한다면 역시 뒤에서부터 앞으로 순위를 매겨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24시간 서점이 밤에 오갈 데 없는 이들의 쉴 곳이 되기를 바란다. 책을 보든 안 보든, 돈을 쓰든 안 쓰든 다른 사람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치지 않으면 그들이 이 도시에 머무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한다. 우리 서점에서 장애인 직원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퍼져, 장애인 몇 명이 찾아와 면접을 보았다. 지금 1200북숍의 모든 지점에서는 청각 장애인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내게는 작은 수고에 불과했다. 사실 우리 서점으로서는 별로 희생한 것이 없다. 솔직히 말해..

한밤의 도서관 2020.06.26

크리미널 조선

《무원록》은 원나라 학자인 왕여가 저술한 책으로 송나라의 법의학 서적인 《세원록》과 《평원록》을 참고하여 만들었다. 《무원록》은 고려에도 전래되어 검시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중국 제도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고 적용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세종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최치운 등에게 다른 참고서를 연구하여 주석을 달도록 명했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신주무원록》이다. 이후 《신주무원록》은 중앙과 지방의 관청에 모두 비치되었고, 검시를 할 경우에 반드시 필요한 지침서로 활용되었다. 살인죄는 누구나 알다시피 사람을 죽인 죄를 지칭하는데, 살인죄도 유형이 구분되며 그 유형에 따라 처벌이 달라진다. 살인의 유형엔 모살, 고살, 구타살인, 과실 살인 등이 있다. 모살은 계획적인 살인을 의미하며..

한밤의 도서관 2020.05.07

참는 게 죽기보다 싫을 때 읽는 책

자신이 안고 있는 괴로움과 번거로움을 구체적으로 특정해 해소하려면,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자기 스스로 느끼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즉, 자신을 느끼고, 자신이 느끼는 마음을 기준으로 행동할 때야말로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자신을 소중히 한다 = 자신의 마음을 느낀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정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아 정말 행복하다’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결국, 어떤 선택ㅇ르 하든지 자기마음을 기준으로 하면 ‘내 생각대로 이루어져서 행복하다’라고 만족하며 자기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 됩니다. 남에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남이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다른 것 같지만, 사실 같은..

한밤의 도서관 2019.08.28

퇴근길 글쓰기 수업

개인 에세이는 현대 사회에서 갈수록 유행하는 유형의 글이 되고 있습니다. 현대는 누구나 불안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인에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전 시대에 우리의 삶을 안내해주었던 종교, 도덕, 관습은 현재 절대적 타당성을 상실했습니다. 정신의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은 자신이 누구인지 검토하면서 자기자신을 스스로 만들어가야만 합니다. 이런 자기 음미와 자기 정립의 요구에 가장 어울리는 글의 형식이 바로 개인 에세이입니다. 설명 에세이에는 여러가지 변형이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으로 두 대상을 비교하는 '비교 에세이', 현상이나 문제의 원인 또는 결과를 파헤치는 '원인-결과 에세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탐색하는 '문제-해결 에세이'가 있습니다. 이런 글은 길기 때문에 신문의 뉴스 분석이나 ..

한밤의 도서관 2019.05.29

도서관 여행하는 법

한 시민이 어떤 앎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할 때 그를 응원하고 격려하며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있다면 사회 전체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이랄까. 또한 부유하든 가난하든 잘났든 못났든 늙었든 젊었든 장애가 있든 없든 간에 그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어떻게 하면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어렵지만 흥미진진한 실험이랄까. 도서관의 세계에는 그런 멋진 꿈이 있었다. 무수한 질문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한국 사회는 과연 무언가를 배우려는 누군가에게 손 내밀고 끌어 주며 마음을 북돋워 주는 곳일까? 국민의 세금으로 그 ‘공짜’ 기회를 누리게 할 만큼 우리는 누군가의 배움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그 뒷감당을 하고 싶어 할까? 제 공부는 제 돈으로 하라는 치열한 경쟁의 논리가 우리 가운데 더 강하게 자리하..

한밤의 도서관 2019.05.17